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인제에서 잘 지내세요? OO 이는 학교 잘 다니죠?
공기도 좋고 편안히 쉬고 계시겠다~ 너무 좋으시겠어요!
큰 아이 학원 선생님과 통화할 일이 있었다. 중1인 아이가 문해력 수업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다는 말만 들었는데 수업 스케줄과 학원비를 상의하러 선생님이 연락을 준 것이다. 선생님은 아이와 인제에서 지내고 있는 나를 부러워했다. 시골생활은 한가롭고 여유로울 줄 알았던 것은 선생님뿐만이 아니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고 믿었으니 말이다.
아홉 살 아이는 이곳 생활에 대만족이다. 아무리 뛰어도 뛰지 말라는 잔소리를 듣지 않는다. 공부하라는 소리도 들을 일이 없다. 학교 가기 전에도 놀고, 다녀와서도 논다. 비가 쏟아져야 집에 들어올 정도다. 학교에서는 또 어떤가. 한 학급에 단 여섯 명의 학생이 있으니 얼마나 오붓하고 친밀할까. 아이의 표정은 날이 갈수록 밝아진다. 그러다 오늘 거울 속 나의 초췌한 모습을 봤다. 피부도 상했고, 조금은 지친 듯한 얼굴이었다. 언제 주름이 이렇게 또 늘었을까. 잡티도 더 생긴 것 같았다. 확 늙어버린 얼굴에 놀랐다. 아이에게는 천국 같은 시골유학생활이 엄마에게 아직까지는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일상인 것일까.
이곳에 와서 늘어난 것은 피부 주름과 잡티만은 아니다. 운전 실력도 제법 늘었다. 매일 운전을 하는 덕분이다. 가구 조립도 혼자서 해낸다. 남편한테 많이 부탁하는 편이었는데, 여기서는 남편이 없으니 내가 해야 한다. 뭐든 스스로, 씩씩하게 해낼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요리와는 담을 쌓고 살았지만 여기서도 그럴 수는 없다. (그러다 아이가 굶는다.) 간단한 요리를 검색해서 도전한다. 맛은 없어도 이렇게 하다 보면 조금씩 늘겠지 희망은 생긴다. 빨래 건조기가 없는 곳에 사는 덕에 빨래를 하는 것도 신경 써서 한다. 아침에 세탁기를 돌려야 볕이 좋은 시간대에 널어 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번거롭긴 한데 익숙해지려고 한다. 돌이 겨보면 건조기가 없을 때에도 빨래는 부지런히 했으니까.
이러다 생활력 지수가 날로 높아질 것 같다. 부지런한 듯 보여도 손재주가 없어할 줄 아는 게 많지 않았던 나였다. 잘 못하면 아예 안 하려고 하는 습성 탓에 잘하는 것보다 잘하지 못하는 것들을 말하는 게 쉬웠다. 그런데 이젠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어디 내놓아도 생활력 있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아이의 시골생태유학 생활이 나를 성숙하게 만들고 있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다 있구나 싶어 웃음이 난다.
아이들에게만 '혼자서도 잘하라'라고 말할 게 아니었다. 이젠 나도 혼자서 잘해보겠다. 든든한 아홉 살짜리 파트너와 함께하는 강원도 인제살이가 즐거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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