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티 좋아하세요?

<필 스터츠의 내면 강화>

by Little Prince

감고 있던 눈꺼풀이 점점 가벼워지다 못해 눈동자를 덮고 있는 미끌미끌한 촉감이 선명해진다. 가벼워진 머릿속이 전구를 켠 듯 환해져 떠오르는 생각들 하나하나를 들여다보고 있다.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몸 안의 감각도 또렷해진다. 심장 박동이 느껴지고 혈관을 타고 흐르는 혈액의 움직임마저 들리는 듯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한참을 부동의 자세로 누워 눈을 감은 채 깨어있다 옆으로 돌아누웠다.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어둠 속을 응시하자 블라인드 틈을 타고 들어오는 밤의 불빛을 받은 방안 물건들의 실루엣이 살아난다. 화장대 위에 놓여있는 화장품과 거울, TV 화면에 희미하게 반사되는 불빛, 희끄무레하게 뭉뚱그려지는 물건들이 또렷해진 시선 안으로 들어온다.


몇 시일까. 숙면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침실에 시계와 핸드폰을 두지 않아 일어나야만 한다.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내려와 슬리퍼를 신고 거실로 나갔다. 식탁 위에 놓아둔 아이패드 전원 버튼을 눌렀다. 11시 22분. 평소라면 잠들어 있을 시간이다. 곧바로 침대로 돌아와 다시 누워 잠을 청해 본다. 하지만 정신이 맑아지기만 하는 게 이상하다. 어둠 속에서 뒤척일 때마다 더는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은 기분 나쁜 두려움이 스며든다.


아! 밀크티였다. 오후에 카페에서 빨대로 쪽쪽 소리까지 내며 한 번에 먹은 밀크티 때문이었다. 얼음 조각이 든 유리컵 안에 담긴 은은한 베이지색의 밀크티를 빨대로 휘휘 젓고 빨아들이는 순간 입안으로 달콤 쌉싸름한 홍차 향이 밴 시원한 우유가 입안으로 들어왔다. 부드러운 우유에 시럽의 달콤함과 찻잎의 쌉싸래함이 녹아든 맛에 멈출 수가 없었다. 삼키고 난 뒤 혀끝에 남아 있는 홍차의 은은한 떫음은 깔끔하면서도 향긋하다. 몇 번 깊이 빨아들이니 어느새 바닥에 있는 얼음 밑까지 줄어들었다. 빨대로 얼음 조각 사이를 휘저으며 얼음을 녹여 마지막 남은 몇 방울까지 알뜰하게 먹었던 것이 이제야 생각났다.


카페인에 민감한 나는 커피는 전혀 마시지 않는다. 에너지 음료나 차 종류도 즐기지 않는 내가 유일하게 매혹되는 것이 바로 밀크티다. 우유와 차가 만나면 어떤 맛이 날까 궁금하기도 했고 우유가 더 많으니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마셔본 후 밀크티와 ‘카페인 숨바꼭질’을 하며 지내왔다. 밀크티를 마신 날, 숙면과 불면을 오가기를 수년째 해오고 있다. 숨바꼭질을 감당할 만큼 그 맛의 세계는 매혹적이다.


카페인은 아데노신이라는 신경전달 물질의 수용체를 차단한다. 아데노신은 신경 활동을 억제하고 졸음을 유발하는데 카페인은 이를 막아 각성, 집중력 증가, 피로 완화의 효과를 낸다. 도파민과 노르아드레날린의 분비를 촉진해 기분을 좋게 만들고 심박수 또한 높인다. 대표적으로 커피, 초콜릿, 에너지 음료, 홍차, 녹차 등에 들어 있다.


밀크티의 카페인 함량은 사용된 홍차의 종류와 우려내는 시간, 농도, 우유 비율에 따라 달라진다. 일반 홍차 200 ml에는 약 40~70mg 정도의 카페인이, 우유에 희석한 밀크티에는 보통 30~60mg 정도 들어있다고 한다. 드립 커피 한잔에 100mg의 카페인이 들어있다고 하니 절반 정도의 양이 밀크티 안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차의 종류와 농도, 비율 등이 나의 카페인 민감성 역치를 넘지 않는다면 ‘오늘 괜찮네.’ 하며 잠들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오늘처럼 각성의 밤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오늘 밤에도 이제부터는 밀크티를 마시지 않겠다는 또 다른 각성을 해본다. 지키지 못한 나와의 약속 리스트에 더 이상 올리지 않기를 바란다.


제임스 테일러라는 가수는 ‘인생의 비밀은 시간의 흐름을 즐기는 것이라네.’라고 노래했다. 시간은 따라잡으려 좇을수록 움켜쥐려 할수록 손가락 사이를 교묘하게 빠져나간다. 지금 시대는 우리를 둘러싼 기계( 핸드폰, 컴퓨터, 자동차 등 본래 시간을 단축해 주는 목적이었던 것들) 에게 시간을 온통 잡아먹혀 자신을 위한 시간은 늘 부족하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스터츠>로 알려진 필 스터츠는 우리가 시간과 맺은 관계를 회복할 유일한 방법은 각자 책임감을 느끼며 습관을 바꾸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규율이 필요한데 그중 한 가지가 ‘헌신’이라고 한다.


헌신이란 어떤 행동을 하겠다고 자신에게 약속하면 그 약속을 지키는 걸 의미한다. 매일 아침 7시에 글을 쓰겠다고 다짐하면 그 시각에 글을 쓰는 것. 그러면 7시는 나에게 신성한 시간이 된다. 7시는 자신에게 헌신하는 것을 증명할 기회가 되는 것이다. 이런 행동이 습관이 되면 인생은 헌신과 행동이 규칙적으로 순환하는 형태로 펼쳐진다. 헌신은 현재의 나를 행동해야 하는 미래의 나와 이어주며 행동은 현재의 나를 헌신을 다짐한 과거의 나와 이어준다. 이렇게 과거, 현재, 미래를 하나의 연속된 것으로 경험하면 시간의 흐름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이 흐름 없이는 인생은 그저 무관한 사건의 나열일 뿐이다. 진정한 자신감은 시간의 연속체 안에서 잘 살아가는 자신을 느낄 때만 찾아온다.


같은 시각에 자고 일어나자는 나와의 약속에 헌신해보려 한다. 그러기 위해서 순간의 달콤함에 매혹되어 카페인을 선택하는 우를 범하지 않겠다. 이제 우리 헤어지자.



밀크티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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