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님의 사과
그렇게 수술 후, 나는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
거의 2년 가까이 시댁 일에 눈 감고, 귀 닫고, 입 닫았다.
단호한 내 표정에 처음엔 잠잠했던 남편이 불쑥불쑥 시어버지 근황을 전해주기 시작했다.
예~ 전 됐습니다 듣고 싶지 않아요!
일일이 보고하지 말고 본가에 가고 싶으면 딸 데리고 다녀오세요! 음식이며 필요한 건 내가 다 준비해드릴께요. 대신 거기서 나만 빼주세요!
남편도 본가 가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가봤자 좋은 소리 못 들을테고 어린 딸 데리고 가서 상 차릴라 아버님 수발들랴 본인도 힘들었겠지. 그럼 너 좋아하는 누나들 올때 맞춰가든가 말든가.
명절이며 아버님 생신 때 등등. 몸은 편했지만 마음은 솔직히 말해 불편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속박과 핍박만 받아봤지 언제 나를 위한 삶을 살아봤어야 좋아 기뻐서 훨훨 날아댕겨보지..으이구 진짜.
어릴 땐 난 커서 뭐가 돼야 할까?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을까?등이 인생 최대 관심사였던 적이 있었다.
내 꿈이 ‘착한 며느리’였나? 장래희망이 ‘효부’였던 적이 있었나?
내 어깨에 올려져 있는 짐짝들 중 하나인데 며느리라는 직책에 너무 내인생을 쏟아붓지 말자. 여차하면 내려놓을 수도 있지 뭐. 어차피 내 어깨인데..이렇게 마음 먹으니 조금은 편해졌다
홧병약도 먹고 책도 읽고 법륜스님 말씀도 듣고 유명 강사님들 강연도 들으며 그동안 너무 커져버린 마음의 상처에 후시딘을 조심스레 발라줬다. 내 안색은 점점 밝아지는데 울 남편 얼굴은 똥씹은 표정으로 변하고 있었다.
1년 정도 지날 때쯤 자기는 이제 우리집 행사는 안갈거냐 결혼했는데 왜 나혼자만 다녀야 하냐둥 구시렁대더니 내가 계속 무시하자 행동과 목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응~ 나는 너네집 경조사에 일절 관여할 생각이 없으니까 너도 우리집 경조사에 올 생각도 하지마!! 내가 바보 멍청이로 보이냐?? 난 니네집에 할만큼 했어!! 그만 요구해!!!”
(실제로 남편이 저보다 1살 어립니다. 저 평소에는 반말지거리하는 그런 교양없는 여자 아닙니다. 네버!!)
속이 시끄러워서 뭔가에 집중할 게 필요했다.
땅을 샀다. 나를 괴롭히는 모든 것들에게서 도망치고 싶었다. 산꼭대기 시골땅에 집을 지었다. 남편이 건축관련 일을 하니 이때 그 능력을 제대로 한번 써먹어봤다. 직접 설계하고 내 요구사항을 반영한 집을 짓기 시작했다. 점점 악화되는 알레르기 반응을 조금 잠재워보것다고 숯도 깔아보고 황토도 발랐다.
산을 바라보며 조용히 혼자 책 읽을 방! 그거면 족했다.
그게 내 요구사항의 전부다. 집을 지으며 마감재 고르고 집기들을 사들이고 마당에 심을 나무들을 심고 가꾸는 데 정신을 쏟다보니 조금씩 마음속 오염됐던 것들이 정화되는 듯 했다. 얼굴에 오랜만에 웃음꽃이 피었다. 이사를 간 건 아니고 주말에만 이용하는 주말농장 비슷한 시골집이다.
금요일 근무가 딱 끝나면 바로 시골 내 은신처로 줄행랑!! 근무하는 게 즐거웠다. 금요일이 기다려졌다.
그런데..몇 주를 못가고 아름다운 내 꿈들이 아작났다.
가까운 시골집이라 부모님이 놀러오기 시작한거다.주 5일 만나는 것도 진절머리나는데 주말에만 숨 좀 쉬어보것다고 뛰쳐나온 나를 또 주말에 부모님이 쫓아왔다. 젠장 숨은 어디에서 쉬냐.
맘대로 새벽부터 대문을 활짝 열고 들어오질 않나 내 밭인데 나도 모르는 농작물을 키우질 않나 나무는 본인들 취향대로 뭔 거북이 모양입네 토끼귀모양입네 잘라놓질 않나...
이너피쓰(inner peace)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나 대신 부모님(엄마와 계부)이 주말마다 힐링 잔뜩하고 돌아가신다. 주 거주지는 친정집 2층이니 일주일 내내 같이 사는거랑 별반 다를것이 없다. 제대로 누워 쉬질 못하니 내 상태는 더 악화되고 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울 남편을 머슴처럼 부렸다.
고분고분 딸에 이어 뭐든 네네~해주는 사위를 거느리니 부모님 기는 하늘을 찔러댔고 목소리도 점점 커져갔다. 친척들이 방문할라치면 남편한테 막대하는 정도가 더 심해졌다. 우리 사위랑 딸이 이렇게나 잘한다는 거를 과시하려는 듯이. 우리 시아버지랑 부모님이랑 도찐개찐 별반 다를것이 없다.
거기에 더 기름을 끼얹을라고 이제는
부모님이 친구들을 초대하기 시작했다. 주말마다 잔치를 벌이시고 친척, 사돈에 팔촌까지 다 와서 즐기다 간다.
내 집! 내 텃밭에서!미쳐 증말~~
사람들이 싫어(정확히 말하면 부모형제) 통장 텅텅 털어 은신처 지어놨더니 나 빼고 다와서 행복해하다가 간다.
그렇게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던 나의 은신처는...점점 꼴뵈기가 싫어졌다. 초록색이 징글징글했고 텃밭 작물들도 죄다 뽑아서 갈아엎고 싶었다. 내 성질머리는 더더더 안좋아졌다. 홧병약도 우울증약도 더이상 약발이 안들어먹었다.
2년이 가까워질 무렵 시아버님 건강이 안좋아지셨단다. 전립선이 전부터 안좋긴했는데 수술을 하려고 검사를 했더니 천식이 있어 마취가 어렵다며 병원에서는 수술을 포기하자고 했고 결국 소변줄을 끼고 생활하게 되셨다고. 혼자 생활이 어려우니 요양원 입소를 준비 중이시란다.
무서운 게 미운 정이라고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 자존심 기존쎄하신 양반이 소변줄 차고 있는 본인 모습을 남들한테 보이기가 쉽지 않으실텐데..
하이고...별걱정을 다하고 앉았네
내 걱정이나 하자! 요양원 들어가시면 좋지 뭘 ..나라에서 나오는 돈으로 수발받으면서 제때 나오는 삼시세끼 따신밥 따박따박 챙겨 드시면서 보내면야 행복이지 뭘.
시댁 근처 요양원으로 입소를 하셨다. 층마다 동네 친구분들이 한분씩 계셔서 덜 적적하시다며..
다행입니다 아버님! 거기에서 친목다지시고 하면 쓰것고만요.
그렇게 몇 달 후 남편이 심각한 표정으로 아버님이 위독하다고 요양원에서도 가족들 면회오라고 한다고 자기 이대로 아버님 보내면 마음 불편해서 우찌 살거냐고 거의 반 협박조로 나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몇날 며칠을 고민했는지 모른다. 어떻게 얻은 자유인데 다시 그 지옥불구덩이로 걸어들어가라고?
그래도 위독하다고 하시니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아버님을 뵙고 싶기도 했다. 우리집에서 조용히 머슴살이 해주는 남편한테도 너무 미안해서 이제 그만 며느리직 휴업을 끝낼 때가 됐다 싶었다.
그래! 아버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맘 편할라고 가는거닷!!
요양원에 챙겨갈 과일이랑 아버님 드실 간식이랑 바리바리 준비해서 아버님께 향했다. 가는 길이 얼마나 긴장되고 손이 바들바들 떨리던지..
아버님 계신 3층으로 올라가시란다. 남편이랑 딸내미 앞장 세워 걸어가는 그 든든한 길이 다리가 후들거리고 눈앞이 어지럽고 호흡이 가빠졌다. (에이쒸~ 이럴줄 알았으면 우황청심원이라고 한 병 까고 올껄.. )
문을 열고 들어섰다.
이게 누구냐 우리 며느리냣! 하시며 반색을 하신다.
평생 못 볼 줄 알았는데 제 발로 걸어와준 며느리가 반갑고 기쁘셨는데 함박 웃어주신다. 벌떡 일어나셔서 나를 얼싸 안아주기까지 하신다.
근데...잠깐!! 아버님? 위독하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이거 팔힘이 엄청 쎄신거 보니께
만수무강하시것는데요?? 최대한 가로로 눈을 찢어 남편을 째려봤다. 저게저게 나 데리고 올라고 거짓말 한거지..두고 보자!
일단 바리바리 싸온 과일이며 간식이며 조공품들을 풀어 보여드렸더니 요양사들을 다 불러모으신다.
”응~우리 며느리!! 그 공무원 며느리라니깐! 우리 며느리가 이렇게 손이 커! 가져가서 다 노나 잡솨들!“
아까보다 아버님 어깨가 한껏 솟아오르신 것도 같은데...
물 가지러 잠깐 나갔다가 요양원 실장님을 만났다.
2인실인데 아버님 혼자 쓰고 계신데 옆은 왜 비어있냐고 적적하시겠다고
괜히 물어봤다.
들어오시는 분들마다 싸우셔서 다들 아버님이랑 같은 방을 안쓸라고 한다, 요양사들이 조금만 비위를 못맞추거나 말실수하면 아주 난리가 난다 등등
어디서 많이 듣던 그 레퍼토리가 또 시작됐다. 잘 좀 부탁드린다고 또 90도 각도로 인사하고 나왔다. 근데..여기 계신 분들은 성격들이 좋으신가? 아님 요양원이라 노인분들 성향을 잘 파악해서 그런가 뭐 딱히 큰 불평불만이 얼굴에 나타나진 않았다. 그냥 그래서 조금 힘들어요! 요정도로만 말씀하시지 얼굴한번 찌푸리지 않으신다.
역시!!
어린이는 어린이집에 노인은 요양원에!! 자식들보다 노인 전문가들이 더 잘합니다.
라고 생각은 나만의 착각!!
집에 오는 길에 남편한테 들은 얘기다. 아버님이 일주일이 멀다하고 병원진료 다녀오는 길에 읍내에 들러서 실장님이며 운전해 주시는 남자 간호사며 다 끌고 가서 소고기 사맥여, 현금 다발 잔뜩 뽑아와서 잘해주는 요양사들에게 신사임당 뿌려대...
역시 늙으나 젊으나 파워는 뭐니머니해도 money구나를 제가 또 배웁니다.
(지금 돈이 없으신 분들!! 늙어 대우 받으실라믄 돈을 바짝 더더 벌어놓으셔야됩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던 중에 아버님께서
“아니 근데 니가 뭣때문에 그 몹쓸병에 걸려갖고 그 고생이냐? 우울증 걸렸다고 가만있지 말고 돌아댕기믄서 친구도 만나고 그래라.” 하시는 거다.
진짜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면 이런 기분일까?
뭐 때문이라뇨? 아버님 때문이잖아요! 아버님이랑 아버님을 쏙 빼닮은 두 따님들 덕분에 제가 이 거지같은 몹쓸 병을 얻었잖아요
이젠 남편 따위에 의지하지 않겠다. 믿을 넘이 너하나 뿐이냐 ? 이젠 나 말고는 아무도 안믿는다. 갑자기 마음이 차분해지기 시작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남편한테 딸을 데리고 나가라고 했다. 지은 죄가 있는 남편은 잽싸게 딸을 안고 나갔고 아버님과 마주앉아 말씀을 드렸다.
“아버님! 제가 우울증에 걸린 건 아버님 때문입니다. 처음 결혼했을 때 형님들은 아버님을 저에게만 맡겨놓고 본인들도 못할 것들만 요구하시고 아버님은 온갖 스트레스를 저에게만 푸시니 참기만 한 제가 이렇게 됐습니다. 전 아버님이 당연히 알고 계신줄 알았어요 아들(남편)이 아버님이랑 형님들한테 말씀드린다고 했는데 또 안했나봐요. 제가 이렇게 아버님을 다시 찾아온 이유는 우울증이 다 나아서 온 게 절대 아닙니다. 전처럼 아버님을 대하지 않을 자신이 있어서 온겁니다. ”
내 말을 듣고 있던 아버님은 이런 얘기는 난생처럼이란 듯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찬찬히 쳐다보시더니 할말을 잃으신듯 가만히 계셨다. 그러고선
“그랬냐? 그래 미안하다. 그렇게 힘들었으면 진작 말을 하지 그랬냐? 내가 미안하다.”
아버님은 정말 모르셨나보다 며느리가 힘들어하는 거를..왜? 모르셨을까...
조용히 당하고만 있어서? 밟아도 꿈틀대지 않아서?
또 후회가 밀려왔다.
내 감정을 직접 내 입으로 전하지 못한 게 후회됐고 남편이라고 저 인간을 철석같이 믿은 게 후회됐다.
그래도 다 털어놨더니 조금은 후련한 마음으로 요양원을 나설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입을 닫았다.
딸이 차에 있으니 이 인간 머리끄댕이를 잡고 흔들 수도 없고 ...끓어오르는 화를 온 힘을 다해 눌러 참았고 그 화를 손끝으로 한데 모았다. 아주 저 인간 머리통을 뒤흔들어놓을테다.
아이를 재우고 다시 차 안에서 남편과 대화를 가장한 대판 싸움을 벌였다.
니 눈에는 내가 정상으로 보이냐? 남편 하나 믿고 시집왔더니 진짜 남의 편이네?
아버지한테 말씀드려도 이해를 못하실것 같아서 그냥 우울증 걸려 아프다고만 했단다. 얼씨구! 그건 너님 생각이시죠 아버님은 다 알아들으시고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하셨는데 어쩜 끝까지 너는 효자 아들이냐? 그냥 짐싸서 아버님 요양원 옆 침대로 가라고 했다.
남편자격, 아빠자격 없으니 이제 그 좋아하는 효자아들노릇 실컷하시라고!
그리고 내가 물었다
“자기는 세영이(딸)가 나 같은 곳으로 시집간다 그러면 어떡할거야? 아버님처럼 시집살이 대박 시키는 곳으로 간다 그러면 자기는 어떨것 같아? 보낼꺼야?”
심각하게 생각하던 남편은 몇 초 후에
“아니! 절대 안돼지!! 그런 곳으로 어떻게 시집을 보내냐?”
손에 모아놨던 온 힘을 모아 옆대가리 쪽 머리털을 쥐어잡고 앞뒤좌우로 사정없이 흔들었다. 그래! 니 딸은 안돼고 나는 개고생해도 되냐? 니가 생각해도 아닌 건 아닌가베? 차가 출렁댈 때까지 두드려 패도 분이 안가셨다. 나쁜노므스끼!!!
와우! 근데 머리를 그러잡고 땡기는 이 행위가 홧병이랑 상관이 있나? 갑자기 까스활명수 드링킹 한것마냥 속이 시~원해지는 것이 기분까지 상쾌해졌다. 그래서 막장 드라마 보면 다들 머리끄댕이 잡고 싸우고들 그런가봐? ㅋㅋㅋㅋ아주 주기적으로다가 잡아줘야것고만. 우황청심원보다 더 직빵이네 직빵이여!!
그리고 몇 주 후!
요양원에서 근무하는 50대 물리치료사 짝사랑 사건이 터졌다. 물론 울 아버님께서!!
그때 아버님 연세 무려 80대 초반되시것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