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흘러가며,
소년은 소녀에 대한 더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서혜선,
전공은 메타버스 도시디자인학이라고 했는데,
소년은 그 전공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는 못했다.
그녀에게 전공에 대해 몇 가지를 물어보았으나,
그녀는 웃는 얼굴로 소년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말로 뭐라 이야기하더니,
그 이후부터는 그저 얼버무릴 뿐이었다.
조별 과제 시간이었다.
교수는 ‘시간의 본질’이라는 주제로 조별 토론을 지시했다.
학생들은 각자 팀을 나누어 토론에 임하기 시작했다.
소년도 자신의 조에 속한 몇몇 친구들과 함께 철학적 개념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지만, 그의 관심은 여전히 그 소녀에게 있었다.
그녀는 마치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처럼 보였다.
“시간이란 직선적인 흐름이라고 생각해,”
소년의 친구가 말했다.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나아가는 일방통행.”
다른 조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소년의 눈은 조심스럽게 서혜선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조용히 자신의 노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강의실의 소란과는 무관한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건 너무 단순한 생각 아닌가?”
소년이 말했다.
조원들은 그를 바라보았다.
“시간은 직선이라기보다는, 더 복잡한 방식으로 움직이는 것 같아. 순간마다 다른 길로 이어질 수 있고…”
“다른 차원에서 시간의 흐름을 본다는 거지?”
친구가 그의 말을 받았다.
“시간 여행 같은?”
그때, 서혜선이 입을 열었다.
“시간은 직선도 아니고, 무한히 다양한 차원도 아니야. 시간은 원형이야.”
학생들이 잠시 멈추고 그녀를 쳐다봤다.
서혜선은 방긋 웃으며 자신의 생각을 이어갔다.
“같은 순간이 언젠가 다시 찾아오게 되어 있어. 우리가 아무리 그 순간을 피하려 해도, 결국 우리는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게 돼.”
“같은 순간이 다시 찾아온다니… 그건 무슨 뜻이죠?” 교수가 흥미롭다는 듯 질문했다.
서혜선은 잠시 고개를 들고 교수와 눈을 마주쳤다.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고, 원을 그리며 반복된다는 뜻이에요.
우리가 경험한 모든 순간들은 언젠가 다시 반복될 거예요.
그게 가까운 미래일 수도 있고, 먼 미래일 수도 있지만, 결국 우리는 그 순간을 다시 맞이하게 될 거예요.”
교수는 그녀의 말에 흥미를 느끼는 듯했다.
“시간이 원이라면, 결국 같은 순간을 반복해서 경험한다는 건가요?”
"네, 하지만 완벽한 원보다는, 나이테와 같이 반복되면서 커져가는 흐름이라고 생각해요."
그녀의 초록빛이 감도는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소년은 그녀의 독특한 시각과 자신감 넘치는 말투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 소녀는 정말로 특별했다.
무언가 이 세계와 어긋난 느낌을 주면서도 묘하게 매력적이었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 소년은 계속해서 서혜선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시간은 원형이며, 언젠가 같은 순간이 다시 찾아온다."
그 말 속에 담긴 의미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무언가 더 깊은 진실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부터 그는 서혜선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