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현재의 인간관계에서 뿐 아니라 지나간 날의 추억 중에서도 사랑받은 기억처럼 오래가고 우리를 살맛 나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건 없습니다. 인생이란 과정의 연속일 뿐, 이만하면 됐다 싶은 목적지가 있는 건 아닙니다.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게 곧 성공한 인생입니다. 서로 사랑하라고 예수님도 말씀하셨고 김수환 추기경님도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너희들 모두모두 행복하라는 말씀과 다름없을 것입니다. -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중에서
언제나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도 어른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큰 일 나는 줄 알았다. 항상 목적지를 정해 달려가고, 그곳에 도달하면 또 다른 목적지를 찾아 헤맸다. 그랬던 내게 박완서 선생님의 말씀이 통하게 됐다. 인생이란 과정의 연속일 뿐, 이만하면 됐다 싶은 목적지가 있는 건 아니라는 말에 울컥하고 말았다. 오늘, 그리고 이번 주말에는 박완서 선생님의 책을 더 읽어보고 싶어 진다.
창조주는 우리가 행복하길 바라고 창조하셨고 행복해할 수 있는 조건을 다 갖춰주셨습니다. 나이 먹어 가면서 그게 눈에 보이고 실감으로 느껴지는데 그게 연륜이고 나잇값인가 봅니다. -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중에서
아직 연륜이라는 게 내게는 없나 보다. 행복해도 충분한 조건을 갖췄지만 여전히 행복하지 않은 이유를 찾고 핑계를 대느라 바쁘니 말이다. 이번 한 주는 내게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기억하려 애썼다. 힘들수록 감사하자고. 내가 할 일이 있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으며, 나를 사랑하는 가족이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도대체 뭐가 더 필요하겠는가.
박완서 선생님의 글은 따뜻하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만들고, 지금의 나를 마주하게 한다. 이번달 북클럽의 책도 박완서 선생님의 <나목>이다. 선생님의 첫 작품인 <나목>을 읽다 보면 지금 나의 걱정과 두려움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자신만의 삶을 살아갔던 선생님과 당시 수많은 이들도 있는데, 나는 배부른 고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다.
잡문 하나를 쓰더라도, 허튼소리 안 하길, 정직하길, 조그만 진실이라도,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진실을 말하길, 매질하듯 다짐하며 쓰고 있지만, 열심히라는 것만으로 재능 부족을 은폐하지는 못할 것 같다. - 박완서,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중에서
여전히 나는 잡문을 쓴다. 이토록 하찮은 글이라도 쓰고 나면 선생님의 뜻을 조금이라도 따르는 게 되지 않을까 속 편한 생각을 한다. 인생이란 과정의 연속일 뿐이라는 한 줄만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는 그런 글을 쓸 날이 올까. 그전에 좋은 글을 많이 읽고, 생각하고, 잡문이라도 좋으니 매일 쓰련다. 그러다 보면 나에게도 연륜이라는 게 생기겠지 싶다. 제대로 나잇값을 하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