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밤 산책 04화

만년필을 위한 변명

by 현율


새벽 2시. 미리 작성했던 초고를 펼쳐놓고 두 시간째 제 자리에서 깜박이는 커서를 바라보고 있다. 목에 걸린 생선가시마냥 성긴 문장들을 타이핑했다가 지우기를 수십 번. 나타나야할 문장이 동짓날 얼어붙은 수도관 안에서 숨죽일 뿐 도무지 드러내질 않는다. 이쯤 되면 문장 전개가 될 리 없다. 머릿속은 온통 뒤죽박죽인 채 단어의 타래는 단단한 뭉치가 되어버렸으니.



서랍을 열어 만년필과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만년필은 1900년대 초반 세계대전 이전에 영국에서 제작된 ONOTO의 빈티지 모델이다. 어림잡아도 백년은 족히 넘었을 나이를 가진 펜이다. ONOTO는 지금도 고가의 만년필을 제조하고 있으나, 내가 가진 이 펜을 만들던 회사와 동일하다고 볼 수는 없다. ONOTO는 토마스 데라루(Thomas de la Rue) 경이 1905년 런던을 기반으로 설립한 회사로, 20세기 초반 영국 최고의 만년필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파커나 워터맨의 흥행에 그 자리를 내주고 1950년대 후반 사실상 펜 제조를 멈추게 된다. 지금의 ONOTO는 2000년대 들어 새로운 주인과 함께 부활한 브랜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니 내게는 이 펜이 특별할 수밖에 없다. 윈스턴 처칠이나 나쓰메 소세키가 ONOTO를 사용하던 시절의 바로 그 펜이기 때문이다.



펜을 책상에 올려놓고 상상을 이어가본다. 1910년 이 회사가 런던에 브랜드 첫 번째 가게를 열었을 때, 거리는 이제 막 대중화가 이루어진 자동차들이 물결을 이루고 있었을 것이다. 바다 건너 미국에서 포드가 명성을 떨칠 무렵 유럽에서는 메르세데스나 시트로엥들이 기지개를 펴고 있었다. 모터스포츠가 태동할 그 무렵 런던 Bunhill Row 거리에 롤스로이스가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멈추고, 차에서 내린 그는 ONOTO 가게에 들어서서 5파운드에 육박하는 이 펜을 골랐을 것이다. 펜 한자루에 5파운드라니. 급격한 산업화로 노동자들은 주당 60여 시간을 일하면서도 30실링 수준의 형편없는 급여로 분노가 불길처럼 번지고 있었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정당화하려는 노둥운동이 들끓기 시작하고 있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1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드리워지고 있었을 것이다.



이 펜의 주인은 급격한 산업화의 물결과 유럽을 휩쓴 두 번의 전쟁을 지내며 어떻게 되었을까. 혹시 가문의 몰락으로 하나씩 그의 값비싼 물건들이 경매 시장에 등장했을 수도 있고, 이 펜은 100년이라는 시간동안 몇 차례 바다를 건넜을 수도 있다. 때로는 증기 화물선으로, 때로는 페덱스 로고가 그려진 비행기로. 어쩌면 내가 첫 번째 아시아 태생 주인이 아닐 수도 있다. ONOTO는 나쓰메 소세키 덕에 일찌감치 일본에서 그 명성을 얻었으니, 소세키처럼 런던으로 유학을 떠났던 일본인이 다음 주인이었을까. 지난 백 년 동안 나는 이 펜의 몇 번째 주인이며, 마지막 주인이 될 수는 있을까.



그 편한 볼펜 놔두고 뭐하는 거냐는 주변의 핀잔에 이 정도 상상이면 만년필을 위한 충분한 변명이 될 수 있지는 않을까. 만년필 이야기는 이쯤에서 멈추고 종이 한 장을 책상 위에 펼친다. 프랑스의 제지사 아조위긴스(Arjowiggins)가 1800년대 후반부터 생산하기 시작한 콩코르(Conqueror) 제품이다. 종이 양면에 골이 있는 질감을 살린 레이드 종이로, 중세 유럽부터 19세기말까지 유럽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패턴을 가진 종이이다. 지금은 고급 인쇄물이나 특별한 질감이 필요한 미술작품에 주로 이용되지만, 나는 여전히 이 종이를 좋아한다. 거친 표면을 가졌지만, 만년필 잉크를 번짐 없이 받아들이면서 그 색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나보다 훨씬 나이 먹은 이 펜 촉이 종이 위에서 움직일 때마다 내가 알 길이 없는 최초의 주인은 어떤 삶을 살았을지 상상한다.



만년필과 좋은 종이는 삶에 특별한 시간을 제공한다. 때로 시간을 멈추고 생각을 해야 할 때, 급하게 내려 쓰는 글자가 아닌 마음속의 문장을 그려나갈 때 필요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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