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랖 Sep 10. 2024

Round 2

아버님! 이 결혼식의 주인공은 접니다!



그렇게 억울하고 거룩한 크리스마스를

아버님의 산타로 보낸 후

심하게 좌절하여 드러눕고 싶었으나...


시어머니 병세가 점점 악화되어 번갯불에 뭐시기 하듯

결혼식을 서둘렀다.

누워계신 어머니를 위해 결혼식 당일 입을 한복을 대여해 시댁을 방문한 그날!

난 또 엄청난 쓰나미를 만나게 되는데...

(그래도 몇 번 겪었다고 소스라치게 놀라진 않음ㅋㅋ)



“아버지! 그건 안됩니다!”(울 남편)


“아버지! 그걸 왜 신고 가? 남들이 다 아버지만 쳐다볼거야! 신랑 아버지가 체통을 지켜야지. 사돈어른들이

뭐라 하시겠어요?”(큰누나분)


시건인 즉슨

결혼식 당일에 시아버님의 최애템! (하~갑자기 심장이 빨리뛰어 딥브레쓰 좀 하구요 씁~하~)

빽구두를 신고 가시것다고..아니 아버님!

빽구두요? 흰 구두??


아버님이 잘 모르시나본데..

순결하고 고귀한 흰색은 신부를 위한 색이며..


암튼 어찌됐든! 안됩니다~~아니되옵니다!!

라고 말했으면 좋았을 껀데 너무 놀라 나는 입만 뻥긋 거렸고 다행히

친자식들이(남편과 누나분들)이 뜯어말렸다.



지금이야 뭐

“그럽시다 아부지!! 빽구두 신고 <홍도야~우지마라~>한 곡조 뽑아붑시다 까짓꺼~”하고

능글능글 넘어갔을 껀데

그땐 어려서..나도 이런 어르신은 처음이라...

아버님이 도통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야속했다.

하객들이 다 아버님 구두만 쳐다 볼것같고 친구들이 손가락질하며 속닥거릴 것만 같았다.


내 나름대로의 반대 의사표시로

사이즈 맞는 검정색 구두를 골라 슬며시 들이밀기도 해봤으나

똥고집 아버님은 쓰윽 쳐다만 보실뿐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흰색도 아니고 닳고 닳아서 회색에 가까운 그 구두를 기연치 신고 가시것단다. 그것도 아들 결혼식..아니

내 결혼식에!!


치약으로라도 닦아드려야 되나... 아주 반딱반딱하게..


친자식들도 두손 두발 다 들어서 참한 새색시(접니다!ㅋㅋ)는 그냥 얌전히 고개만 떨궜다.

신부입장도 아직 안했는데...

지금이라도 확마 때려쳐??




난 잔병치레가 심하다.

20대 때 발병한 성인 아토피를 고쳐보것다고 한약을 지었더랬다. 팔이며 다리며 접히는 부분은 다

상처와 물집이고 다리는 아예 내놓고 다닐 수 없을 만큼의 진물이 흘러내렸다.

아토피를 고치것다고 울엄마가 큰맘 먹고 지어준 그 한약이!! 내 몸에 잠재되어 있던 모든 알러지를

건드려 깨웠단다. 그러니까  울엄마가 날 위해 그런 큰돈 들여 약 지어줄때부터 뭔가 께름직하더라니..

언제부터 그랬다고..참..(진짜 이참에 친모 유전자 검사 함 해봐?)


 천식이 발병했고 비염에 양약 알러지까지 3종 세트가 한꺼번에 찾아오니 면역력은 바닥이요

환절기며 꽃가루며 모든 환경이 내뿜는 공기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었다.

급기야는 일어서지도 못하고 와병환자처럼 실려다닐 지경에까지 이르렀고

그런 나를..

매일 차 뒤에 싣고  침 100대씩  맞춰가며 살려낸 사람이 지금의  내 남편이다.

남편을 만나지 못했다면...난 아마 벌써 저 세상에 있지 않을까??

그래서 차마 엎을 수가 없다. 이 결혼...

아이 못낳을 수 있다는 한의사 말도 남편은 기꺼이 받아들였고

돈도 뭣도 아무것도 없는 나를 조건없이 끌어안아준 생명의 은인이니까...

(효자만 아니면 차~암 좋았을건데요..아깝다!)


갑작스레 찾아온 천식에 숨이 안쉬어져 응급실 가야 될 상황에서도 계부는 피곤하다며 잠을 자버렸고

엄마는 그런 계부를 깨우지 않았다.(새벽이라 택시도 안잡히고 운전해서 병원에 데려다 줄 사람은 계부뿐였음)


그때..난 죽었다. 엄마아빠의 딸로서의 나는..

그때 사망한거다.




시어머니는 오래 앉아계실 수가 없다.

휠체어에 어머니를 앉히고 끈으로 고정한 다음 한복으로 교묘히 가려 결혼식만 무사히

마치자는 미션 임파서블 계획이 착착 짜졌다.


내 신경은 온통 아버님 빽구두에 가 있었지만..

남편은 나보고 이해하란다. 암요 그래야죠 어쩌것어요

밤에 몰래 들어와서 저 신발을 갖다 버려버려??


드뎌 결혼식 당일!

아침부터 신부화장에 준비에 정신이 쏘옥 빠져있었고

남편 누나분들은 어머니 케어에

눈코뜰새없이 바빴다.

신랑 입장! 신부 입장!! 순서대로 빠르게 진행되었고

온통 신경은 휠체어에 힘겹게 묶여계신 시어머니한테 가 있었다.

주례사 도중에 시어머니가 옆으로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고..급기야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신부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신랑 부모님께도 빠르게 인사드리는 와중에


나는 봤다.

며느리 보라고 일부러 뻗장다리하고 계신 아버님 발끝의 신발을..

빽구두가 아닌 내가 사드린 검정색 구두...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아버님은 씨~익하고 웃으다.

하~ 이분이 지금 나를 들었다놨다 하시는 거지 어?


내가 이런 분과 맞서 잘 해낼 수 있을까?

 식은땀이 또르륵..


어쨌든 아버님 감사합니다!

결혼식 주인공 며느리한테 양보하시느라

 최애템 백구두 안 신어주셔서 ㅋㅋㅋ


어머님 몸이 이젠 더 버틸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고

끝났다! 10분 만에... 한 번 뿐인 내 결혼식이...

신랑신부 행진도 자진모리 장단으로다가

급하게 쌩~



어머님은 누워서, 아버님은

의기양양하게 폐백을  받으셨다.

너 하란대로 했으니 이제 됐냐? 요런 표정으로다가 ㅋㅋ


하~ 내가 지금 웃을 때가 아닌뎅..

이제 막 결혼식이 끝났을 뿐인데 벌써 몇 번의 고비를  넘겼단 말인가..

나.. 잘하고 있는 걸까? 지금 내손으로 내 무덤 파고 있는건 아니겠지??




며칠 후..여러분들은 듣게 되실겁니다

제 손으로 직접 지 무덤 파는 삽질 소리를..





이전 02화 Round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