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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로보로스의 호수 (공포 점수 : ★★☆☆☆)

LAKE OF OUROBOROS

by 미히


우주가 막 태동하던 시절, 끝없는 어둠과 고요만이 세상을 뒤덮고 있었다. 별빛조차 희미하고, 생명이라곤 단 한 점도 존재하지 않던 그때였다. 어느 날, 세상의 텅 빈 공간 속에서 기묘한 돌연변이가 일어났다. 그곳에서 찬란한 비늘을 지닌 용 한 마리가 태어났다. 이 이야기는 그 용의 고독하고도 장엄한 여정에 관한 것이다.



옛날 옛적, 이름 모를 먼 곳에서 이 용은 홀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의 비늘은 태양처럼 빛났고, 눈동자는 깊은 우주를 담은 듯 신비로웠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거대한 몸과 강인한 날개, 날카로운 발톱을 지녔음에도, 그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했다. 그의 마음속에는 간절한 소망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단 한 번이라도 거울처럼 맑은 곳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열망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이 어두워지며 회색 구름이 몰려왔다. 갑작스레 천둥이 울리고, 하늘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용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깨달았다. 저 물이 모이면 자신의 모습을 비춰줄 거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상상했다. 투명한 물속에 반사된 자신의 찬란한 비늘과 위풍당당한 모습을.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세상 어디에도 그의 거대한 몸을 온전히 담아낼 만큼 큰 호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용은 실망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 결심했다. 없다면 내가 만들면 되지 않겠는가.



용은 곧장 행동에 나섰다. 그는 자신의 길고 유연한 몸을 둥글게 말았다. 그리고 자신의 꼬리를 입으로 단단히 물었다. 그의 강력한 이빨이 비늘을 뚫고 살을 파고들며 피가 흘렀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거대한 원을 그리며 스스로를 가두었다. 그의 몸은 물을 가둘 둑이 되었고, 그 안은 곧 텅 빈 호수의 형상을 띠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것은 기다림뿐이었다. 비가 내려 그 호수를 채워주기를 기다리는 긴 시간이었다.



세월이 흘렀다. 용은 꼼짝없이 그 자리에 머물며 비를 기다렸다. 바람이 그의 비늘을 스치고, 태양이 그의 몸을 뜨겁게 달구었다. 차가운 밤이 찾아오면 서리가 그의 등을 덮었고, 다시 뜨거운 낮이 오면 그 서리가 녹아내렸다. 오랜 기다림 속에서 용의 몸은 점점 굳어갔다. 비늘은 돌처럼 단단해졌고, 근육은 뻣뻣해졌다. 그러나 그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소망을 잊지 않았다.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그 간절함이 그를 지탱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이 다시 어두워졌다. 구름이 몰려오고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마침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가느다란 물줄기였지만, 곧 폭포처럼 쏟아졌다. 물은 용이 만든 둑 안으로 흘러들며 점점 차올랐다. 호수 안에서 물의 압력이 느껴졌다. 그의 입과 꼬리가 분리될 듯 아찔한 고통이 밀려왔다. 하지만 용은 이를 악물었다. 꼬리를 더 세게 물며 그는 고통을 참아냈다. 비가 계속 내리는 동안, 그는 한순간도 꼬리를 놓지 않았다. 그의 몸은 갈라질 듯 흔들렸지만, 그는 버텼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마침내 비가 그치고, 하늘이 맑아졌다. 용이 만든 호수는 물로 가득 찼다. 잔잔한 수면 위로 햇빛이 반사되며 눈부신 빛을 뿌렸다. 용은 천천히 입을 벌렸다. 꼬리가 풀리며 그의 몸이 자유로워졌다. 오랜 고통 속에서 굳었던 허물이 벗겨지며, 그는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그는 고개를 숙여 호수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에서 그는 마침내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반짝이는 비늘, 우아한 곡선을 이루는 몸, 깊은 눈동자까지. 그는 자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 용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긴 기다림과 고통의 끝에서, 그는 드디어 자신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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