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드디어, 내 집

by 앙또아


나는 한 동네에서 오래도록 살았다. 어릴 적 사진첩을 펼치면, 두 살 무렵부터 식당에 딸린 작은 쪽방에서 살기 시작한 흔적이 나온다. 방 하나, 형광등 하나뿐인 좁은 공간. 엄마가 식당 일을 하며 쉬엄쉬엄 나를 돌보던 그 방에서 내 유년이 시작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식당에서 걸어서 1분도 채 안 되는 거리의 작은 빌라로 이사했다. 방이 세 칸이었고, 지금 생각하면 작고 오래된 집이었지만 당시엔 내겐 넓고 근사해 보였다.


그 빌라에서 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고... 그렇게 스무 살을 훌쩍 넘길 때까지 살았다. 독립을 결심하고 고시텔로 옮기기 전까지는 줄곧 그 집이 내 전부였다. 이후엔 남편을 만나, 또 다른 집에서 함께 살아가기 시작했다.


나와는 달리, 남편은 유년 시절 내내 이삿짐과 함께 살아왔다고 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로도 한 해가 멀다 하고 전학을 다녔고, 친구가 막 생기면 어느새 다시 짐을 싸야 했다. 중학교에 들어서며 전학은 멈췄지만, 집은 여전히 옮겨 다녔다.


정말 ‘역마살’이 있는 걸까. 시부모님은 자가를 마련하셨음에도 여전히 이사를 멈추지 않고 계신다. 이유는 늘 다양했고, 바뀌지 않는 건 ‘또 이사한다’는 사실뿐이었다.


그 기운이 남편에게, 그리고 나에게도 스며든 걸까. 결혼 후에도 우리는 좀처럼 한자리에 머무르지 못했다. 어디에 살아도 늘 임시 거처 같았고, 이삿짐은 몇 년에 한 번씩 우리를 일으켜 세웠다.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다시 뽑혀 나오는 나무처럼, 우리는 그렇게 떠돌며 살아왔다.



남편과 함께한 이후, 우리는 총 일곱 번의 이사를 했다. 한곳에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전세 계약이 끝날 때마다 우리의 뜻과 상관없이 짐을 싸야 했다. '이제는 집을 사야 할까?' 몇 번이고 고민했지만, 그럴 때마다 커다란 대출이 마음을 붙잡았다. 몇 억의 빚을 지고 집을 산다는 게 감히 결정하기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집값은 마치 누가 버튼을 누른 듯 치솟기 시작했다. 뉴스에서만 보던 ‘광풍’이 우리 동네까지 몰려왔다. 매매가는 물론이고, 전세금도 미친 듯이 올라갔다. 눈 깜짝할 사이, 예전엔 ‘조금 비싸다’고 느꼈던 금액이 ‘이 정도면 싸네’로 바뀌어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집주인이 직접 들어와 살겠다고 통보해오면서, 계약 연장은 물 건너갔다.


우리는 초등학생 딸의 전학을 막기 위해 학교 근처에서 이사 갈 집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전세 물건은 거의 없었고, 간신히 나오는 매물도 가격이 말도 안 됐다. ‘집 보러 가는 게 일’이 된 나날들이 계속됐다. 하루 이틀, 시간이 갈수록 마음은 조급해졌고, 이사는 점점 벼랑 끝으로 우리를 몰아세웠다.


다행히 마지막 순간에 조건에 맞는 집을 구할 수 있었지만, 그때를 기점으로 우리 부부의 생각은 달라졌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우리도 이제, 집을 가져야 할 때인가 보다.’


마침 같은 동네에 살던 남편의 친구가 청약에 당첨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도 한번 넣어볼까?” 큰 기대 없이, 정말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청약을 넣었다. 그렇게 시작한 청약 도전은 놀랍게도 단 두 번 만에 결과를 냈다. 당첨.


휴대폰으로 당첨 안내를 몇 번이나 다시 확인했다. “진짜 된 거 맞아?” 처음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예정보다 훨씬 빠른 결과에 마음은 두근거리면서도 불안했다. ‘우리가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앞으로 내 집 마련은 점점 더 멀어질 것 같았다.


문제는 돈이었다. 가진 돈은 턱없이 부족했고, 대부분을 은행 대출에 의지해야 했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며 매달 갚아야 할 원금과 이자를 따져봤다. 불안은 컸지만, 남편의 수입과 내가 부업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을 합치면... 간신히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 결정을 내렸다. 드디어 우리도, 내 집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렇게 우리의 첫 집, 아파트 공사가 시작됐다. 다행히도 우리가 살고 있던 곳에서 걸어서 40분 남짓한 거리였기에, 우리는 딸과 함께 종종 산책 삼아 그곳을 찾았다.


처음엔 허허벌판에 울타리만 둘러쳐져 있었고, 먼지만 날렸다. 하지만 갈 때마다 조금씩 달라졌다. 어느 날은 땅을 깊이 파고 있었고, 또 어느 날은 철근 구조물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집의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변화들이 눈에 보일 때마다 설렘이 밀려왔다. 콘크리트 벽 하나가 올라간 것만 봐도 가슴이 뛰었고, 이름 모를 공사 소음마저 반가웠다. 그저 울타리 너머로 아파트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하고, 배가 부른 느낌이었다.


그 시기, 뉴스에서는 연일 부실공사에 대한 보도가 쏟아졌다. 원래 수량보다 철근을 덜 넣어 짓는다는 뉴스에, 우리 아파트는 괜찮을까 싶어 걱정이 밀려왔다. 어느새 그럴듯해진 아파트 외관을 보며 괜히 눈썰미도 없는 내가 기둥이 휘어 있는 건 아닌지, 벽면이 울퉁불퉁한 건 아닌지 살펴보기도 했다.


마침내 공사가 마무리되어 가고, 기다리던 사전점검 날이 다가왔다. 드디어 우리 집 안으로 들어가 본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지만, 혹시 큰 하자가 발견되진 않을까 걱정도 컸다. 사전점검은 입주자가 직접 모든 걸 확인해야 했다. 몇 억씩 하는 집인데, 대충 보고 넘길 순 없어 우리는 사전 점검 업체까지 따로 불러 꼼꼼히 확인하기로 했다.


현관문을 열고 처음 들어간 집은 공사 잔해와 먼지투성이였지만... 그럼에도 벽지 색깔 하나, 타일 줄눈 하나까지 설렘으로 다가왔다. 도배는 꼼꼼히 잘되어 있는지, 창문은 잘 여닫히는지, 싱크대 수전은 이상 없는지 업체 전문가와 함께 체크리스트를 따라 점검했다.


하루 종일 구석구석을 들여다본 끝에, 우리는 총 80여 건의 하자를 접수했다. 도어록 오작동, 실리콘 들뜸, 엉성한 페인트칠, 벽면 오염... 대부분 자잘한 것들이었고, 다행히 큰 공사나 구조적 문제는 없었다. 점검 업체 분은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에요. 200건 넘게 나오는 집들도 많아요”라며 웃었다. 몇억짜리 뽑기에서 그럭저럭 괜찮은 결과를 얻은 셈이었다. 우리는 안도하며, 마음속으로 작은 환호를 보냈다.


그동안 수많은 이사를 해봤지만, 신축 아파트로의 이사는 유독 힘들었다. 이사 날짜를 잡는 것부터 입주청소, 커튼·블라인드 설치, 가전 배송 일정 조율, 엘리베이터 사용 예약까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했다. 전입신고와 관리비 자동이체 신청 같은 자잘한 행정처리도 빠짐없이 챙겨야 했다.


포장이사는 무사히 마쳤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짐이 들어오고 나면 본격적인 ‘정리’가 시작됐다. 하루 종일 짐을 풀고도 남편과 딸이 잠든 늦은 밤까지 나는 계속 집안을 오갔다. 택배 박스를 쌓고 풀고, 가구 배치를 다시 고민하고, 살림을 하나씩 제자리에 넣었다.


모든 일이 끝나고 겨우 거실에 앉았을 때, 문득 주위를 둘러보았다. 너무도 낯선 풍경이었다. 분명 내 집인데도 어디선가 빌린 공간에 잠시 머무는 것만 같은 기분. 이사 온 지 하루밖에 안 됐는데, 벌써 또다시 짐을 싸야 할 것 같은 묘한 낯섦이 밀려왔다.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은 벅찼다. ‘드디어 우리 집이 생겼구나’라는 실감이 가슴 깊은 곳에서 천천히 올라왔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시간은 점점 더 빠르게 흐른다. 벌써 이 집에 이사 온 지도 1년이 훌쩍 넘었다.


이곳에 정착한 뒤, 신기하게도 좋은 일들이 하나둘씩 찾아왔다. 가장 큰 것은 남편이 대기업 이직에 성공한 것이다. 새 직장에서 받는 월급은 이전보다 훨씬 넉넉했고, 매달 고정지출을 감당하고도 저축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경제적인 안정이 주는 마음의 평온이 이렇게 다를 줄은,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변화. 우리 가족에게 새로운 식구가 생겼다. 딸이 어릴 적부터 간절히 바라던 강아지를 드디어 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은 이사를 자주 다녀서 항상 “조금만 더 기다리자”는 말로 미뤄왔던 약속이었다. 이제는 어디론가 떠날 걱정 없이 오래 머물 수 있는 집이 생겼기에, 마침내 그 소원을 이루게 됐다. 조심스레 품에 안긴 강아지를 보며 딸은 눈시울을 붉혔고,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했다.


강아지가 우리 가족이 된 뒤, 집 안에는 웃음이 더 자주 흘렀다. 남편도, 딸도, 나도 날마다 웃을 일이 하나씩은 생겼다. 딸은 아침마다 "아~ 발바닥 꼬순내 너무 좋아!" 하며 수시로 킁킁대며 강아지 냄새를 맡았고 저녁이면 남편이 강아지와 놀아주며 깔깔대고 웃었다.


나는 여전히 집순이었지만, 강아지 덕분에 하루 두 번씩 산책을 나서게 됐다. 그런 나를 보며 남편은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엄마 산책시키느라 고생 많네.” 놀리는 거 같아 발끈했지만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 없었다. 진짜로, 강아지가 우리 집에 온 후 난 인생에서 제일 많이 걷고 있었다.


사랑하는 남편과 딸, 그리고 귀여운 강아지와 함께하는 지금의 내 삶은, 마치 공익광고에 나오는 ‘행복한 가족’ 그 자체 같다. 십 대 시절, 불행의 그림자에 갇혀 있던 그때의 나는 상상도 못했을 나날들이다.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밤이 되어 눈을 감기까지 나는 매 순간이 행복하다. 가끔,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때면 ‘혹시 꿈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혹여나 긴 꿈에서 깨어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설령 꿈이라면, 제발 이 꿈이 영원히 깨지 않기를. 오늘도 나는 그렇게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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