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인당수 02화

2. 심봉사

by 미히

심봉사는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길을 걸었다. 가을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면서 그의 헐렁한 옷자락이 가볍게 흔들렸다. 마을 사람들은 하루를 시작하느라 바빴고, 그의 앞길은 늘 그랬듯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발끝과 지팡이 끝에만 의지해 나아가야 했다.

그때, 어디선가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지나가는 이여."

심봉사는 지팡이를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승려 한 명이 그를 보고 있었다. 갈색 승복을 두른 채 조용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위엄이 느껴졌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용하다고 소문난 승려였다.

"죄가 많은 봉사여, 이리 오라. 내가 너를 보니… 참 불쌍하구나." 승려는 심봉사의 앞길을 가로막듯 천천히 걸어와 말을 이었다. "전생의 죄로 네가 눈이 멀었도다. 그 죄를 씻으려면 공양미 300석을 부처님께 바쳐야 하느니라. 그러면 눈을 뜨게 될 것이다."

심봉사는 처음에는 당황했다. 공양미 300석? 그 어마어마한 양을 어떻게 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가만히 섰었다. 눈이 다시 떠진다는 말은 놀라웠지만, 그에게 그만한 돈도, 곡식도 없었다.

심청은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의 얼굴을 보자마자 무언가를 느꼈다. "아버지, 무슨 일 있으셨나요?"

심봉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청아, 내가... 인당사의 승려를 만났단다. 그 승려가 그러더구나. 공양미 300석을 부처님께 바치면 내 눈을 뜰 수 있다고 말이다."

심청은 가만히 아버지의 말을 들었다. 아버지의 음성에는 희망과 절망이 섞여 있었다. 눈을 뜨고 싶지만, 그 소망을 이루기에는 너무나도 먼 꿈이었다. 심봉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심청은 결심을 굳혔다. 그 순간, 그녀의 마음속에는 한 가지 생각만이 자리했다.

며칠 후, 심청은 아버지 몰래 자신의 몸을 공양미 300석에 팔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어느 날, 그녀는 조용히 인당수로 향하는 길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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