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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워킹맘 Jun 24. 2024

모든 생명은 본래 스스로 아름답다

김훈 산문, <허송세월>

모든 생명은 본래 스스로 아름답고 스스로 가득 차며 스스로의 빛으로 자신을 밝히는 것이어서, 여름 호수에 연꽃이 피는 사태는 언어로써 범접할 수 없었다. - 김훈, <허송세월> 중에서


김훈 선생님의 신간 <허송세월>을 손에 넣었다. 출간 소식을 듣고도 한참을 기다렸다. 손에 쥔 선생님의 책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선생님의 <자전거 여행>을 처음 읽었던 대학 시절, 처음으로 신문 기자가 되고 싶었다. 선생님처럼 간결하고 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25년이 지난 지금, 기자가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여전히 선생님의 책을 읽고 좋아한다. 선생님과 함께 나이 들어간다는 기분이 든다. (감히) 


여름날 일산 호수공원은 아름답다.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의 그곳을 모두 경험해 봤기에 선생님의 글이 더 잘 느껴졌다. 그 호수에 핀 연꽃이 더 아름답겠냐만은 여름날의 연꽃은 반드시 시간을 들여 바라볼 필요가 있다. 아, 이번 주말에는 연꽃을 보러 가야겠구나. 

여름 나무들은 이제 막 태어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빛났다. 나무들은 땅에 박혀 있어도 땅에 속박되지 않았다. 사람의 생명 속에도 저러한 아름다움이 살아 있다는 것을 연꽃을 들여다보면 알게 된다. 이것은 의심할 수 없이 자명했고, 이미 증명되어 있었다. - 김훈, <허송세월> 중에서


낮이 가장 길다는 하지를 지났다. 장마가 시작되었으니 축축하고 무더운 날들이 이어질 것이다. 여름 나무들은 더 빛날 일만 남았다. 자연의 아름다움, 생명의 아름다움은 예찬하고 또 해도 부족하다. 우리 사람의 생명 속에도 아름다움이 있다. 다만, 우리가 잊고 살고 무시하며 살아갈 뿐이다. 선생님의 글은 우리를 일깨운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지 말고 살아가라고 말이다. 


나는 책을 자꾸 읽어서 어쩌자는 것인가. 책 보다 사물과 사람과 주변을 더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늘 다짐하면서도 별수 없이 또 책을 읽게 된다. 책을 읽는 데 무슨 여름 겨울이 있으랴마는 <장자>는 여름의 나무 그늘에서 읽어도 좋고 눈에 파묻혀서 세상이 지워지는 겨울밤에 읽어도 좋다. - 김훈, <허송세월> 중에서


별수 없이 또 책을 읽게 된다는 문장에 웃었다. 책 보다 사람을 들여다봐야지 다짐해도 말짱 도로묵인건 나도 마찬가지라서다. 선생님이 집어든 <장자>를 나도 펼쳐봐야겠다. 월요일 아침, 이번 한 주간 읽을 책을 떠올리며 신이 난다. <장자>가 어디에 꽂혀 있었더라. 누군가를 빌려준 것도 같은데 돌려받지 못한 것 같기도 하다. 출근하면 회사 서점에서 <장자>를 찾아봐야겠다. 모든 생명은 본래 스스로 아름답다는 명제를 확인해 보겠다. 출근하기 전 책 읽기는 나를 에너지 넘치게 만들어주는 게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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