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밤 산책 06화

어떻게 볼 것인가

by 현율


대학에 갓 입학했던 나는 잔물결에도 출렁이는 나뭇잎 같았다. 서투른 호기심만 안고 어디로 향하는 열차인지도 모르고 올라탄 채 삶은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다 느닷없는 무료함이 들이닥치면 도서관에 처박혀 소설과 시로 소일하는 것 외에는 마음에 고동치는 일들이 없던 시간들이었다. 그런 불규칙한 반복들이 일상이 될 무렵 너울에 휩쓸리듯 신청했던 교양과목이 ‘미술의 이해’였다. 청소년기 그림과 예술에 대한 호감만큼은 알뜰하게 담아 살았기에, 불현 듯 선택한 결과였다. 공대생들에게는 적당한 교양만 얻으면 그만이라며 산책하듯 대하던 친구들과 달리, 나는 어떤 거대한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강박에 무언가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빌려 읽으며 이내 몽매했던 내 선택을 후회했다. 방대한 텍스트는 서양미술의 체계 및 질서를 온갖 정보를 동원해 제시하는데, 이걸 한 학기동안 감내해야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나를 질리게 만들었던 것이다.


온갖 음울함과 불길함에 잠식당한 채 첫 수업에 들어섰을 때, 나는 공학이론과 수학공식에 시달리던 전공 강의와는 판이하게 다른 새로운 세계를 경험했다. 그리고 그 분을 그날 처음 보았다. 성완경 교수님은 미술의 체계와 정의, 질서와 정보를 나열하는 대신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명제부터 언급했다. 사진을 찍는 행위가 갖는 철학적 함의와 멈춘 이미지들 사이의 맥락, 그리고 사진을 향한 선택되거나 강요된 시선들을 이야기하며 존 버거(John Berger)를 제시했다. 이미지를 근간으로 하는 문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정교하게 작동하고 그 사회구조를 강화하는지를 언급하며 수전 손택(Susan Sontag)을 이야기했다. 그 짧은 기간 동안 나는 비평가의 예술에 대한 해석을 새롭게 경험했고, 영화 ‘전함 포템킨’을 보며 영화 역사가 어떻게 이어져왔는지도 바라보았다.


학기가 끝나고 학년이 쌓여가면서도 보이지 않는 미래와 무미한 현실에 출렁이던 내 삶의 양태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 오랫동안 잊고 살던 나를 다시 흔들었던 것은 시인 허수경<혼자 가는 먼 집>을 발견했을 때였다. 결코 아름답지도, 곧바로 슬프지도 않은, 시적 양식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던 이 시는 그 시절의 내게 직접 묻고 있었다. 삶을 어떻게 볼 것인지. 2001년 출간된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이후 한동안 허수경의 시집을 손에 두던 시절, 나는 성완경교수님의 소식을 신문에서 발견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열릴 예정이던 월드컵 소식이 세상을 뒤덮고 있을 때, 성 교수님은 네 번째 광주비엔날레의 예술총감독을 맡고 있었다. 비평가로, 교수로, 프로듀서나 예술감독으로, 그 분은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어떻게 볼 것인지’ 세상에 묻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 후에도 삶의 궤적은 늘 나의 예상과 다르게 흘렀다. 그리고 시인이 너무 빨리 세상과 이별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 해에 나는 허수경 시인의 시들을 미친 듯이 읽어댔던 기억이 난다. 돌아보면 세상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작은 실마리라도 찾겠다는 심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죽음은 늘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것이고, 누구도 ‘영원한 이별의 자리’는 숨길 수 없는 것이라고 느꼈다.


청아한 가을


허연 새가 말라가는 병원 잔디밭을 서성인다


영원한 이별이 도둑처럼 노상 강도처럼


스친 자리


- 허수경,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창비, 2001)



시인이 세상을 등지고 몇 년이 지난 후 이번엔 월드컵이 아닌 전염병의 불길한 광풍이 불던 시기, 성완경 교수님이 임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예술을 좋아하는 것과 그것을 이해하는 것의 차이, 그리고 예술을 기억하기 이전에 그것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를 묻던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뉴스였다.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나는 세상을 바라볼 때 어지럼증을 느끼는데, 그 질문을 던진 인물들이 지상에서 하나둘씩 떠나고 있었다.

......

그는 말이 많을 만한 평론가였지만 말수가 매우 적었다. 평생을 많이 보고 많이 읽고 많이 배우고 많이 쓰고, 또 많이 모았으니 하실 말씀이 얼마나 많겠는가마는, 자신의 말은 매우 아껴서, 분명하고 적확하게, 예의 바르고 정중하게 표현하곤 했다.

......

그뒤 지난 세기 말인 1999년 나는 성완경의 <민중미술, 모더니즘, 시각문화>라는, 그의 미술비평 인생의 중간을 정리하는 책을 편집하고 있었다. 그는 책의 서문을 이렇게 시작했다.

“세기의 노을녘에 슬그머니 이 책을 내려놓는다. 마치 내 물건이 아닌 것처럼 슬쩍 떨구어 놓고는 가급적 희미하게, 무사하게 시야에서 사라져 주길 바라듯이 그렇게 떠내려 보낸다. 잘 가거라. 잘 떠내려가거라. 너는 이제 내가 아냐. 안녕. 아비를 찾지 말거라. ‘산소의 양이 부족했던’ 힘들었던 시절, 투쟁과 싸움터의 한가운데서 너를 가졌단다. 생후의 네 모습에 대한 기약도 없이 아주 먼 옛날 그 시절에 만들어진 너의, 마치 미숙아처럼, 아직도 축축한 피부 속 한 자루 내장, 팔딱거리는 허파 잎, 잘 가거라. 잘 마르고 영글거라. 네 길을 가거라.”

......

“앞선 지성들 깨달음 알려온 ‘용감한 전위’ 그 기록들 잘 갈무리하리다” - 이기웅/열화당 발행인

- 2022.03.25. 한겨레신문 기사 중 일부


살면서 내가 사는 세상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무겁고 긴 질문들을 내게 던지고 떠난 분들의 평안한 영면을 기원한다. 여전히 나는 세상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잘 모른다. 하지만 그 질문을 안고 사는 삶이 계속 이어져도, 그 분들에게 끝모를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잘 지내시길,

이 세계의 모든 섬에서

고독에게 악수를 청한 잊혀갈 손이여

별의 창백한 빛이여


- 허수경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 중 일부. 문학과지성사,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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