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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by 글쓰는 워킹맘
메피스토텔레스 : 내기를 할까요? 당신은 결국 그 자를 잃고 말 겁니다. 허락만 해주신다면 녀석을 슬쩍 나의 길로 끌어내리리이다.

주님 : 그가 지상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네가 무슨 유혹을 하든 말리지 않겠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까.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중에서


<파우스트> 속 악마 '메피스토텔레스'는 신과 내기를 한다. 파우스트를 파멸로 이끌어보겠노라고. 이에 신은 의외로 파우스트를 굳게 믿는다. 착한 인간은 비록 어두운 충동 속에서도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이 작품은 둘의 내기가 누구의 승리로 끝날지 어느 정도 짐작이 된 상태에서 시작한다. 괴테가 새드 엔딩을 쓰진 않았을 것이라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궁금해진다. 정말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일까? 노력하지 않으면 방황하지도 않는다는 말인가.


주님 : 인간의 활동력은 너무 쉽사리 느슨해져, 무조건 쉬기를 좋아하니, 나 그에게 적당한 친구를 붙여주고자 함이라. 그를 자극하고 일깨우도록 악마의 역할을 다하거라. 그러나, 너희들 진정한 신의 아들들아,

주님 : 생생하고 풍요로운 아름다움을 향유하도록 하여라! 영원히 살아서 작용하는 생성의 힘이 사랑의 울타리로 너희를 둘러싸리니, 아물대는 자태로 흐느적거리던 것을 영원히 지속되는 생각들로 굳건히 하라.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중에서


사람은 태어나 자라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스무 살이 되어도 (나 스스로 만족할 만큼) 밥값을 하기까지 또 시간이 걸린다. 물론,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부모님께 의지하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20대에 <파우스트>를 읽을 때는, 어떻게 하면 악을 멀리하고 선을 가까이하며 살아갈지 고민스러웠다. 30대에는 조금씩 무거워지는 책임감의 무게를 느끼며 '올바른 인생이란, 무엇일까' 생각했다. 이제 40대를 넘어 50대를 바라보는 지금, 다시 읽는 <파우스트>에서는 '역할'이라는 키워드가 가슴을 두드린다. 신에게도, 악마에게도 '역할'이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각자 부여받은 역할을 성실히 해내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닐까.


그 역할을 다 해내기 전에는 이 삶을 끝낼 수도 없고, 끝내서도 곤란해지는 것이다. 살면서 힘든 순간마다 사람이든, 일이든 나를 괴롭히는 것은 그 존재에게도 분명한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면 견디기가 쉬워진다. 우리 는 마치 각자 다른 배역을 맡아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연기하는 연기자 그룹인 셈이다.


주님 : 그가 지금은 비록 혼미한 가운데 날 섬기고 있지만, 내 멀지 않아 그를 밝은 곳으로 인도할 것이니라. 정원사도 나무가 푸르러지면,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릴 것임을 알게 되는 법.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파우스트> 중에서


정원사에게는 꽃과 나무의 변화가 가장 큰 기준이 아닐까. 최적의 타이밍을 알아차리는 일은 하루아침에 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그날 하루치 업무가 말끔히 정리되지 않으면 퇴근해서도 그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는 나 같은 인간에게 '최적의 그때'라는 것은 언제 찾아오려나. 내 인생이 눈부시게 푸르렀던 때는 이미 지났을까. 아직 오지도 않았을까. 매일 불구덩이 여럿을 품에 안고 사는 것 같은 요즘, 나는 그 무엇도 믿을 수 없고 누군가에게 강한 믿음을 주거나 반대로 받고 있지도 못한다.


10대 사춘기 때보다 지금, 더 심한 열병을 앓고 있는 것 같다. 10대에는 어른이 되기만 하면 모든 문제와 고민이 사라질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지금은 노년의 삶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이 두렵고 절망적이다. 어느 정도의 생이 남아있을까. 남은 생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언제 멈추고, 언제 새로운 것을 또 시작하면 좋을지 갈팡질팡하고 있지만 <파우스트>를 읽으며 진정하려고 한다. 지금의 방황조차 살아있으니 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말을 사춘기가 아니라 갱년기가 시작되고서야 이해하기 시작했으니 다행이라고 해두자. 파우스트의 방황에도 끝이 있다. 나의 갱년기 방황에도 끝이 있을 것이라 믿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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