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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내가 나의 양육자가 되어주기로 했다.

아동학대의 생존자. 불안장애, 강박장애와의 사투는 현재 진행형

by wounded healer Feb 17. 2025

1. 엄마가 아빠에게 맞아서 죽어있을까봐 유치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을 재촉했던 다섯살 꼬마


아빠는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고 겉으로 보기에 우리 집은 아주 이상적인 가정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실상 우리집은

죽음에 이를 수 있을 정도로 심한 폭력이 매일같이 일어나는 전쟁터였다.


다섯살 때 본 장면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아빠가 엄마를 때려 눕힌 후 엄마의 목을 발로 밟았다. 나는 그때 엄마의 혀가 나오는 것을 보았다. 사람의 혀가 생각보다 길다는 것을 알았다.


아침에 엄마랑 아빠랑 싸우면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발걸음이 분주했다. 엄마가 죽어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하는 상상을 수도 없이 했다.


대학 교양에서

아동의 생애 초기 경험이 얼마나 중요하고 치명적인지에 대해서 배웠을 때, 나는 더욱더 엄마아빠가 원망스러웠다.


아빠는 경제적으로 무능력했으며 밖으로만 돌았다. 실제적으로 가정경제를 돌보는 것은 엄마가 알아서 해야했다. 아빠는 역마살이 낀 사람마냥 그저 밖으로 밖으로 나돌았고 엄마는 평생 집에서 외롭게 기다리는 삶을 살았다.


아빠는 여자문제도 많았다.

그 상간녀의 집에 엄마와 같이 처들어간 적도 있었다. 나는 정말 가고싶지 않았다. 나는 이것도 엄마의 아동학대였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나는 우리 가정의 실체가 드러나면 다른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공인이라고 할 수 있는 아빠의 자리는 나를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어릴 때 사진에는 잔뜩 겁을 먹은 눈이 큰 아이가 있다.


나는 공부를 잘했고 아이큐도 147이었으며 다른 영역에도 재능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엄마에게 단한번도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다.

선생님, 친구들, 심지어 친구들의 엄마들이 나를 칭찬해도 나는 그 칭찬이 어색하고 믿기지 않았다.

내가 제일 인정받고 싶었던 엄마가 나를 단 한번도 인정해준 적이 없기에.


아빠는 경제적으로도 무능력하면서 엄마를 사랑해주지도 않았고, 자기부모형제들에게서 독립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제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었으면 거기에 충실해야하는데 그저 자기집 들락거리기에만 바빴다. 그러면서 동시에 흘리는 스타일이라 아무 여자에게나 친절했다.


아빠가 엄마를 발로 차서 갈비뼈를 부러트려도, 엄마는 넘어져서 다쳤다고 하며 정형외과를 다녔다.


나는 아빠의 이중적인 모습을 볼 때마다 아빠를 똑바로 쳐다보며 내가 아는 모든 욕을 쏟아부었다. 물론 속으로.


아빠의 엄마에 대한 폭력은

엄마의 나를 향한 폭력으로 이어졌다.


다음 이야기

나를 묶어놓고 때렸던 포악하고 잔인했던 엄마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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