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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하면 미안하다는 말을 더 자주 할까

by 글쓰는 워킹맘
수치심은 자신의 행위가 타인에게 무시당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슬픔이다. - 스피노자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쉽게 한다. 뭐가 그리 미안한지, 미안할 일이 아닌데 먼저 미안하다고 말해버리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일종의 자기 방어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이 '미안하다'는 말은 나 자신을 제외하고는 참 잘도 내뱉는다. 그게 문제다. 아이들이나 남편에게도, 회사에서 매일 마주하는 이들에게도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그것도 쉽게 하는 사람이다. 그게 못 견디게 싫어질 때가 있는 데 고치기가 어렵다.


미안하다고 말할 때는 보통 부끄럽고 슬프다. 내가 미안하다고 해야 상황이 좋아질 것 같고, 문제가 해결될 것 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런데 한결같이 나의 '미안함'은 사람들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무시당하는 것까지는 아니지만, 나의 잦은 '미안해'는 그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도 나는 계속 미안하다고 말한다. 혹시, 우울증 환자라 그런 걸까?

pexels-vie-studio-4439423.jpg 출처 : https://www.pexels.com/


똑같은 상황을 겪어도 수치심을 많이 느끼는 사람은 '내가 뭔가 부족해서 이런 말을 듣는구나!'하고 자괴감까지 느끼지만, 수치심을 적게 느끼는 사람은 '나의 지금 행동이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았구나'하는 정도로 상황을 넘겨버립니다. 수치심이라는 감정을 잘 다루기 위해서는 내가 지금 수치심을 느낀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 정우열, <감정수업> 중에서


그래, 이거였다. 나는 누군가의 지적을 잘 받아들이지도, 견디지도 못한다. 자책은 무기력으로 쉽게 이어진다. 내가 이렇게 무능력한 사람이었나, 내가 이 정도로 쓸모없는 인간이었나 머리가 아플 정도로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이건 확실히 병이다. 결국 나는 수치심을 느낀다는 사실을 인정조차 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인정하기만 하면 오히려 쉽게 풀어나갈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수치심을 느낀다는 것조차 인정하기 싫었던 나의 오만함을 후회한다. 이젠 수치심을 잘 다루고 싶다. 수치심 뒤에 숨은 나의 마음과 감정을 따뜻하게 바라봐주고 싶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딱 하나, 어쨌든 이런 나를 받아들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나에 관해 알아내고 알아낸 바를 수용하는 것뿐입니다. - 정우열, <감정수업> 중에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 그래도 멈출 수야 없다. 쉽게 자책하고, 아무한테나 미안하다고 말하는 나를 더 살갑게 대하려고 애쓰는 것. 나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는 순간을 감사히 여기고,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 내가 할 일은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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