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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랖 Sep 24. 2024

Round 4

장례1일차

한밤 중 아버님의 전화를 받고 나와 남편은 정신없이 시댁으로 향했다.

가면서 119에 전화도 했다.

얼마나 밟았는지 그 지역 119구급차보다 우리가 먼저 도착했고

방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버님이 어머니를 묶어 놓으셨다. 그것도 노끈으로..

관에 들어갈 때 뻣뻣하게 굳어 못 들어갈 것을 염려한 나머지

자식들이 어머니와 나눌 마지막 인사 시간 조차

주지 않으시고

그렇게 몇 개월 병간호에 지친 아버님은..

어머의 손을 묶고 발을 묶고..그 줄연결해서 고정을

해 놓으셨다.


남편은 구슬프게 울었고

그런 광경을 처음 본 나는 눈앞이 갑자기 아뜩해졌다.  놀래서 눈물도 안나왔다.

아버지..왜 그러셨어요..

자식들 먼저 보여주시지..

왜 제게 이런 모습을 어머님의 마지막이라고 기억하게 하시나요..



잠시 후 119 구급대원들이 집으로 들어왔다.

어머니를 구급차에 태우고 아버님도 따라 앉으셨다.

우리는 차를 갖고 뒤를 따랐다.


장례식장이 딸린 근처 병원 응급실로 향했고 의사의 검진이 끝날 때까지

병원 대기실에서 기다려야 했다.


혹시 그거 알고 계셨을라나?

119 구급차에서 이송 중 사망하면

바로 장례식장으로 갈 수 있지만

집에서 우리 어머님처럼 먼저 돌아가시면 의사소견서가 첨부 되어야만 장례를 치를 수 있다.

혹시나 모를 범죄가 있을까 싶어서일까? 경찰(과학수사대)들도 온다.

절차가 꽤 까다로웠다.


태어나 입학식, 졸업식, 결혼식..각종 식들을 다 해봤지만

그중 장례식이 최고다. 부모님의 장례를 치뤄보지 않은 자~ 

진짜 으른이 아니다!(개인적인 의견입니다)





병원 도착 시간은 새벽 1시 반쯤.

아버님께서 어머니 사망 시각을 밤 12시 조금 넘어서였다고 알렸으므로

3일 장례일정 중 꽉찬 1일이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날은 더웠다.

음력 6월 30일이였으므로..


의사 소견이 나오는데는 한참이 걸렸다.

아버지와 나는 대기실에서

멍~하니 앉아있었고 남편은 이것저것 처리하느라 뛰댕겼고

두 형님들께 전화를 드렸으나 주변 정리하고 출발해야 한다며 느긋한 소리만 하셨다.

(내가 지금까지 보고 듣고 겪은 바로는 두 형님들은 나에게도 남편에게도 그렇게 도움이 되질 않는다.

도움이 되기는커녕 마음이 생채기만 내신다. 그러기도 참 힘들것 같은데...두 분이 친자식입니다 제가 아니라 ...)


날이 훤~히 밝았다.

아버님이 갑자기 나를 보더니

“야야~ 배고프다 밥집 좀 찾아봐라”

하신다. 내 귀가 잘못됐나??

배가 고프...

시겠죠 아버님..



어머님은 지금 시체 검안실에 있고 아들은 저리 뛰댕겨쌌고 경찰들도 왔다갔다

난린데..암요 밥은 먹어야죠 ..그래야 장례도 치루죠.


대충 일처리가 끝난 남편과 함께 국밥집으로 향했다.

모래알 같았다. 식사를 거의 끝날무렵.. 장례허가가 났다 전화가 왔다.



병원 바로 옆 장례식장.

허름했다. 협소한 장소, 옆 실과 칸막이도 따로 없고

심지어 좌식 테이블였다.


혹시 고령의 부모님이 계시다면..미리 영정 사진사진을

준비해 놓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영정 사진 준비가 안 된 우리는 이른 아침이라 사진 맡길 곳도 없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해서 급하게 내 결혼식 때 찍은 사진으로 영정사진을 만들었다.

다른 건 장례식장에서 얼추 다 구할 수 있으나

영정사진은 예외다(급히 뽑은 사진은 비싸다 많이~)

참고하셔서 나처럼 우왕좌왕하지 않으시길..



모든 준비가 끝났다.

그렇지..이때쯤 나타나 주셔야  우리 형님들이지..


손님 몇명 안되니 도우미를 안쓰 우리끼리 하자고 하신다.

난생처음 장례를 치뤄보니 뭘 알아야 No!!를 외치지..

예예~했다. 바보 멍청이 같이..


우리 남편은 프리랜서였다. 그때는..

술은 안 먹지만 친구들은 넘쳐났 프리랜서여서 아는 거래처 사장님들도 여기저기 많았다.

남편 측 손님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작은형님네 교회분들이 단체로 들이닥쳤다.

이미 새벽부터 온갖 충격과 처음 겪어본 일들로 멘탈이 나가버린 나는

장례도우미 쓰지 말자 형님들이 원망스럽기 시작했다.


좌식 탁자다. 게다가 삼복더위 7월이다.

스댕 원형 쟁반에 (그것도 대형사이즈)음식을 담고

상을 차리고 치우기를 수십 번..

도가니가 나갈 것 같다.

없는 허리가 움푹 들어갈 판이다..


한 500번 쯤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니 이게 내 다린가 싶을 정도로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 올케!! 쉬엄쉬엄해~ 그렇게 빠릿빠릿 움직이면 못 버틴다. 오늘이 첫 날인데..”

큰형님이 한 말씀하신다.


‘예~ 그럼 형님이 재빠르게 움직이실래요? 형님 어머니 장례식이잖아요?? 우리엄마는 살아있어요!!‘








라고 할 껄!!!!

악!!!

결혼 전에 스피치 학원 속성반이라도 다닐 것을...후회막급이닷!


그렇게 정신없고 멘탈 털리는 장례 1일차 밤이 됐다.

얼추 손님들도 마무리 된듯 해서

우리들도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방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님)

장례식장이 진짜 거지 같아서 까는 요는 없고

배만 겨우 덮을 이불 몇장이 있을뿐이었다.

좌식식탁을 몇 개 걷어내고 아버님 잠자리를 봐드리는데 엥? 이불이 하나도 없네??

어디갔나 하고 찾아봤더니

아놔..진짜..


“올케!! 앞으로 불쌍한 우리 아버지 더 잘 보살펴야 돼~알겠지?”

라고 나를 다그치던 큰형님 지 새끼들(딸1, 아들!)

깔고 덮어서 반듯하게도 재워놨다

이노무시끼들이 진짜..

(나머지 이불은 작은형님 새끼들 3명!)


형님 덕분에 불쌍하신 당신 아버지는 이불없이

맨바닥에 주무시게 생겼습니다요

영~ 도움이 안된다 진짜!

(복수의 칼날! 오늘도 1단 장착완료!)

.

.

.

나는 오늘 화장실을 한 번도 안갔다

아니..못 갔다..

땀에 전 내 몸에서 오징어 냄새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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