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KE OF OUROBOROS 2
호숫가에 그림자가 살았다. 그것은 형체 없는 존재, 바람처럼 스며들고 공기처럼 흐르는 신비한 실체였다. 용의 눈에 띄지 않는 한, 그림자는 자유로웠다. 물 위를 미끄러지듯 스치며, 얽매임 없이 호숫가를 배회했다. 그러나 용의 눈에 포착되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림자의 움직임은 용의 빛나는 눈동자에 얽히며 그 의지에 굴복해야 했다. 용의 눈은 태양처럼 밝게 빛나며 세상을 비췄고, 그림자는 그 빛 아래서 숨을 죽였다.
용의 눈이 세상을 지배했다. 그 눈은 하늘을 꿰뚫고 호수를 감시하며 모든 것을 굽어보았다. 그러나 용이 피로에 지쳐 눈을 감으면, 거대한 몸이 천천히 호숫가로 내려앉았다. 비늘이 물에 잠기며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고, 세상은 깊은 어둠에 휩싸였다. 그 순간, 그림자는 기다렸다는 듯 살포시 눈을 떴다. 어둠 속에서 스멀스멀 호숫가 위로 올라와 자유를 만끽했다. 그림자는 하늘을 향해 몸을 뻗으며 바람과 하나가 되었다. 그 찰나의 순간만큼은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는 해방감을 느꼈다.
하지만 자유는 늘 덧없었다. 어둠이 걷히고 용이 다시 눈을 뜨면, 그림자는 억눌린 채로 호숫가에 갇혔다. 매번 하늘을 오를 때마다 그림자는 간절한 갈망에 사로잡혔다. 영원한 자유를 꿈꿨다. 용의 눈을 가지면, 그 빛을 손에 쥐면, 자신도 용에게 얽힌 제약을 끊고 하늘을 마음껏 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 생각은 그림자의 마음속에서 점점 더 커졌고, 마침내 결심으로 굳어졌다.
어느 날, 기회가 찾아왔다. 용이 물을 마시기 위해 호수 가까이 고개를 숙였다. 입안에 물을 머금고 음미하듯 두 눈을 감았다. 세상이 잠시 어두워진 그 틈을 그림자는 놓치지 않았다. 날카로운 그림자의 이빨이 용의 눈을 파고들었다. 용은 고통에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거대한 몸이 한쪽으로 기울며 호수가 출렁였다. 그림자는 용의 눈을 입에 물고 하늘로 솟구쳤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눈을 훔친 순간, 그림자는 승리의 환희에 몸을 떨었다.
세상이 다시 환히 밝아졌다. 그림자의 검은 형체가 점점 벗겨지며, 그 안에서 새로운 모습이 드러났다. 용의 눈에서 뿜어져 나온 빛이 그림자를 뒤덮자, 그림자의 몸은 용을 닮아갔다. 비늘이 돋아나고, 날개가 생겨났다. 그림자는 하늘을 향해 끝없이 날아올랐다. 부푼 꿈과 기대가 두 눈을 가득 채웠다. 자유를 쟁취한 기쁨에 그림자는 환호성을 질렀다. 하늘이 그의 것이 된 듯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림자가 입을 벌리며 승리의 외침을 내뱉는 순간, 물고 있던 용의 눈이 목구멍으로 미끄러졌다. 뜨거운 빛이 그림자의 뱃속으로 굴러떨어지며 불타는 고통을 안겼다. 그림자는 당황했다. 몸속에서 타오르는 열기에 비명을 질렀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었다. 용의 눈은 위장을 녹이며 점점 더 깊이 파고들었다. 이윽고 그림자의 몸에서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하늘 한복판에서 그의 몸은 조각조각 갈라졌다.
그림자의 다리 부분에서 닭이 튀어나왔다. 꼬리에서는 돼지가, 주둥이에서는 쥐가, 머리에서는 말이, 뿔에서는 사슴이 쏟아져 나왔다. 빛에 찢긴 그림자의 잔해에서 태어난 짐승들은 후두두 호숫가로 떨어졌다. 물속에 잠긴 그들은 허우적대며 헤엄쳐 호수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다급히 숲속으로 뛰어들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림자는 마지막으로 손을 뻗어 무언가를 붙잡으려 했지만, 이미 그의 몸은 산산이 흩어진 뒤였다.
하늘에는 용의 눈 세 개만이 덩그러니 떠 있었다. 그 빛나는 눈동자들은 여전히 세상을 내려다보며 고요히 빛났다. 그리고 숲속 깊은 곳에서는 그림자의 잔해에서 태어난 동물들이 어둠을 헤매고 있었다. 그들은 자유를 꿈꿨던 그림자의 갈망을 잊은 채, 각자의 길을 찾아 떠돌았다. 호숫가는 다시 침묵에 잠겼고, 용의 비명은 바람 속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