갖고 있는 능력은 뻔한데 호기심은 끝을 몰라서 새로운 뭔가를 찾는 작업을 계속 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정작 연재를 계속 해야 할 글들은 맺음에 닿지 못한다. 새로운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글쓰기란 영감과 상상만으로 무작정 달려들 일은 아님을 새삼 절감하는 계절이다. 누군가는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일단 쓰기 시작하라"고 말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항상 루쉰이 했던 말을 되뇌인다. 하다못해 일기를 쓰더라도 언젠가 타인이 읽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쓰기 마련이라고. 그래서 짧은 글 한 편이라도 무엇을, 어떻게 쓸지 생각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내게는 인지상정이다.
나는 (나 자신의 경험에 따라) 생각하는데, '써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라는 지점에서부터 출발할 경우, 시동이 걸리기까지는 상당히 힘이 들지만 일단 비이클이 기동력을 얻어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하면 그다음은 오히려 편해집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p.134 (현대문학)
그런 핑계를 바탕으로 덮어두었던 시집을 열거나, 누군가의 소설들을 읽고, 메모해두었던 영화를 보며 상상하기를 이어간다. 그리고 취재, 인터뷰(그래봐야 주변인들에게 경험담이나 의견을 묻는 일이지만), 자료 모으기를 한다.
글쓰기를 쉽게 대했던 시절 우연히 수첩에 적어놓았던 메모 한구절을 다시 열어본다.
"읽는 이에게 가볍게 들여다보고 한 조각의 상념 정도만 권하면서, 죽음을 목도하거나 절망의 마지막 타래를 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려하다니. 때로 글쓰기는 잔인한 작업이다."
어떤 형태의 글을 쓰건 읽는 이의 감정에 작은 흔들림이라도 주고자 하는게 내 글쓰기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그러니 일단 쓰고보는 일이 나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단 한 줄의 문장이라도 공을 들여야한다는 게 내게는 글을 쓰지 못하는 가장 그럴 듯한 변명이 될 것 같다.
그렇지만 나와 그 사람은 뒷골목을 걷다가 마주치더라도, 지하철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더라도, 슈퍼마켓 계산대에서 앞뒤로 줄을 서 있더라도, 서로의 뿌리가 이어진 것은 (대부분의 경우)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는 서로 낯선 이들로서 그냥 스쳐 지나가고, 아무것도 모른 채 각자 갈 길을 갈 뿐입니다. 아마 두번 다시 마주칠 일도 없겠지요. 하지만 실제로는 땅속에서, 일상생활이라는 단단한 표층을 뚫고 들어간 곳에서, '소설적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공통의 이야기를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합니다. 내가 상정하는 것은 아마도 그런 독자입니다. 나는 그런 독자들이 조금이라도 즐겁게 읽어주기를, 뭔가 느껴주기를 희망하면서 매일매일 소설을 씁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p.272 (현대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