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나에게 말이 아니라 '느낌'으로 다가섭니다. 그림 앞에 서면 내면이 어느 때보다 솔직하게 드러나는 이유입니다. - 김선현, <그림의 힘> 중에서
평소 우울해지면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본다. 몸을 움직이는 게 가장 빠를 때가 많지만, 사무실 책상 앞에 앉아있을 때는 움직이는 것보다 '보는 것'이 더 쉽다. 스마트폰 배경화면이나 데스크톱 바탕화면에 그림을 설정해 두고 보는 방법도 좋다. 큰 노력 없이 바로바로 볼 수 있는 그림을 골라두는 것이다.
우울해질 때 보는 것도 좋은데, 사실 우울해지기 전에 보는 편이 더 낫다. 치료보다는 예방이 더 쉽고 효과적이니까. '그림'이라는 폴더를 만들어 좋아하는 그림을 하나씩 모으는데 제법 즐겁다. 그림에 대해 잘 몰라도 괜찮다. 명화 시리즈를 구경하다가 기분이 좋아지거나 마음에 훅 들어오는 그림은 저장해 둔다. 아주 작은 품만 팔면 된다.
그림은 나에게 말이 아니라 '느낌'으로 다가오고, 나의 '감정'을 어루만져준다. 말이 필요 없는 사이가 될 수 있다. 그림 앞에서 잘난 척할 필요도 없고, 잘 모른다고 주눅 들 필요도 없다. 눈빛만 봐도 아는 사이처럼, 그저 고요하고 편안한 관계. 그림과 나의 거리는 적정하게 유지된다.
클로드 모네의 수련(Water Lilies)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마치 명상을 하는 것 같이 머릿속이 맑아지기도 하다. 연못 앞에 앉아있는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요즘 물가에 나가는 일이 즐거워졌는데, 그 영향도 있을 것 같다. 잠시만 걱정과 불안을 멈추고, 이 그림을 바라보는 것도 우울감을 줄이는 데 효과가 있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다. 너무 유명한 그림은 그래서인지 더 멀게 느껴질 때가 있다. 고흐의 이 그림에서는 좋은 에너지가 느껴진다. 답답한 감정이 그림 속 소용돌이에 담아 날려버리고 싶어진다. 이 그림을 볼 때면 그림을 못 그리는 나도 뭔가 그리고 싶다. 마구 붓을 놀려서 아무거나 그릴 수 있다면 좋겠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푸른색이 그림에 한가득 담겨 있어서 만족스럽다.
앙리 마티스의 <생의 환희(Joy of Life)>는 가슴을 따뜻하게 만든다. 칙칙한 마음 색깔도 알록달록 화사해지는 것 같다. 그림에서 활력을 느끼고, 내 기분도 좋아지게 만든다. 컬러 테라피 효과를 느낄 수 있다. 옷도 검정이나 회색, 화이트만 입어대는 나에게 화사한 색감은 낯설고도 두렵다. 그럴 때마다 마티스의 그림은 내 눈을 밝게 만들어준다.
요즘 사무실 내 컴퓨터 바탕화면을 차지하고 있는 그림은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The Wanderer above the Sea of Fog)>이다. 그림 속 남자의 얼굴이 궁금해지면서 나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든다. 왠지 저런 풍경 앞에 하루 종일 서 있고 싶어진다. 외롭고 고독한 느낌도 있지만, 나도 딱 이런 상태인 것 같아서다. 그림을 보면서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마음은 평화를 되찾는다. 이 그림도 우울한 분들께 권하고 싶다. 왠지 혼자가 아니라고, 너무 외로워말라고, 조금은 더 높은 곳에서 여유를 갖고 삶을 바라보라고 얘기해 주는 것 같다.
앞으로 또 어떤 그림들이 내 '그림' 폴더에 쌓여갈까? 틈틈이 내 감정을 들여다보도록 도와주는 좋은 그림이 있어 다행이다. 아무리 바빠도 나를 달래줄 그림을 기억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