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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지하 1층에 있었다.
이곳은 1층의 모든 수조를 합한 것만큼이나 거대한 수조가 있는 공간이었다.
수조 안에는 수많은 물고기들이 빠글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한쪽에는 전기뱀장어, 전기메기, 그리고 전기가오리를 위한 별도의 수조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각종 실험 장비들도 곳곳에 놓여 있었다.
정이나, 이시연, 전우성,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실험실 중앙에 앉아 있었다.
정이나의 앞에는 따뜻한 차가 놓여 있었다.
전우성의 아버지가 차분한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전호수라고 해."
그의 말투는 부드럽고 다정했다.
"많이 놀랬지, 이나야?"
그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정이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정이나는 차를 한 모금 홀짝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그런데…" 그녀는 전호수를 한 번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미남이시네요. 전우성 아빠라는 게 안 믿겨요."
전호수는 웃음을 터뜨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우성이는 엄마를 많이 닮았지."
그는 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전우성의 머리는 가라앉아있었고, 이따금 전류가 튀었다.
그는 안경을 쓰지 않은 맨 얼굴이었다.
"상어라니, 어떻게 된 일이죠?" 전우성이 말했다.
그들은 CCTV 앞에 앉아있었다.
전호수가 CCTV를 재생했다.
아쿠아리움의 하루가 재생되었다.
"우리 아쿠아리움에는 상어는 없어.
그리고 아직 개관 전이라 관계자들만 오고갔기 때문에, 어떤 일이 발생했다면 이 CCTV로 금방 찾을 수 있을거야."
화면에서는 관계자 몇몇이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던 중, 사람들이 픽픽 쓰러지기 시작했다.
이건 오늘 주지영이 모두를 우성이의 꿈에 초대했을 때의 모습이고," 전호수가 설명했다.
정이나가 전우성을 쳐다봤다. '정말 전기 초능력자였다니.' 그녀가 믿기지 않는듯, 맨 얼굴의 전우성을 응시했다.
전우성은 지금 CCTV 화면에 강렬하게 집중하고 있었다.
CCTV 화면이 빠르게 재생되던 중, 정이나는 멈칫했다.
'저건 우리 아빤데…'
CCTV 화면에 찍힌 남자들 중에 그의 아버지가 있었다.
화면에서 몇몇 사람들이 오고가는 중에 전우성이 말했다.
"잠깐! 저 여자는 누구죠?"
전호수가 화면을 멈추며 대답했다.
"사진 작가란다. 이름은 고유리, 프리랜서지.
아쿠아리움 홍보용 사진을 찍어야 했거든."
전우성의 머리가 다시 번쩍이기 시작했다.
그의 눈에 몇가지 전기 신호들이 스쳐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빠른 스캔을 하는 중이란다,"
전호수가 정이나와 이시연에게 설명했다.
이윽고 전우성이 말했다.
"큰일이에요, 능력자에요."
정이나는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복잡했다.
주지영에 대한 이야기, 아쿠아리움에서 벌어진 일들과 전우성의 능력, 그리고 고유리라는 또 다른 능력자까지…
모든 것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전호수는 정이나를 다정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은 늦었으니 집으로 돌아가거라."
정이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어머니가 데리러 오신댔어요."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방금 연구실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곱씹었다.
전우성의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그의 아버지 전호수는 전화기를 들었다.
전호수가 전화한 곳은 국가초능력정보원이었다.
곧이어, 한 여성과 남성이 연구실로 찾아왔다.
그 여성과 남성은 다른 곳으로 전화를 걸었고, 곧 요원들이 출동할 거라고 말했다.
전우성은 그들에게 말했었다.
"고유리는 지금 미술관 '에스키모'에 있어요. 여기서 한 블록 떨어진 곳이에요."
그는 능력을 통해 고유리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한 상태였다.
그리고 전우성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아직 본인의 능력을 모르고 있는 상태예요."
여자 요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전우성과 전호수에게 말했다.
"미술관이 닫기 전이라 아직 사람들이 많이 있어.
우성이의 능력이 고유리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건 최대한 막아야 해."
그런 다음, 그녀는 정이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나에게는 이 모든걸 설명해줘야겠구나, 아버지한테 이야기를 들으면 될거야."
차가 도로를 달리는 동안, 정이나는 걱정 어린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과연 이 일이 잘 해결될까? 그리고… 아버지는 무엇을 알고 있는 걸까?
정이나가 집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가 깨어있었다. 그의 이름은 정호산이었다.
어머니는 말했다.
"너희 아빠는 운도 좋지, 아침에 비행기를 타고 도착해서는 바로 잠을 잤단다.
그래서 6분간 전세계가 잠에 빠질 때에도 쿨쿨 잘 자고 있었지.
점심에는 볼일이 있다고 나갔다 온 다음에는, 다시 방 안에서 잠을 잤단다."
정이나는 어머니에게 웃어보이며, 한편으로는 아버지를 째려봤다.
아버지는 뭔가 뜨끔해보였다.
"아빠랑 할 얘기가 있어요."
정이나는 아버지와 서재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재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책상 위에는 사진 한 장이 놓여 있었다.
그 사진은 아버지가 일주일간의 출장 중에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 속에는 국가 고위층들이 모여 있는 회의 자리가 담겨 있었다.
아버지는 사진 속에서 회의의 맨 끝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수상하게도 그의 머리카락이 한쪽으로 쏠려있었다.
마치 정전기를 유발하는 인물이 옆에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정이나는 아버지를 쳐다봤다.
"외교는 참 복잡하지,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말이야.
초능력자도 있는 나라이니까," 아버지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나저나 오늘 꿈은 재미있었니?" 정호산은 딸의 얼굴을 바라보며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이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네, 오늘 전우성이랑 뽀뽀까지 했다니까요."
그녀는 장난스러운 말투로 덧붙였다.
"들어보니 다 걔의 꿈이었다는데, 걔가 날 좋아하나 봐요."
정호산은 그 말을 듣고 크게 웃었다.
"꿈 속에서 나는 왠 교실에 앉아서 쪽지시험을 봐야 했어.
분명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일어나보니 사단이 벌어졌더구나."
정이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알고 있는 걸 다 말해주세요."
정호산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전우성은, 네 옆자리에 앉아 있는 그 아이는 사실 국가에서 관리하는 초능력자란다.
그가 가진 능력은 아주 강력해.
그래서 비밀리에 관리되고 있지.
너희 엄마도 몰라."
정호산은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갔다.
"학교 선생님은 사실 우성이의 어머니란다.
그리고 아쿠아리움 관장은 그의 아버지지.
그 아쿠아리움도 사실 우성이의 능력을 연구하기 위한 실험실이야."
"수행평가 때문에 아쿠아리움에 갔는데, 상어 때문에 죽을 뻔했어요."
그녀는 상어가 자신을 향해 돌진하던 순간을 떠올리며 말했다.
정호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새로 알게 된 초능력자는 꽤 그 기원이 깊어 보이더구나.
지금 그녀의 집과 컴퓨터에서 나온 사진들을 모두 수집하고 있는 중이야, 이 것 좀 보렴."
정이나는 정호산의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정이나는 깜짝 놀랐다.
사진에는 그녀가 아는 사람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