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워킹맘 Aug 28. 2023

고양이털 알레르기 환자가 고양이와 함께 사는 법

이 집은 냇강이 부부가 지키고 있어요. 고양이 식구들이 자주 드나들 거예요.



강원도 인제로 이사오기 전, 알레르기 검사를 다시 받았다. 시골집으로 이사 오면 꽃가루가 집먼지 진드기 외에도 알지 못하는 나무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이 생기지 않을까 염려가 되어서였다. 하루 24시간 걱정만 하고 사는 사람처럼, 나는 걱정이 많기도 하다.

집 앞마당에서 낮잠을 즐기고 있는 고양이 '마을이'


검사 결과는 몇 년 전과 달라져있었다. 없었던 고양이털 알레르기가 생긴 것이었다. 이런, 조심할 것이 또 하나 늘었다며 투덜댔다. 그러다 강원도 인제로 이사 온 첫날, 깨달았다. 이 집의 원래 주인은 고양이네 식구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걱정하지 않는 것은 걱정할 가치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아무리 걱정해 봤자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중에서


한옥형태의 황토집은 고양이들의 천국이었다. 고양이들은 각자 자기 자리가 있는 듯 돌아다녔다. 고양이부부와 새끼고양이 두 마리. 이렇게 네 식구였다. 고양이들은 수시로 울어댔고, 먹을 것을 갈구하는 눈빛을 보냈다. 처음엔 집 마루에 러그를 깔아 뒀지만, 고양이들의 잠자리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치웠다. 거짓말처럼 나는 고양이털에 알레르기 반응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눈이 붓고 빨갛게 변하다 가렵기 시작했다. 고양이들의 흔적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치명적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고양이들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정말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 먹이를 주고 싶어도 참았다. (미안해, 고양이들아.)


그러다 오랜만에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었다. 고양이가 주인공인 소설이니 고양이들의 마음을 좀 알고 싶었다. 고양이를 좋아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았던 나인데, 알레르기라는 벽이 우리 사이를 가로막기 시작했으니까.


고양이는 차라리 단순하다.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화날 때는 열심히 화내고, 울 때는 이보다 더 슬픈 일이 없다는 듯 운다. 우선 일기 따위 쓸데없는 것은 절대 쓰지 않는다.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아저씨처럼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은 일기라도 써서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자기의 참모습을 암실 내에서 발산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나, 우리 고양이족은 사사로운 일상생활 그 자체가 거짓 없는 일기이니 달리 귀찮은 수고를 하며 자기의 참모습을 보존할 이유가 없다. 일기를 쓸 틈이 있으면 마루에서 자는 게 훨씬 낫다. -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중에서


문득 '차라리 단순하다'는 고양이처럼 살고 싶어졌다. 고양이들이 집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면 '제발 가줘'라며 소리치는 내가 한심해 보였다. 나는 한없이 복잡한 인간인 반면, 고양이들은 모든 것이 단순하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스트레스라는 건 1도 모를 것 같은 고양이 식구들을 2주간 지켜보며 알았다. 이 집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이 고양이들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진리를 깨닫게 된다. 진리를 깨닫는 것은 좋으나, 나날이 위험한 일이 닥쳐와 매일 방심할 수 없게 된다. 교활해지는 것도 비굴해지는 것도, 표리부동한 호신복을 입는 것도 모두 진리를 알게 된 결과로써 진리를 아는 것은 나이를 먹은 죄다. 노인 중에 변변한 자가 없는 것은 이런 이치 때문인 것이다. -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중에서


내가 고양이털 알레르기 환자라는 사실을 변하지 않는다. 다행히 아홉 살 둘째 아이는 고양이를 만져도 문제없다. 조금만 더 단순하게 생각하련다. 아무리 걱정해 봤자 걱정이 사라지지는 않으니까. 뭐든 걱정하고 스트레스받을 시간에 이 고양이들처럼 순간순간 마음 가는 대로 지내고 싶다.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면 좋겠다. 고양이에게도 배울 것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다니. 시골 생활이 주는 선물인가 보다.

고양이 부부의 한가로운 풍경 (나도 이들처럼 멈춰 쉬고 싶다)





* 함께 읽어주시고 구독해 주세요.


일중독자 엄마의 육아휴직 일지


이전 06화 아이에게는 천국 같은 시골유학, 엄마에게는 어떨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