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에 죽겠다던 내가 벌써 마흔

by 앙또아


사람의 인생이란 정말 알 수 없다. 불행했던 10대 시절,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미래 속에서 나는 ‘서른까지만 살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어린 마음엔 그 정도면 꽤 긴 삶이라 여겨졌고, 미련 없이 끝을 맞이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내가 끝이라 여겼던 서른 살은, 뜻밖에도 새로운 시작이었다. 그 나이에 나는 평생을 함께할 인연을 만나 사랑을 이루었고, 예쁜 딸을 품에 안았다. 그리고 어느새 세월은 훌쩍 흘러, 내 나이는 마흔을 넘겼다.


남들이 보면, 고작 그 정도 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냐며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TV 뉴스만 봐도, 세상에는 내가 겪은 일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혼자 살아가는 아이, 전쟁과 재난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디는 사람들, 폭력이나 학대 속에 놓인 누군가의 사연들... 화면 속 그들의 삶은 눈물 나게 안타깝고, 나에겐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고통처럼 느껴졌다.


그들 앞에서 내가 겪은 일은 어쩌면 아주 작고 사소한 불행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의 큰 상처보다 내 손톱 밑 가시가 더 아프다’는 말처럼, 그때의 나는 정말 힘들었다. 누군가의 고통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다독이기엔, 내 마음속 어둠은 이미 깊고 날카로웠다.


아픈 아빠와 매일같이 술을 마시는 엄마, 그리고 그 사이에서 아무 말도 못 한 채 숨죽여 지내야 했던 나날들. 집 안엔 늘 무거운 공기와 날 선 말들이 떠다녔고, 따뜻한 밥 한 끼, 편안한 대화 한마디도 사치처럼 느껴졌다.


돈이 없어 먹고 싶은 걸 참고, 하고 싶은 것도 꾹꾹 눌러야 했다. 친구들이 학원에 가고, 가족과 여행을 다녀온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그저 웃기만 해야 했다. 당연한 듯 누리는 일상이 내겐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무엇보다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외로움이 나를 가장 힘들게 했다. 세상은 마치 나만 골라 괴롭히는 것 같았고, 어디에도 나의 편은 없었다.


나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것도, 화목한 가정을 가진 것도 아니었다. 예쁜 외모도, 늘씬한 몸매도, 눈에 띄는 재능이나 뛰어난 머리도 없었다. 무언가 하나쯤은 나에게도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아무것도 갖지 못한 채 세상에 던져진 기분이었다. 그 사실이 원망스러웠고, 무엇보다 그런 나 자신이 싫었다.


그런데 마흔을 넘긴 지금, 지난 시간을 찬찬히 되돌아보니 그 절망뿐이던 인생 속에서도 분명 나에게 ‘주어진 것’이 있었다. 바로,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격이었다.


‘서른에 삶을 끝내고 싶었다’던 사람이 긍정적이라니, 어쩌면 모순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 성격 덕분에 나는 그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다.


욕설과 비난이 가득했던 집에서 나와 학교로 향하면, 나는 우울을 털어내고 친구들과 웃었다. 속은 아프고 상처투성이였지만, 겉으로는 명랑하고 밝은 아이로 보이고 싶었다. 현실은 내 꿈과 너무도 달랐고, 매번 벽처럼 가로막혔지만 그 안에서도 나는 다시 새로운 꿈을 꿨다.


상처받고 무너진 마음을 안고 돌아서도, 다시 용기를 내어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고, 다시 다가갔다.


혼자 있으면 금세 가라앉을 것 같았기에, 좌절 속에 그대로 주저앉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다. 어두운 터널 속에서도, 나는 늘 바깥을 향해 몸을 기울이고 있었다.


나 스스로라도 행복해지기 위해 애썼고, 그런 나의 마음이 세상에도 조금씩 전해졌는지, 신기하게도 내 삶은 점점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간절히 바라던 일들이 하나씩, 내 손안으로 들어왔다.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울고 있는 어린 나를 마주하게 된다면 나는 조심스럽게 이렇게 말해줄지도 모른다.


“힘내. 지금은 너무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버텨봐. 너는 네가 좋아하는 그림으로 돈을 벌게 될 거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도 하고, 예쁜 아이도 낳고... 지금은 상상도 못할 만큼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거야.”


하지만 그 말을 들은 과거의 나는 아마 단 한 글자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거짓말하지 마!” 울먹이며 고개를 저었을 것이고, 오히려 화를 내며 쏘아붙였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지금의 나는, 그때 울고 있던 소녀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 행복은 엄청난 노력의 결과가 아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아주 사소한 선택들과 조그만 행동들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것이다.


남들이 포기할 만한 순간에도 하루만 더 버텨보자고 스스로를 달래고, 하기 싫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으고, 밤마다 혼자 노트에 그림을 그리고, 꿈을 적어 내려가던 시간들. 그렇게 하루하루를 무너지지 않게, 겨우겨우 지탱해온 날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나비의 날갯짓처럼 보잘것없던 작은 변화들이 결국 내 인생의 방향을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바꿔 놓았다.


어쩌면 나는 행복의 기준을 높게 잡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이 삶에 만족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바라던 행복은 부유하거나 눈부신 성공이 아니라, 그저 따뜻하고 소박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웃을 수 있는 단란한 가정이었다.


나의 서른이 인생의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었듯, 마흔이라는 나이 역시 내 삶의 진짜 출발점인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지난날의 아픔에 묶이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따뜻하게 끌어안으며,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마쳤다. 넘어질 수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내 안에 있다는 것도 안다. 그건 이미 지난 시간을 통해 충분히 증명된 진실이니까.


앞으로 내 삶에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더 설레고, 더 기대된다. 또 다른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고, 아직 만나지 못한 나를 만날 수도 있다는 것. 나를 기다리는 많은 날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내 인생의 두 번째 봄이 이제 막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조급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 계절을 만끽하고 싶다. 그리고 바라본다.


전편보다 더 아름다운 속편이 되어 마침내

‘해피엔딩’이라는 따스한 결말에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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