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밤 산책 07화

도서관 색인, 영혼이 깃든 자리들

by 현율


작가 김초엽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는 <관내분실>이라는 단편소설이 담겨있다. SF 소설은 장르 특성 상 미래에 ‘실현될 수도 있는’ 배경이나 상황에 대한 설명이 불가피한데, 작가는 이를 능숙하고 노련하게 문장들 사이에 녹여낸다. <관내분실>에서는 미래의 도서관이 이런 배경에 해당한다. 작가가 설정한 미래의 도서관은 책이나 자료가 아닌, 죽은 자의 “마인드”-망자의 뇌를 스캔해서 얻은 기억과 이미지들을 보관하는 곳이다. 종이로 만든 책이 사라진 미래에서 도서관은 죽은 자의 정보가 보관되고 그 정보와 접속을 하는 납골당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장소인 셈이다. 실타래처럼 엮인 인간의 본성과 인류 미래에 대한 이야기에 흡인되면서도, 마음 한편으론 도서관에 대한 기억들이 봄날 새싹처럼 올라왔다. 그건 현재의 도서관과는 또 판이하게 다른 과거의 그것과 연결된 것들이었다.


먼 과거에 졸업을 앞두었던 나는 논문의 주제를 ‘Neural Network’으로 설정했었다. 인공지능에 대해 기초적 활용법 외에는 제대로 된 이론이 없던 시절, 풋풋한 대학원생의 제법 야심한 포부였다. 문제는 자료 확보 단계부터 발생했다. 생소한 분야이다 보니 활용할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한 현실에 부닥쳤던 것이다. 도서관들의 검색시스템이 아직 정착되지 않았던 시절, 대부분의 도서관들은 아날로그 검색방식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었다. 그 대표적인 장치가 도서관 색인 카드 체계였다. 논문 하나라도 찾으려면 한의원 서랍장처럼 생긴 색인카드목록함에서 서랍마다 담긴 목록들을 하나씩 뒤져야 했다. 내가 찾고자 하는 자료의 제목과 저자를 명확히 알고 있다면 간단한 일이지만, 막연한 주제로만 접근한다면 자료 검색 자체가 몇 시간으로도 부족한 방대한 작업이 된다. 하나의 논문을 찾아서 수록된 참조자료들을 기준으로 다시 자료항목들을 나열하고, 색인카드 서랍장을 다시 뒤지고, 그렇게 찾은 자료에서 목록을 다시 수정하는 일을 반복하는 식이다. 다니던 대학의 도서관에서 시작한 이 작업은 국립도서관, 국회도서관, 지방의 여러 대학 도서관들까지 방문하며 치르는데 대략 두어 달이 걸렸다. 요즘이라면 몇 시간에서 며칠이면 충분할 작업들인데, 현재의 자료 검색 환경은 과거의 내겐 SF 소설과도 같은 것이었다.


ilb1.JPG (이미지 출처: 국회도서관 누리집)


그런데 그렇게 지난한 자료 찾기의 일들이 내게는 고통스러운 과정으로만 기억되고 있을까. 기억이 추억으로 윤색되었을지 모르나, 도서관의 오래된 서고와 나무로 된 카드목록함들은 내게 나른한 봄꿈의 조합이다. 낡은 서고에서 나는 종이 냄새들, 스쳐간 사람들의 손길로 반드럽게 닳아버린 목록함의 서랍들, 그 안에 사서들의 고단한 작업으로 채워진 색 바랜 카드와 달그락거리며 서랍을 여닫는 소리들. 세련된 건물 외양과 햇빛이 가득한 통유리 외벽, 모니터와 키보드로 채워진 자료 검색대가 익숙해진 지금의 도서관을 가면 나는 여전히 그 기억에 젖곤 한다. 그 당시 타자기를 이용해 만든 색인카드들을 넘기다보면 이따금 손 글씨로 채워진 카드가 나오곤 했다. 아마 누군가 급하게 새로운 카드를 작성해야 했거나, 훼손된 카드를 대체해야 했을 것이다. 그럴 때면 정갈하게 적어낸 글씨체와 빛바랜 카드 위 검푸른 잉크 색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SSC_20240830014222_O2.jpg (이미지 출처: 서울신문, '지식을 담아내려, 생각을 비워내려… 책의 광장에서 ‘담화만개’ [박상준의 書行(서행)]' 2024. 8. 30)


소설 <관내분실>은 미래의 도서관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다.


“한때 도서관이라고 불렸던 장소 중 일부는 박물관이 되었고 그럴 가치가 없는 곳들은 대부분 전산화되었다. 지금의 도서관은 다른 개념이다. 이곳에 있는 건 책도 논문도, 그 비슷한 자료들도 아니다. 이제 도서관엔 끝없이 늘어섰던 책장 대신 층층이 쌓인 마인드 접속기가 자리하고 있다.

사람들은 추모를 위해 도서관을 찾아온다. 추모의 공간은 점점 죽음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장소로 변해왔다. 도시 외곽의 거대한 면적을 차지했던 추모 공원에서, 캐비닛에 유골함을 수납한 봉안당으로, 그리고 다시 도서관으로. 도서관을 드나드는 이들 중에 헌화하기 위해 꽃을 가져오는 사람은 없다. 대신 도서관에서는 마인드에게 건넬 수 있는 데이터를 판다. 꽃이나 음식, 생전에 고인이 좋아했던 물건들을 모방하는 데이터 조각들이다.“

- 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중 <관내분실> p. 223-224 (허블)


전문가들은 ‘검색’이라는 주제에 대해 ‘정보를 찾는 행위’를 넘어 미래에는 구매, 소통 등 ‘구체적인 행위’로 연결되는 세상을 이야기한다. 저자의 소설처럼 “마인드 접속”을 통해 죽은 자의 영혼과 소통을 시도하는 것이 마치 미래의 검색이 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구시대 도서관의 색인카드함 낡은 서랍들안에는 훨씬 많은 영혼들이 잠들어 있었다. 이름 모를 논문의 저자들이나, 괴테부터 카프카, 이효석에 이르기까지, 눈부시게 아름다운 ‘마인드’들이 그 카드에 정성스럽게 담겨져 있었다. 터무니없지만 눈과 손가락으로 색인카드를 하나씩 확인하던 그 원시적 검색행위가 이따금 그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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