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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류 (공포 점수 : ★★★★☆)

REFLUX

by 미히 Mar 09. 2025

흐릿한 안개가 강 위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짙은 회색 베일 속에서, 작은 뗏목 하나가 거센 물살에 몸을 맡긴 채 위태롭게 떠내려가고 있었다. 뗏목은 허술하게 엮인 나무토막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위에는 다섯 명의 사람들이 불안한 균형을 유지하며 앉아 있었다. 뱃사공은 앞에 앉아 묵묵히 노를 저었고, 그 뒤로 노인, 젊은 청년, 어린 소년, 그리고 여인이 서로를 의지하듯 가까이 붙어 있었다. 강물은 거칠게 요동치며 뗏목을 흔들었고, 안개는 시야를 가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젊은 청년이 불안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강을 타고 대체 어디로 가는 겁니까?”

그러나 뱃사공은 대답 대신 묵묵히 노를 저었다. 그의 얼굴은 무심했고, 눈빛은 강물처럼 차갑고 깊었다. 청년은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강둑을 따라 쓰러진 나무들이 물결에 휩쓸려 뒤로 떠내려가고 있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

“보아하니 강을 역류하는 것 같은데…”


옆에 앉아 있던 노인이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아니, 우리는 제대로 가고 있소. 강의 하류로 내려가는 중이오.”


청년은 고개를 돌려 노인을 쳐다보았다. 그의 주름진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깊게 새겨져 있었지만, 눈빛은 단단했다.

“하류라는데, 물이 왜 이리 거꾸로 흐릅니까?”


노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이 지역은 특이하오. 일 년에 몇 번 강이 역류하는 때가 있지.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최근 태풍과 폭풍이 잦아졌소. 강력한 바람과 해일이 바닷물을 강으로 밀어 올리면서 이렇게 된 거요.”


청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거센 물살을 내려다보았다. 강물은 어두운 잿빛을 띠고 있었고,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불투명했다.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아무튼 여기 빠지면 목숨 건지기 어렵겠군요.”


그러더니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작은 뗏목으로 강을 건너는 게 말이나 됩니까? 다들 통성명이나 합시다.”


소년이 먼저 나섰다. 어린 얼굴에 맑은 눈동자가 빛났다.

“저는 헤롯이라고 합니다. 하류에 큰아버님이 사세요. 심부름을 갔다가 음식을 대접받고 배웅을 마다하며 떠났는데, 그만 심부름삯을 두고 왔지 뭡니까. 다시 가지러 가는 길이에요.”


그 옆의 여인이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따뜻함과 그리움이 묻어났다.

“저는 하류에 사는 아이를 보러 가는 길이에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죠. 일에 치여 살다 보니 시간이 없었는데, 겨우 짬을 내어 이렇게 나섰습니다.”


노인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나 같은 노인은 집에서 뭘 하겠소? 이 강을 거니는 게 유일한 낙인데, 오늘은 날을 잘못 골랐나 봅니다. 날씨가 이리 험하니…”

그는 청년을 바라보며 물었다.

“젊은 청년은 무슨 일로 이 강을 건너는 거요?”


청년은 잠시 멈칫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하류에 법정을 가는 길입니다. 유일한 재산에 압류 통지서가 날아왔지 뭡니까. 분명 착오가 있는 게 틀림없는데, 전보를 여러 번 보냈어도 답이 없었소. 그래서 직접 따지러 가는 길입니다. 아마도 예전에 도박장에서 돈을 빌린 친구가 저를 고소한 모양인데…”

그는 주먹을 꽉 쥐며 이를 악물었다.

“이 강에 맹세코, 그 녀석을 가만두지 않겠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하늘이 점점 어두워졌다. 안개 위로 먹구름이 몰려오며 빛을 삼켰다. 곧이어 굵은 빗방울이 뗏목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날씨가 참 험상궂군요.”

여인이 낮게 중얼거렸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불안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 순간, 하늘이 찢어질 듯한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쿠궁!”

뗏목이 흔들리며 물이 튀어 올랐다. 소년이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물이 샙니다!”


뗏목 바닥에서 작은 구멍이 뚫린 것이 보였다. 거센 물살이 그 틈으로 밀려들며 뗏목을 천천히 채우기 시작했다. 청년은 이를 악물고 상황을 살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그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갑작스레 그는 소년을 흘깃 보더니 손을 뻗어 그를 강물로 밀어냈다.

“으악!”

소년은 비명을 지르며 물속으로 사라졌다. 뗏목 위의 사람들은 경악하며 청년을 쏘아보았다.

“뭐하는 짓이오!”

노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청년은 멈추지 않았다.

“불만은 지옥에서나 하시지.”

그는 차례로 여인과 노인을 강물로 밀어냈다. 그들의 비명이 안개 속으로 묻혔다. 마지막으로 뱃사공을 향해 손을 뻗었다. 뱃사공은 저항하지 않고 묵묵히 그를 바라보다가 물속으로 떨어졌다.


홀로 남은 청년은 숨을 몰아쉬며 노를 잡았다. 뗏목은 거센 물살에 흔들렸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하류를 향해 나아갔다. 비는 점점 거세졌고, 천둥은 하늘을 갈랐다. 물에 흠뻑 젖은 그는 온몸으로 바람과 싸우며 뗏목을 몰았다.


마침내 뗏목이 나루터에 닿았다. 날씨는 조금 진정되었지만, 하늘은 여전히 잿빛이었다. 검은 태양이 하늘 위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청년은 숨을 헐떡이며 뗏목을 기슭에 댔다. 물에 젖은 옷이 무겁게 몸에 달라붙었다.


그때, 물속에서 무언가가 기어 올라왔다. 뱃사공이었다. 그는 물에 젖은 채로 기슭에 서서 청년을 바라보았다.

“아니, 어떻게…?”

청년은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뱃사공은 말없이 손목에 묶인 끈을 들어 보였다. 그 끈은 뗏목에 연결되어 있었다.


기슭에는 여러 사람이 서 있었다. 한 어린 여자아이가 투구를 손에 들고 초조하게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헤롯님이 오실 때가 됐는데 왜 안 오실까?”

그녀의 목소리에 애타는 그리움이 묻어났다.


나이 든 할머니도 하염없이 강을 응시하며 중얼거렸다.

“엄마가 오늘 온다고 했는데…”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청년을 바라보았다.

“용케 여기까지 왔군. 몸을 압류한다고 했더니 직접 이렇게 행차하셨구만.”

그는 턱을 까닥이며 말을 이었다.

“가자. 네가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던 그 녀석도 여기 와 있다.”


청년의 심장이 얼어붙는 듯했다. 그는 뜨끔한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루터는 을씨년스럽게 변해 있었고, 안개 속에서 사람들의 얼굴은 점점 더 낯설게 느껴졌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그를 데리고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남겨진 한 사람이 낮게 중얼거렸다.

“자기가 어딜 온지도 모르고 저렇게 앞장서 오다니, 참으로 고약한 녀석이로군. 스틱스강이 역류하는 시기에 타르타로스까지 찾아오다니.”


그들의 곁으로, 스틱스강은 다시 조용히 흐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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