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가 어렵고 연세가 많으신데다가 가장 중요한 골반뼈가 부러졌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시어머니 장례 치를 때 보니 영정 사진만 준비하면 다른 건 장례식장에서 얼추 구비할 수 있었다. 수의도 물론이고.
급하게 영정사진을 업체에 맡겨 준비했더랬다. 그리고 골반뼈 수술하고 나서 한 번, 폐에 물이 차 응급실로 실려가실 때 또 한 번. 이렇게 벌써 두 번 영정사진을 꺼냈다 도로 넣었다를 반복했다.
그래서 나는 믿지 않는다. 6개월 시한부 선고.
안 믿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아버님과 같은 층에 계시는 어르신이 폐암판정을 받았는데도 3년 넘게 멀쩡하게 생활하고 계신 걸 내눈으로 똑똑히 봤기 때문이다.
암세포도 노인과 같이 나이든다.
퍼져가는 속도가 더뎌 젊은 사람들처럼 치명적이지 않다는 걸 그 어르신을 보고 알았다. 가끔 각혈을 하는 것 외엔 별다른 통증도 없다셨다.
폐암이라는 사실은 말씀드리지 않기로 했다.
요양원 찾아가는 횟수가 점점 늘어갔고 병원에서 말한 6개월이 지나갔다.
그럼 그렇지!! 내 이럴줄 알았어!
아버님은 이렇게나 많은 피를 토하고 있는데 나 죽을 때 기다리고 있냐며 펄쩍펄쩍 뛰시다가 병원 가도 소용없다는 걸 아셨는지 잠잠해 지셨다가
또 밤낮없이 전화를 하셔서는 불같이 화를 내셨다가를 반복하셨다.
그러던 중 요양원에서 아버님이 코로나에 또 감염됐다는 소식을 전했다.(벌써 4번째 확진)
아직도 코로나요? 단체 생활이니 어르신 한 분이 걸리면 건물 전체가 퍼진다.
가볍게 넘기실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꽤나 힘드셨던 모양이다. 2주가 지났는데도 우리보고 오지 말라셨다. 그래도 가야될 것만 같은 기분에 전날 아버님께 전화를 드렸다.
아버님 좋아하시는 치킨이랑 삼계탕 사서 가겠노라고. 아버님이 너무 보고 싶어서 그런다고. 마지못해 알겠다고 하시더니 올때 벨트를 하나 사서 오라신다.
아버님 허리띠요? 벨트? 자동으로 잠기고 풀리고 하는 가죽벨트를 찾으신다. 자동??
요양원 면회 날짜는 내일 오전!
벨트를 사려면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한다. 근데 자동벨트는 또 뭐여?
(늘 고무줄 바지만 입는 내가 알 턱이 있나..)
남편이랑 또 빠르게 근처 대형마트 잡화코너로 달려갔다.
자동벨트 있어요?
있단다.
오~ 진짜 자동벨트 맞다! ㅋㅋㅋ옆에 버클 하나만 누르면 끼고 빼고 할 수 있는 반자동 벨트. 어떤 색이 마음에 드실지 몰라 일단 블랙 하나, 브라운 하나씩 사고
평소 모자 좋아하시는 아버님 생각이 나서 따수운 털모자도 하나 샀다. 마음에 안든다고 성질내시면 뭐.. 남편 머리에 씌워주면 되지.
다음 날 아침, 주문해 놓은 삼계탕을 찾아 요양원으로 향했다.
요양원은 아직 코로나 자가키트로 검사를 해야 면회가 가능하다. 딸까지 셋이 자가키트 검사를 완료하고 앉아있는데 내려오는 엘리베이트에서부터 뭔가가 검은 기운이 느껴졌다. 왜 저리 화가 나셨지?
“그것들 아주 가만 안둔다 그래라! 교회 믿는 것들은 그런다냐? 부모한테 막대하고 이렇게 무시해도 된다더냐? 아주 확 고소를 해버릴란다!!”
면회실 들어오시자마자 노발대발. 왜요 아버님 누가요?
예? 큰형님이요?
큰형님이 아버님께 무슨 말실수를 했나보다. 당장 달려와 잘못했다고 납작 엎드리라고 언성을 높이시길래 남편이 자초지종을 들어보것다고 또 판관 포청천 행세다
“아니! 아버지! 그건 누나가 잘못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왜 그걸 또 이렇게 화를 내십니까? 아버지도 잘못 하신게 있지 않습니까?”
그럼 그렇지 이 눈치코치 하고는! 비켜라~
남편 옆구리를 푹 찌르고는
”큰형님이 그렇게 말했다고요? 아버님한테요? 이런!! 자기(남편)가 빨리 큰형님한테 전화해! 당장 아버님한테 와서 잘못했다고 무릎꿇으시라고 그래. 얼른!!“
내가 더 폴짝폴짝 뛰니 아버님이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하셨다.
남편은 한쪽으로가서 큰형님께 전화를 했고 그 와중에도 아버님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도대체 뭘 잘못하셨을까? 뭐가 아버님 심기를 건드려서 저렇게나 화를 내시는 걸까?
”아버님! 아들(남편)이 전화했으니 큰형님 바로 오실거에요. 그만 화내시고 며느리가 삼계탕 사왔는데 따뜻할때 좀 드셔보실래요?“
드시겠단다.
요양원에서 어제 밤부터 아무것도 못드셨다고 연락이 왔던 터라 일단 죽부터 조금 덜어드렸다. 닭다리 하나를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맛있게 드시고는 사온 브라운 색 벨트가 썩 마음에 든다며 웃어주신다. 또 각혈을 하셨는지 입가에는 미처 닦아내지 못한 혈흔이 보였다. 아무렇지 않은 척 그냥 쓰윽 닦아 드렸다.
웬일인지 같이 사온 털모자도 마음에 든다며 한번에 쓰셨다.
아버지 남은 삼계탕은 뒀다가 저녁에 또 드세요 했더니 그래 우리 며느리가 최고다 하신다.
예~ 아버님 저도 알아요 제가 최고인거는요 ㅋㅋㅋ
면회시간이 지나 뒷정리하고 나오려는데 아버님이 큰형님한테 당장 오라고 다시 전화를 하라며 당부하시고 뒤돌아 올라가셨다.
평소 같으면 남편도 큰형님께 전화하지 않았을거다. 아버님이 너무 화를 내시니 어쩔수 없이 요양원 앞에서 이러이러하니 시간내서 내려와야겠다고 했다.
큰형님은 더이상은 못하겠노라고 내가 뭘 잘못했냐며 전화기에 울분을 토하기 시작했다.
요양원 근처에 아이들 짚라인 탈 수 있는 작은 놀이터가 있다. 오늘은 어쩐지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아 놀이터에서 한참을 놀다가 남편이 아버님이 치매증상을 보이는 것같다는 얘기를 했다. 몇달 전에 분명히 큰누나랑 화해했는데 그걸 기억 못하시고 갑자기 화를 내신다고.
집에 거의다 도착했을 쯤 요양원에서 전화가 왔다.
아버님이 피를 많이 토하신다고... 가족들이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될 것 같다고.
서둘러 차를 돌려 요양원으로 향했다. 그리고...다시 전화가 울렸다.
방금 운명하셨습니다. 병원에서 선고한 6개월에서 한달이 지난 때였다.
(2023년 12월 2일)
그렇게 아버님은 며느리가 차려 드린 마지막 음식을 드시고 선물도 기분좋게 받고 떠나셨다. (병원에서도 의아해했다 돌아가시기 전에 이렇게 음식을 맛있게 드시는 일은 드물다며)
형님들에게 전화를 하고 장례절차를 하나씩 준비했다.
그 영정사진을 꺼내들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큰형님을 미워하는 내마음을 아버님은 눈치채고 계셨을까? 마지막 가시는 길에 며느리 마음 풀어주실려고 큰형님께 그리 모질게 하고 가셨을까?
큰형님의 통곡소리가 장례식장을 가득 메웠다.
”아버지 나한테 왜그랬어? 나한테 왜 비수를 꽂고 가셨어? 왜요!왜!“
아버님의 선물을 기꺼이 받기로 했다. 큰형님을 부축해 식사를 챙겨드렸다.
최고의 복수는 그 사람을 동정하는 거라고 하지 않던가. 앞으로 그 상처를 가슴에 담고 살아가야할 큰형님을 짠하고 불쌍하게 보기로 했다. 용서하기로 했다.
그리고...내 오늘을 기다려왔다!
어머님 장례식 이후로 설계해 왔던 나의 빅픽처!
아버님 장례식장에서 손하나 까닥하지 않기!! 어머님 장례식장에서 도가니 나가게 나 혼자 고생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도우미 3명을 고용했고 매니저도 1분 특별히 모셨다.
(역시 전문가는 달라달라!)
이것이야말로 친자식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시아버지를 극진히 모신 며느리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광 아니겠는가?
오는 친척분들마다 이구동성으로 한마디씩 하셨다
“그 성격 모난 양반 비유 맞추느라 자네가 고생많았네!”
예~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국가유공자인 아버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은 화려했다.
추모관계의 에르메스! 임실 호국원으로 들어갈 땐 멋진 군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웅장한 BGM에 맞춰 멋지게 발맞춰 입장도 해봤다. 울 아버님 요양원에 계실 땐 원룸이든만
돌아가시고는 아주 펜트하우스에 입성하셨네!
아버님! 많이 아프지 않으시고 며느리 수월하게 뒷일 마무리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마지막까지 며느리 마음 풀어주실려고 선물도 주시고...감사히 잘 받겠습니다!
아버님 며느리여서..행복...
하지는 않았어요! 많이 힘들고 눈물나고 그랬습니다.
다음 생에도 잘해주시겠다구요?
에헤이~ 뭐 그리 심한 말씀을 하십니까? 저는 절대 다시 태어나지 않겠습니다!!!ㅋㅋㅋ
아버님 며느리여서 행복하진 않았지만 많이 성장했습니다. 인생 고난과 역경을 배웠으니까요.
감사했습니다 아버님!
그렇게 3일 내내 가슴을 치며 눈물 흘리시던 큰형님이
“올케! 고마워~ 자식들도 하기 힘든 일을 다 해주고 ..너무 고맙다!”
나는 대답 대신 조용히 손을 잡아드렸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 흠..글쎄.. 그건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나는 미신이라고 본다! 옛어른들이라고 꼭 맞는 말만 했겠어? ㅋㅋ
남의 눈에 눈물나게 하는 사람은 자기 눈에 피눈물 난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 (참고로 울 큰형님은 가슴에 비수가 꽂힌 채 살아가는 것도 모자라 영끌해서 산 상가가 2년 넘게 세입자를 얻지 못해 눈밑 다크써클이 짙어지고 있다는 고소한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ㅋㅋㅋ)
약 14년 간의 시아버지와의 전쟁같은 시간을 꾸욱 참고 버텨낸 내게 쥐어진 건 아버님이 애쓴 며느리를 위해 남겨주신 3천만원이 든 통장과 크리스마스 선물로 내가 아버님께 해드린 금반지였다.
일가 친척들의 만장일치로 아버님이 끼셨던 반지는 며느리가 가져가야 한다고 했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ㅋㅋ주신다면야 굳이 사양하지 않것습니다. 3천만원으로 차를 한대 살까 살짝 욕심이 들기도 했지만 그리하진 않았다. 형님들과 똑같이 3등분했다. 내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으므로 미련없이 깔끔하게 손 털고 나오고 싶었다. 아버님 반지는 녹여서 내 팔찌로 다시 태어났다.(물론 들어간 돈이 더 많습니다만)
아버님이 돌아가신지 이제 1년이 됐다.
기일에 맞춰 임실 호국원을 찾았다. 퇴사한 며느리의 발걸음은 왜이리 가벼운건지. 근데 막상 아버님 사진을 보니 또 울컥해서는
“아버지! 며느리한테 좀 잘해주지 그러셨어요? 아버님도 후회하고 계시죠? 어머님! 아버님 아주 혼내주세요!"
여러분들의 성원에 힘입어 힘든 며느리직을 내려놨으니 그 뒤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인생은 산 넘어 산이라고 하지 않던가
친정부모님의 계속되는 무리한 요구와 부탁에 급작스레 공황장애가 찾아온 나는. 삼복더위 8월! 장마전선이 북상할 때쯤 소리 소문없이 야반도주하듯 친정집 2층을 뛰쳐나왔다. 찾아와 퍼붓는 엄마의 온갖 악담과 폭언을 참다참다 소리를 꽥꽥 질러댔더니 요즘은 찾아오는 횟수가 줄긴 했지만 또 찾아와 초인종을 누를까 싶어 내 초상 먼저 치르고 싶지 않으면 1년 동안만 찾아오지 말아달라 부탁을 드렸다.
그리고 나는..이제 새로운 꿈을 꾼다.
2025년 8월이 오기 전까지(약속한 기한 1년)부모형제 모르게 멀리 도망가는 멋진 꿈!! 내 장래희망!! 핸드폰 번호도 싸~악 바꾸고! 하~ 생각만 해도 너무 행복해서 자다가도 웃음이 새어나온다.
과연 제 꿈이 이뤄질까요?
늦게 피는 꽃은 있어도 피지 않는 꽃은 없다고 했습니다. 전 아마 늦가을에 피는 꽃일 겁니다 엄청 향기도 찐~하고 꽃송이도 반짝빤짝~ 빛이 나는.
곧 만개할 제 인생을 기대해봅니다. 그 누구보다 응원합니다!
지금까지 언짢고 혈압 상승하게 만드는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면서요!>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멋진 작가님들을 만나 행복하기만 했던 나날들이었습니다. 제가 부모형제 복, 시아버지 복은 쥐뿔 없어도 글벗 인복은 넘쳐나나 봅니다.
같이 화내주시고 펄쩍펄쩍 날뛰어주신 찐친 작가님들! 잊지 않겠습니다. 연재를 하면서 많이 우울했고 또 힘들었습니다. 그냥 덮어두고 살걸 굳이 글로 쓴다고 다 뒤집어 까엎어설랑은 이렇게도 이불킥을 하게 만드나..솔직히 후회도 많이 했습니다. 서둘러 연재를 끝내는 이유는..작가로서의 자질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볼까해서 입니다. 아무 일도 안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아무일도 안해봤더니! 진짜로...아무일도 안일어나기는 개뿔!! 인생은 숨만 쉬어도 우여곡절이 생기고 매순간 순간이 고비 더라구요.
에이쒸! 그럴거면 억울하지나 않게 해보고 싶은거 다 해보자! 해서 꿈틀거려 볼까 합니다.
제가 참~ 위트 있고 유머러스하고 언어유희의 귀재인데 ..우울한 얘기만 쓰느라 그 재능을 못 펼쳐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