현대시에서 구두점이 없다는 것은 상식처럼 여겨진다. 물론 일부 시인은 창작 상 특별한 이유로 구두점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쉼표, 특히 마침표는 시에 있어 어색하고 불편한 것들이다. 구두점 자체는 문장의 다음 구절로 옮겨가기 전에 잠시 멈추거나, 마무리되는 지점을 독자에게 알리는 일종의 규칙이다. 그러나 이는 시의 자유로운 표현과 운율을 방해하는 것으로 인식되었고 현대시에 있어 구두점, 특히 마침표는 찾기 어려운 요소가 되었다. 그렇다고 구두점의 사용 여부가 시의 현대성이나 문학적 가치를 가늠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문단은 일찌감치 해방 이전부터 시 문학에서 자유로운 형식을 시도했다. 시인 이상(李箱)의 파괴적이고 실험적인 시들과 더불어 이 시기부터 작품의 질적, 양적 모든 면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들에게 [미라보 다리]로 유명한 기욤 아폴리네르는 현대시의 선구자로 불린다. 그는 1913년 시집 [알코올(Alcools)]에서 구두점을 생략해버렸다. 아방가르드 운동이 프랑스 예술계를 뒤덮던 시기였으니, 이런 시도가 무리도 아니었을 것이다. 현대시의 시점에서 아폴리네르 이전에 보들레르를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순리일지도 모른다. 구두점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던 19세기 시인이었지만, 그의 시는 이미 20세기의 자유로움을 물씬 담고 있었다.
이런 시의 특성을 고려할 때 잊지 못할 경험이 김남주 시인이었다. 나는 그의 시들을 처음 접했을 때 운율의 유동성과 너무나 선명한 문장의 목적성 사이에서 혼란을 겪었다. 김남주 시인은 자신이 왜 시를 지어내는지 독자에게 분명하게 선언한다. 그의 삶은 70년대 유신 독재부터 80년대 군사정권까지 한국 현대사의 가장 냉혹한 터널을 지난다. 그리고 그의 시들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저항들이 빼곡히 들어차있다. 시인의 시에는 증오나 연민 또는 애정의 대상이 분명하게 그려진다. 김남주 시인의 시 역시 구두점을 사용하지 않는 현대시의 형식을 그대로 따른다. 내가 겪은 혼란은 바로 이런 별것 아닌 현대시의 관습에서 비롯되었다. 그건 마치 김소월의 <진달래꽃>에서 굳이 없어도 좋았을 선명한 구두점들이 정작 김남주의 시에서는 빠져버린 느낌들이었다.
김남주 시인의 작품들은 여러 면에서 문단과 독자들 모두에게 충격을 주었다. 동시대 권력에 대한 저항과 민중, 서민에 대한 연민의 시선들은 황지우 시인, 정호승 시인 등 많은 문학작품들에 자주 등장했지만 그의 방식은 완연히 달랐기 때문이다.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열정, 분노를 담은 시인의 칼날 같은 문장들을 버성긴 눈길로 읽어내야만 했던 기억이 난다. 그건 그로테스크할 정도로 음울했던 기형도 시인의 시를 접했을 때 못지않은 놀라움이었다. 그런데 김남주 시인 역시 현대시의 형식, 구두점 생략을 무의식적으로 따랐을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1991년 창작과비평사가 ‘창비시선’으로 낸 그의 시집 [사상의 거처]에는 <시인은 모름지기>라는 시가 실려 있다. 시를 읽다보면 강렬하게 눈에 들어오는 마침표 하나가 눈에 띈다. “시인은 그 따위 권위 앞에서 / 머리를 수그린다거나 허리를 굽혀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 구절 뒤에 마침표 하나를 찍어내고 시인은 다음 한 줄을 비운다. 내게는 이 지점을 허투루 지나지 말라는 시인의 당부로 읽혔다.
<시인은 모름지기>
공원이나 학교나 교회
도시의 네거리 같은 데서
흔해빠진 것이 동상이다
역사를 배우기 시작하고 나 이날이때까지
왕이라든가 순교자라든가 선비라든가
또 무슨무슨 장군이라든가 하는 것들의
수염 앞에서
칼 앞에서
책 앞에서
가던 길 멈추고 눈을 내리깐 적 없고
고개 들어 우러러본 적 없다
그들이 잘나고 못나고 해서가 아니다
내가 오만해서도 아니다
시인은 그 따위 권위 앞에서
머리를 수그린다거나 허리를 굽혀서는 안되는 것이다.
모름지기 시인이 다소곳해야 할 것은
삶인 것이다
파란만장한 삶
산전수전 다 겪고
이제는 돌아와 마을 어귀 같은 데에
늙은 상수리나무로 서 있는
주름살과 상처자국투성이의 기구한 삶 앞에서
다소곳하게 서서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도둑놈의 삶일지라도
그것이 비록 패배한 전사의 삶일지라도
자유로운 표현을 추구하는 현대시에 있어 구두점은 이렇게도 쓰일 수 있으려니 생각했다. 이런 작은 장치마저도 조심스러운 시 창작의 세계라니.
"적절한 장소에 찍힌 마침표 하나가… 의미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귀환하기 시작했다."
문학평론가 조재룡 고려대 교수는 최근 시 비평집 '의미의 자리'에 수록한 '구두점의 귀환'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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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은 때로 의미의 요소가 된다. 문정희 시인은 3년 전부터 마침표 찍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문 시인은 "마침표가 많으면 시각적으로 지저분해 보여 편집자들이 일부러 삭제하기도 했다"면서도 "마침표는 문장 종결에만 쓰이는 게 아니라 '다음 문장부터 의미나 전개가 변전(變轉)된다'고 예고하는 기능도 있다"고 말했다. 그가 지난해 발표한 시 '곡시'를 출판사에 보내면서 "절대 마침표를 빼지 말라"고 당부한 이유다. 문 시인은 "외국어 번역자가 '시에 마침표가 없어 전달이 난감하다'고 문의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부언했다.
......
- 조선일보, [잘 찍은 마침표 하나, 열 문장 안 부럽다] 2018.3.23. 기사 중 일부
김남주 시인이 수감생활을 하던 시절은 문인들에게도 야만의 시기였다. 감옥 안에서의 집필을 금지하던 시기, 시인은 평생 지은 시의 절반 이상을 감옥에서 만들어냈다. 감시를 피해 우유갑이나 은박지 위에 시를 적었던 시인의 문학을 책상 위에 놓아둔다. 자신을 암혹한 시절의 ‘전사’로 불렀던 시인의 삶을 반추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해마다 5월에는 도무지 비켜갈 수 없는 인물이다. 그가 찍어 낸 세상에서 가장 묵직한 마침표 하나와 함께.
그대는 타오르는 불길에 영혼을 던져보았는가
- 문구 인용: [김남주 평전] (김형수 지음, 다산책방, 202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