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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R

게임같은 현실, 현실같은 게임

by 미히

처음 올라온 ‘그것’은 젖은 머리칼을 질질 끌며 기어 나왔다. 팔꿈치와 무릎이 땅에 쿵쿵 박힐 때마다 살갗에서 물과 검은 액체가 튀었다. 그 뒤로, 또 다른 것, 또 다른 것들이 강변 둔덕을 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눈이 그 형체들에 다가가는 한 남성에게 쏠렸다. 그는 강변을 따라 걷고 있었는데, VR 기기를 쓰고 있었다.


한 형체 앞에 이르자, 그가 왼팔을 휘둘렀다.


형체의 몸이 뭉텅하게 파이면서, 그 안에서 피와 검은 액체가 튀었다.


그제야 그는 VR을 벗었다.


그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게임이 아니었잖아?"


그 순간, 그의 심장에서 불쑥 올라오는 공포가 온몸에 퍼지기 시작했다.


그 남자가 움찔한 그 순간부터였다.


형체들이 방향을 틀더니, 그 남자를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남자의 비명이 터졌다.


“으아악—!”


무언가가 그의 목을 물어 뜯었다.


팔이 튀었다. 살점이 찢어졌다.


사람들의 비명이 사방에서 연쇄적으로 울렸다.


누군가는 아이를 번쩍 안고 달렸고, 누군가는 슬리퍼를 벗어 던지고 뛰기 시작했다. 공원은 금새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 형체들은 비명을 따라 움직였다. 도망치는 사람들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들었다. 그들의 움직임과 속도는 짐승 같았다. 그들의 눈동자는 위아래로 회전했고, 입은 항상 벌어져 있었다.


어떤 이는 도망치다 넘어졌고, 그 위로 두 마리의 ‘인간’이 덮쳤다. 피가, 땅 위에 튀었다.


이건 싸움이 아니었다. 사냥이었다.


그리고 사냥에는 생각이 없었다. 그냥, 움직임만 있었다.


김포 생태공원. 단 한 시간 전까지 조용했던 그곳은 이제 비명과 숨소리와 살점 찢기는 소리로 가득 찼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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