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영웅을 응원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기억하는 건 악당이야.”
- 스티븐 킹, [음악의 방] 중
어두운 대도시의 밤, 피아노가 있는 방이 밖에서 훤히 보인다. 빨간 드레스를 입은 여자는 피아노 앞에 비스듬히 앉아 손가락 하나를 건반 위에 올려놓고 있다.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는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다. 그림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관음증적 시선을 갖게 만든다. 그러나 화가는 두 인물 표정을 뭉개어 내부 상황을 오로지 상상의 여지로 남겨 놓았다. 그들은 막 귀가하고 무료한 저녁시간을 침묵으로 보내는 중일까, 아니면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지기 직전의 적막일까. 이 그림은 에드워드 호퍼의 ‘Room in New York’ (1932)이다.
2016년 미국의 범죄추리소설 작가 로런스 블록(Lawrence Block)이 주도한 흥미로운 프로젝트의 산물이 나왔다. 17명의 쟁쟁한 작가들이 화가 ‘에드워드 호퍼’라는 공통된 소재로 각자의 소설을 집필하여 하나의 문집으로 묶어낸 것이다. 원제 [In Sunlight or in Shadow]의 이 소설집은 국내에서 [빛 혹은 그림자] (이진 번역, 문학동네, 2017)로 출간되었다. 참여한 작가들은 예술가의 예술가,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로 알려진 호퍼의 그림을 하나씩 선택하고, 작가들은 선택한 그림을 소재로 하거나 그 영감을 바탕으로 글을 썼으니 출판계의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들 특히 미국인들이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화가와 소설가의 만남이 이루어진 순간이다. 참여 작가들 중 스티븐 킹은 호퍼의 ‘Room in New York’을 선택하고 소설의 제목을 ‘음악의 방’ (The Music Room)으로 정했다. [음악의 방]에서 작가는 그림 속의 방에 팽팽한 긴장감과 범죄적 냉혹함을 채워 넣었다. 호퍼의 이 그림이 제작된 시기가 대공황의 절망적 여파가 극에 달했던 1932년이라는 점도 킹에게 충분한 모티브로 작동했을 것이다. 그림 속 남녀는 킹의 소설에서 극단의 상황에서도 운명을 함께 하는 부부로 묘사된다. 소설은 다음의 문장으로 끝난다.
그 말에 두 사람이 웃었다. 오랜 결혼생활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잘 알게 된 사람들이 그렇듯, 편안하게.
소설이 서로 잘 맞는 부부를 이야기한다고 하니, 에드워드 호퍼의 아내 조세핀 호퍼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사실 호퍼 부부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조세핀 역시 미술을 공부했으며, 뛰어난 재능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녀는 남편의 예술작업을 위한 뒷바라지에 삶의 대부분을 소진했다. 조세핀의 삶은 ‘뒷바라지’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헌신적이었다. 남편의 예술적 영감이 지속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그녀는 모든 것을 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호퍼는 아내의 재능이 꽃을 피울 수 있는 일말의 기회조차도 막았고, 심지어 폭력적 행위도 망설이지 않았다. 조세핀이 밝힌 남편에 대한 연민과 원망이나 자신의 불행한 삶에 대한 자조 섞인 고백들은 많은 자료에서 발견되곤 한다.
이런 일이 에드워드 호퍼 부부에만 국한된 일일까. 20세기 미국을 대표하는 화가 앤드루 와이어스(Andrew Newell Wyeth)도 아내와의 관계에 있어 다양한 일화를 품고 있다. 와이어스의 업적도 그의 아내 벳시 와이어스가 없었다면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호퍼의 아내 조세핀과 달리 벳시는 호탕하고 사교적이며 사업가적 자질까지 갖춘 여성이었다. 그녀는 일찌감치 남편의 예술적 잠재력을 알아보고, 앤드루 와이어스가 미국의 국민 화가로 불리는 지점까지 끌어올린 당사자였다. 그녀는 남편의 매니저이자 조력가였으며, 프로듀서였다. 하지만 이른바 ‘헬가 스캔들’로 알려진 앤드루 와이어스의 기행은 (아무리 벳시가 호탕하게 넘어간 일이라 해도) 그의 어둡고 불편한 인간적 면모를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아무도 모르게 이웃집 여성을 15년간이나 누드화 모델로 그리며 그만의 관계(?)를 유지해온 일은 80년대 중반 세상에 알려지며 천재적 예술가에 대한 도덕적 비난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와이어스가 추잡한 인간으로 전락할 위기를 타개한 것 역시 벳시의 몫이었다고 봐야한다. 그녀는 오히려 헬가의 연작 전시기획을 추진했고, 감추기보다는 와이어스의 미술적 가치를 높이기 위한 방편을 택했다.
호퍼가 뒤늦게라도 아내의 삶을 억누른 자신의 폭력을 뉘우쳤을까? 와이어스는 훗날 평생의 매니저인 아내에게 공유하지 못했던 자신의 비밀작업에 대해 진솔한 고백을 했을까? 고개를 끄덕일만한 자료는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예술적 명성과 과업 뒤에 숨은 이런 비극적이거나 불편한 이야기들은 조세핀이나 벳시에게만 국한된 일은 아닐 것이다.
화풍은 무척 다르지만 두 화가 작품들의 공통점은 ‘인간의 고독’을 각자만의 방식으로 현실화했다는 점이다. 소설집 [빛 혹은 그림자]는 각 단편마다 작가들이 선택한 호퍼의 그림들이 실려 있다. 호퍼는 평생 아내 조세핀을 모델로 그림을 그렸다. 그림마다 다른 자세, 다른 표정의 조세핀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조세핀을 발견할 때마다 지독한 사실주의를 경험하게 된다.
위대한 예술이 항상 도덕적일 수는 없다. 그러나 조금만 더 인간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너무 순진한 것일까. 그마저도 어렵다면 그들의 빛과 그림자 모두를 바라보는 것이 관객의 몫은 아닐까. 세상의 모든 조세핀과 벳시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