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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워킹맘 Aug 29. 2023

시골에서 살다 보니 맥시멀리스트가 되었습니다

언니네 집에는 없는 게 없어요.
저희 집에는 없는 게 더 많은데..
컵받침도 쓰세요?


나이테가 살아있는! 원목 티코스터. 인제로 이사오자마자 들여오다


도시에서는 나름 미니멀리스트라고 생각했다. 미니멀 라이프에 관심이 많았고, 가지고 있던 물건의 개수를 확 줄여보기도 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지만 미니멀 라이프도 가능하다고 믿었다. 되도록 마트에 가지 않고, 필요한 물건만 소량 사들이는 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시골로 오니 얘기가 달라졌다. 자꾸만 뭔가를 사들이고 있다. 특히, 도시의 아파트와는 어울리지 않는 물건들이 말이다.


인제읍 (나는 리 단위에서 산다)에서 장을 보다 나이테가 살아있는 원목 티코스터를 발견했다. 세상에, 마음에 쏙 들어 10개쯤 집어오고 싶었다. 평소 같으면 사지 않았을 물건이다. 이미 티코스터는 차고 넘치게 갖고 있었으니 말이다. 3개에 만원인 이 물건은 꼭 데려오고 싶었다. 한옥집에서 쓰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핑계까지 댔다.


함께 생태유학을 온 엄마들에게 이 티코스터를 보여줬다. 다들 예쁘다고 입을 모았다. 한 엄마는 어디서 살 수 있냐며 적극적으로 물어왔다. 뿌듯했다. 그러다 이런 말을 들었다. 이 집에는 없는 게 없다며 우리 중 가장 짐이 많은 집이란다. 다들 최소한의 물건만 가져와 살고 있던데, 나는 아니었다. 아파트에서 잘 쓰지 않았던 무용한 것들을 잔뜩 가져왔던 것이다. 작은 스탠드부터 꽃병, 티코스터에 캔들홀더까지. 엇, 나는 미니멀리스트가 아니구나. 이곳에서는 맥시멀리스트였구나!


매일 조명을 켜고, 원목 티코스터에 잔을 올려둔 채 멍 때리는 일상


이곳에서는 쿠x 로켓배송으로 물건을 사도 최소 사흘은 걸린다. 뭐든 쉽고 빨랐던 도시 생활과는 달라도 참 다르다. 놀랍게도 이 속도에 나를 맞춰가고 있다. 매끈한 것보다는 투박하고 소박한 물건들에 마음이 간다. 유리보다는 나무가 더 좋아진다. 밝은 LED 불빛보다는 따뜻한 전구빛에 더 마음이 놓이는 것과 흐름을 같이 한다. 시골 생활이라는 게 특별하지는 않다. 하지만, 평소라면 내가 선택하지 않았을 것들을 고르고 즐기게 한다. 매일 나는 나에게 놀란다. 미니멀리스트가 아니라는 사실도. 미니멀리스트가 아니어도 마음이 편하다는 사실에 더 놀란다.


언니네 집은 짐이 제일 많은데,
짐이 별로 없어 보이네요.
언니한테는 짐을 감추는 재주가 있나 봐요.


함께 이웃하며 사는 집 중 가장 짐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정리를 잘하고 사니 복잡해 보이지 않나 보다. 다행이다. '짐을 감추는 재주'라도 없었다면 짐을 이고 지고 살 뻔했다. 매일 정리하고, 청소하다 보니 내 마음도 간결해진다. 몸을 더 움직여야 하는 시골 생활이지만 나는 하루하루가 즐겁다. 당분만 맥시멀리스트로 살되, 적당한 선만 지키겠다. 나를 기쁘게 하는 물건들을 마음껏 쓸 수만 있다면 잠시 미니멀리스트를 포기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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