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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랖 Dec 10. 2024

Round 16

며느리직 잠정 휴업

추석이 다가오자 명절증후군은 점점 더 심해졌고 내 영향을 받아서인지 세영이가 열이나기 시작했다.

연휴 빨간날 하루 전에 급하게 찾은 소아과에서는 입원을 권유했다. 입원실이 딱 1개 남아있으니 빨리 결정해서 접수하라고 간호사가 재촉했고 남편을 쳐다봤다.

열이 펄펄 끓는 지 새끼를 눈 앞에 두고도 망할 효자 남편은 추석연휴가 코앞이라 차마 입원시키자는 말을 못한다.

이런 씨~삐~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쌍욕이 튀어나와 삐~처리 하였습니다)


수액만 맞히고 집으로 돌아왔다. 바로 시댁으로 향해야 했지만 밤새 또 열이 오를지 몰라 못간다고 버텼다.

아침이 되니 열이 좀 내려서 오후에  아픈아이를 데리고 시댁으로 향했다.

추석 전날 와서 자기네 아버지 밥 차려주고 온갖 수발 들어야될  며느리가 추석당일날 왔다는 소식이 빠르게 퍼졌나보다.  생각에 화가 났는지 형님들은 다음날 일찍도 들이닥치셨다. 원래는 오후늦게나 오시는데.


부엌에서 상차릴 준비를 하고 있으려니


“올케! 들어가서 애기 좀 봐! 내 동생(남편) 밥 좀 편하게 먹게.”

큰형님의 앙칼진 목소리.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토씨하나 빼먹지 않고 기억하는 그 비수같은 말들을 나에게 던졌다.

“올케! 이해하지? 팔은 안으로 굽는다잖아? ”완도에서(큰형님 시댁이 완도) 비싸다는 민어 살을 잔뜩 발라 남편 밥 위에 올려주면서

“동생아! 이것좀 먹어봐라 엄청 비싼 생선이야. 돈 주고도 이거 못사먹는다.“ 남편이 내 밥 위에도 올려주려고 하니


올케 생선 안좋아하는 것 같으니 너(남편)나 많이 먹어. 내가 너 줄려고 챙겨왔지!” 올케 입에 처넣어줄라고 챙겨왔냐?는 뜻이것지.



저도 비싼 생선 먹을 줄 압니다.근데 야!!  더러워서 안먹을란다. 나는 순간 모멸감과 멸시를 느꼈다. 도대체가  형님들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이길래 사람 면상에 대고 저런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할 수가 있을까? 아니면 내가 사람으로도 안보이는 걸까? 열이 펄펄 끓는 조카(세영)걱정은 1도 안하면서 추석연휴 하루 늦게 온 올케가 밥먹는 꼴또 보기 싫으신 모양입니다그려.

유치해서 내가 참..기도 안찬다.


나에겐 나만의 도덕적 기준이 있다. 정이 많은 스타일이라 적어도 상대방에게 삼 세번의 기회는 준다. 허용치를 넘는 순간! 내 마음의 문이 저절로 닫혀버린다. 그리고는 마음속에서 영원히 지워버린다.

그렇게 큰형님은 삼 세번의 기회를 홀라당 날리시고

 내 마음속에서 지우개질 됐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또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들만 챙기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가족이라고 꼭 볼 필요가 있겠습니까? 글고 형님이 뭔 또 가족이냐 먼~친척뻘이지..


(형님들 보시기에도 제가 쫌 이뿌게 생겼잖아요? 저 인기 겁~~나 많습니다!! 큼큼~)



그리고

몸에 이상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도때도 없이 하혈을 했고 생리양이 어마무시하게 늘어났다.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내 억울함을  성토하듯, 응어리들을 분출하듯 쏟아내기 시작했다.

병원을 가봐야 하나 생각만 하던 어느 날.

오전부터 몸상태가 안좋았다. 몸에서 엄청 안좋은 냄새가 나는 것도 같고 아닌것도 같고..

밤에 샤워를 하러 욕실에 들어갔다가 놀라 자빠질뻔 했다.

내 몸 밖으로 뭔가가 기어나와있었다...

급하게 남편을 불러 응급실로 향했고

어떻게 오셨냐는 질문에

“질 밖으로 뭐가 나왔어요.”

얼굴이 하얗게 변한 나의 답변을 듣고 응급실이 난리가 났다.

아마도...아이를 출산했다는 소리로 잘못 들으신 듯.

일단 태아는 아니라고 의료진들을 안심시킨후 정황을 설명했다.

듬직한 남자 간호사분이 오셔서는


“이 빨간색 선을 쭈욱 따라가십시오”

순간 멈칫했다.

이 빨간선을 따라 걸어가면 다시는 되돌아오지 못할 것만 같았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혼자 그 무서운 길을 걸어갔다.

어둠이 찾아온 병원복도는 으슥하고 어둡고 외로웠다. 남편은 서류를 작성해야 하니 혼자 가란다. 그 길 끝에 누군가 기다리고 있을거라고.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내가 다시 살아서 이 길을 되돌아올수 있거들랑 지금처럼은 살지 않겠노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그 빨간선을 따라 걸어들어갔다.


그 빨간선 끝에는 산부인과가 있었고 간호사 쌤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 손을 덥석 잡으며

많이 놀라셨겠어요.” 하신다. 그날 당직 산부인과 선생님(여성)은 내 몸상태를 보시고는 기겁을 하셨다.

자궁에 있던 근종들이 그 부피를 견디다 못해 질 밖으로 에퉤! 한거였다.

바로 처치실로 가서 일단은 기어나온 근종들만 잘라내야겠다고 하신다. 국그릇으로 한 대접을 잘랐다며

외래 접수 해놓을테니 내일 당장 수술날짜 잡게 오라신다.


다음 날! 남편에게 아이를 맡겨놓고 혼자 진료를 받으러 갔다.

“왜 그러셨어요? 몸에 이상이 있는거 이정도면 아셨을텐데..왜 이렇게 늦게 병원에 오셨어요?”

하고 위로하는 듯한 목소리로 물으신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나도 모르게

“선생님..제가 ... 살고 싶지가 않았나봐요.”

갑자기 터져나온 눈물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쏟아져 나왔고 선생님은 감사하게도 다그치지 않고 기다려주셨다. 조용히...

그러고선..

아이도 어린데 엄마가 그런 마음을 갖고 있으면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됩니다. 수술하면 좋아지니 걱정마세요.

워낙 근종이 커서 혹시 몰라 어제 떼어낸 걸로 조직검사 보냈습니다. 연락을 따로 드릴거고 수술날짜 바로 잡으셔야 해요. 자궁 전체에 근종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출혈이 너무 심해서 위험합니다“


그때의 내 마음은.. 수술하고 싶지 않았다.

그 수술을 마치고 또 헤쳐나가야 될 내 미래가 너무 암담했고

그나마 버티고 버텨냈던  내 다리가 이제는 그만좀 일어서라고 나무라는 듯 했다. 어떻게 생겨먹은 팔짜가 온통 나에게 바라기만 하는 사람들만 이렇게 덕지덕지 붙어있단 말인가.



그래도 아이가 있으니까...다시 또 일어서야 할까...

빈혈이 너무 심해서 당장은 수술은 어렵다고 했다. 빈혈약 챙겨먹고 괜찮아지면 최대한 빨리 수술하자며 2주후에 보자고 하셨다.

꾸벅 인사하고 나가려는 내 손을 잡으시더니


신경정신과 진료 받아보시는 건 어떠세요? 예약해드릴까요?” 조심히 물어오신다.


나는 됐다고 정중히 거절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그 신경정신과 진료 받을 사람은 제가 아닌걸요. 가해자들이 치료를 받아야지 피해자인 제가 왜 받아야 하나요?


다행히 빈혈수치가 정상화되서 수술 하루 전날 입원했다.

이런 저런 검사를 시작했다. 피뽑고 엑스레이 초음파 등등...

남편은 입원만 시켜주고 아이때문에 집에 갔고 결과 나올 때까지 나 혼자 병실에서 대기했다.


그런데....

이렇게나 행복할 수가....

침대에 혼자 누워 유튜브를 맘껏 시청할 수 있다니..노래 3곡을 연달아 들을 수 있다니..

육아도 안해도 되고 친정부모, 시아버지한테 안 시달려도 되고.. 난 그 순간에 여기가 천국인가 싶었다. 너무 행복해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 별거 아닌 행복도 나는 지금껏 누리지 못하고 살았구나.

암이면 어떠랴 지금 이순간이 그 무엇보다 눈물나게 행복한데!

그러다 갑자기  내자신이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억울해지기 시작했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누가보면 내일 수술이 무서워 우는 줄 ㅋㅋㅋ

그렇게 정맥을 못찾아 커다란 주사바늘이 내 정맥을 3번 뚫어 비명을 지르기 전까지  난 그 천국을 맘껏 날아다녔다.(딸랑 30분)



알레르기가 심했다. 온갖 항생제며 양약에 거부반응을 보여 심한 부종을 동반한 천식이 올라온다.

수술은 해야되고 항생제를 무조건 써야하는 터라 검사할 게 많아졌다. 팔뚝에 찔러놓은 테스트 약물들이 엄청시리 부풀어 올라 담당쌤도 골머리를 앓고 있는 모양이다.

가장 약한 항생제를 투여했더니 권투선수가 쥐어터진것 마냥 양쪽 눈이 부풀기 시작했고 다행히 천식발작은 없어 내일 아침 일찍 수술에 들어가자고 했다.


다음 날 아침, 양갈래로 머리를 이뿌게  땋고 수술복으로 가라입 후  수술실로 옮겨지기 전! 울 남편에게 마지막으로


나 수술 끝나면 다시는 자기네 집에 안가. 그러니 나에게 더이상은 바라지마. 알겠어?“


수술 들어가는 아내가 하는 말에 차마 노!라는 말은 못하겠는지 알았으니 걱정말고 수술 잘 마치고 오란다.

니가 젤루 문제다! 이 효자남편눔아!!!

응급실에서 빨간선을 걸어갔던 그 밤처럼 나혼자 수술실까지 눕혀진 채로 이동했다. 수술실 앞 간호사쌤이 내 손을 꼬옥 잡아주셨다.

나를 위로해 준 사람은 가족도 아니고 남편도 아니고 아무말 없이 잡아준 간호사 선생님과 의사 선생님이었다. 이제는 가족들에게 목매달고 살지 않아도 될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몇 시간후 깨어났고...

그렇게 난 다시 태어났다.

나 자신과 약속했던 것처럼 절대 예전처럼 살지 않겠다!



수술은 잘됐다고 하셨다. 다행히 걱정하던 암은 아니니 안심해도 된다고. 대신 자궁기능의 70%를 상실했고 자연임신은 어렵다는 판정을 받았다.

아직도 수술을 할 수 없는 곳에 근종들이 너무 많이 있다고 갸들이 다시 밑으로 내려오면 또 수술을 해야한단다.

왜 근종이 생기나요? 물어봤다. 다양한 이유들이 있지만 확실하게 밝혀지진 않았단다.

스트레스가 원인일 수도 있나요? 그렇단다.


퇴원하고 친한 한약사쌤께 전화드렸다.

근종이 스트레스가 원인일수 있나요? 약사님 소견은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본단다. (울혈이 뭉쳐서 그런다나..)

꾸역꾸역 버텨내는게 능사라고 생각해 지금까지 사람대접 못받아도 어른이니까 나를 낳아준 부모니까, 남편의 부모니까 꾸욱 참아냈다.

집에 사람이 잘 들어와야 되는데 어쩌구 하는 그 개소리도 이악물고 꿀떡 삼켰다. 장녀니까 언니니까 며느리니까 아내니까 이제는 엄마니까.

내 어깨에 놓여진 짐들에 짖눌려도 다 짊어지고 살아야 되는 줄만 알았다. 내 몸이 이렇게 힘들어하는지도 모르고. 죽어가는 줄도 모르고.

이렇게 살다가는 부모보다 시아버지보다 내가 먼저 그 강을 건널 판이다. 이제 그 힘든 역할 중 몇개는 내려놓을란다.


수술을 마치고 한달 후 다시 검사를 받으러 갔다. 근종들의 위치가 바뀌어 있으면 수술을 해야된다고 하셔서 초음파검사를 했다.

다행히 알아서 안쪽으로 딱! 붙어있어 출혈이 심해지지 않는 이상은 괜찮을듯 싶다고 하신다.

진료실 밖을 나와 또 한번 강하게 선언을 했다.

이제는 시댁이고 나발이고 나는 모르것다고.

 먼저 저세상 가는 꼴 보기 싫으면 이제는 너네집은 니가 알아서 하라고!

난 이제 엄마역할할거다. 거지같은 느리직은 잠정 휴에 돌입한다!

그리고 똑바로 가서 전해!  

아버님이랑 형님들때문에 내가 이리 만신창이가 됐고 그 몹씁  우울증도 걸렸다고!!

남의 귀한 자식 데려다가 당신들이 이모냥 이꼴로 만들어났다고 꼭 말하라고 했다. 내편은 아니지만 그것만은 해주겠지??


그러나..늘 그렇듯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도끼를 갖다가 확! 뿌러뜨려버려야지...후~~)






오늘도 연재글을 올리며 화가 머리끝까지 저는 남편 뒤통수를 후려갈기며 한마디 했습니다

밤길 조심해라!! 우리 브런치 절친 작가님들이 아주 그냥 자기 가만 안둔다고 르고들 계시니깐!!

ㅋㅋㅋ아~ 든든하여라!!! ㅋㅋㅋ잘 부탁드립니다!! 이왕 때려주실거 아주 씨~~~게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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