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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워킹맘 Jun 28. 2024

금요일 아침 나는 기꺼이 출근한다


* 기꺼이 : 마음속으로 은근히 기쁘게.


삶의 마디마다 기꺼이 가라앉거나 떠오르는 선택이 필요하다면, 여기에서 방점은 '기꺼이'라는 말 뒤에 찍혀야 할 것이다. 기꺼이 떨어지고 기꺼이 태어날 것. 무게에 지지 않은 채 깊이를 획득하는 일은 그렇게 해서 가능해지지 않을까. - 한정원, <시와 산책> 중에서


매일 전쟁터 같은 사무실로 출근한다. 요즘 회사를 둘러싼 상황이 어수선한데, 그 어수선함으로 온몸으로 느끼는 곳이 새로 발령받아 근무하는 곳이다. 근무 시간 내내 회사 관련 뉴스를 모니터링한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니 어깨가 돌처럼 굳고, 손목이 저리기 시작했다. 역시, 복직한 지 한 달이 채 못되어 몸은 나쁜 상태로 돌아가려 한다.


어젯밤 잠들기 전까지 뉴스 모니터링을 하다 느낌이 왔다. 힘든 금요일이 되겠구나 하는 싸한 느낌. 왜 이런 감은 틀리질 않는 건지 모른다. 조금은 반항하듯 오늘 새벽엔 한정원 님의 <시와 산책>을 펼쳐 들었다. 몸은 난리통에 있어도 마음만은 다른 곳에 가 있고 싶었다. 그리고 밑줄 그어둔 이 문장을 읽고 또 읽는다.


기꺼이 떨어지고, 기꺼이 태어날 것.

나는 기꺼이 하고 있는가. 기꺼이 일하고 있는가.  


우리는 잘 모르는 것을 무서워한다. 순서를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두려워하는 이유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 - 한정원, <시와 산책> 중에서


복직 후 내내 긴장 속에서 지냈다. 복직하기 전에 새로운 부서로 발령이 나서 두려웠다. 새롭게 할 일이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해보지 않은 일, 경험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일을 빨리 익히지 못하면 어쩌나, 그동안 관심도 두지 않고, 공부도 하지 않았던 일인데 나의 부족함이 들통날까 겁이 났다. 몹시도 무서웠다.


두려움의 시작은 무지에서 출발한다는 말이 위로가 됐다. 그래, 난 모른다고 생각하니 두려웠던 것이다. 하나씩 알아가면 그뿐이다. 기꺼이 새로운 환경에 나 스스로를 몰아넣었고, 기꺼이 나의 커리어를 다시 시작했으니 잘 된 일이다. 무섭다고 피할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행복은 그렇게 빤하고 획일적이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고 설명하기도 어려우며 저마다 손금처럼 달라야 한다. 행복을 말하는 것은 서로에게 손바닥을 보여주는 일처럼 은밀해야 한다. 내 손을 오래 바라본다. 나는 언제 행복했던가. 불안도 외로움도 없이, 성취도 자부심도 없이, 기쁨으로만 기뻤던 때가 있었던가. - 한정원, <시와 산책> 중에서


아침에 출근하니 부서장이 선언한다. '오늘은 우리 팀 비상근무합니다. 시간 외 근무 신청 미리 해주세요.' 역시, 이번주 금요일은 회사에서 하얗게 불태우겠구나.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그런데 아침에 읽은 글귀가 자꾸 내 발목을 잡았다. 기꺼이 하는 선택, 그리고 몰라서 생기는 두려움. 행복은 획일적이지 않다는 것. 어려운 상황에서도 할 일이 있다는 것도 행복 중 행복이겠지. 조금이라도 덜 불안하고, 외롭지 않게 기꺼이 일하는 나를 좋아해 보기로 한다.


출처 : pexel.com
혹시 나에게는 불 대신 빛이 있을지. 불을 지를 수는 없지만 당신을 환하게 비출 수는 있을지, 은은하게 나의 사랑을 연명해 나갈 수도 있을지. 벅찬 여름을 지나며, 그것을 지켜보기로 했다. - 한정원, <시와 산책> 중에서


2024년 여름은 내게 벅찰 지도 모르겠다. 매년 여름이 그랬지만, 이번 여름엔 더 많이 뛰고 더 뛰어다녀야 할 것 같다. 내 안의 빛을 꺼내어 주변을 비출 수 있다면 얼마든지, 기꺼이 출근해서 일해보겠다. 다만 이 와 중에도 여름 바다가 그립다는 말을 어디에도 하지 못했다. 형광등 아래 몇 시간이고 앉아있는 나도, 바닷가 앞에 앉아 멍 때리는 나도 좋다. 아무렴 어떤가. 기꺼이 일하는 나에게 사랑한다, 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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