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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워킹맘 Sep 11. 2023

인제군민이 되어 백담사에 가다


천 봉우리 만 골짜기 그 너머로

한 조각 구름 밑 새가 돌아 오누나

올해는 이 절에서 지낸다지만

다음 해는 어느 산 향해 떠나 갈꺼나

바람 자니 솔 그림자 창에 어리고

향 스러져 스님의 방 하도 고요해

진작에 이 세상 다 끊어버리니

내 발자취 물과 구름 사이 남아 있으리


- 매월당 김시습 시 '저물무렵' 전문



벼르고 벼르던 백담사를 다녀왔다. 가보고 싶었지만, 인제군민이 되어서야 가니 감회가 새로웠다. 백담사 한쪽에 세워진 시비를 보니 김시습의 시 '저물무렵'이 새겨져 있었다. 어떻게 하면 나의 발자취를 물과 구름 사이에 남겨놓을 수 있을까.  

백담사는 내설악에 있는 대표적인 절로 가야동 계곡과 구곡담을 흘러온 맑은 물이 합쳐지는 백담계곡 위에 있어 내설악을 오르는 길잡이가 되고 있다. 신라제28대 진덕여왕 원년(647년)에 자장율사가 세웠는데 처음은 한계사라 불렸으나 그 후, 대청봉에서 절까지 웅덩이가 100개 있어 백담사라 이름 붙였다. 십여 차례 소실되었다가 6. 25동란 이후 1957년에 재건되어 현재에 이르는 등 역사적 곡절이 많은 절이다. - 출처 : korean.visitkorea.or.kr 
백담사 경내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다

아이가 하교하기 전, 집으로 돌아가야 하니 마음이 급했다. 점심을 먹다가 불현듯 백담사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느지막이 길을 나섰기 때문이다. 함께 길을 나선 이웃집 엄마 둘과 백담사로 가는 길이었으니 더 설렜다. 그렇게도 가보고 싶었던 백담사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여전히 날씨는 더웠지만 깊은 산속에 자리 잡은 백담사로 향하는 길은 서늘했다. 절경이 따로 없었다. 특히, 백담사 입구의 '수심교(修心橋)'를 걸을 땐 한 걸음 한 걸음 아껴가며 걸었다. 마음을 닦으며 걸어가야 하는 길이었으니까. 이 길 끝에 가서야 알았다. 이곳에는 한 번만 와서도 안되고 그럴 수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백담사로 가는 길 '수심교(修心橋)'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 만해 한용운, '나룻배와 행인'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백담사와도 어울리는 이 시 한 편에 마음이 가라앉는다. 자연을 벗 삼아 살다 보면 시심(詩心)이 깊어지는 것일까? 백담사로 잠시 외출 다녀온 듯 해 아쉬웠지만 여운은 길다. 백담사 가는 셔틀버스 요금을 할인받아서 괜히 우쭐하기도 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인제군민은 소인 요금으로 탑승 가능) 조만간 백담사를 다시 찾아 더 오래, 여유 있게 머물러야겠다. 이번엔 아이를 등교시키고 나서 바로 길을 나서련다. 백담사에 갈 수 있는 것도 인연이 닿아야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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