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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워킹맘 Sep 07. 2023

시골에 살며 피아노 학원을 다닙니다

나 피아노 학원 다닐 건데, 같이 다닐 사람 손!


아홉 살 아이와 강원도 인제로 생태유학을 온 지 한 달이 되어간다. 한 달이 일 년처럼 여겨질 정도로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지나간다. 일중독 워킹맘이었던 내가 이곳에 와서 새롭게 시작한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닌데, 그중 하나가 피아노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웃에 사는 아이 엄마는 나보다 세 살 위인 언니다. 나처럼 회사일에 치여 제대로 쉬지도 못하며 두 딸들을 키우던 엄마인데, 이곳에서 아이들을 피아노 학원에 보내고 본인도 다니겠다고 했다. 어렸을 적 피아노를 배우지 않았던 성인이 피아노 배우기에 도전한다니 멋졌다. 그 말에 나도 마음이 움직였다. 나도 다닐래요!


30년 전, 체르니 50번까지 치던 어린이가

지금은 다 손이 다 굳은 아이 엄마가 되다


초등학생이던 시절, 친정엄마가 유일하게 보내주신 학원은 피아노 학원이었다. 음악에 재능은 없었지만 피아노 학원에 가는 것 자체가 좋았다. 나는 성실한 학원생이었다. 안되면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연습하고 동그라미를 채워나갔다. 가끔 학원생들과 피아노 연주회에 가면 행복했다. 무대 위에 드레스를 입고 앉아 피아노를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들이 아름다워 보였으니까.


강원도 원통의 작은 피아노 학원에 들어서니 옛날 생각에 울컥했다. 작은 방에 업라이트 피아노가 있었고, 미리 연락받은 원장님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준비해 간 악보를 들고 인사드렸다.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 피아노를 좀 치셨으니 오늘은 손 좀 풀고 가세요!


이웃집 언니가 찍어준 피아노 연습 현장. 구부정한 자세에도 힘이 잔뜩 들어가 있다.


마음처럼 잘 움직여주지 않는 손가락에 힘을 빼야 하는 이유


손이 굳었으니 쉽게 처지지 않았다. 박자도 잘 맞지 않고, 손가락이 굳어 꼬이고 또 꼬였다. 잘 치려고 애쓰니 뒤죽박죽이 되었다. 마음처럼 잘 안 되는 게 조급 해서였을까. 분명 어렸을 땐 쉽게 쳤던 모차르트의 소나티네 곡들도 어렵게만 느껴졌다. 진땀이 났다. 흰건반과 검은건반의 경계에서 나는 헤매고 있었다.


손가락과 손목에 잔뜩 들어간 힘을 빼보았다. 깊은 호흡을 세 번 하고 살짝 웃었다. 칭찬받으려고 피아노를 치는 게 아니지 않나. 이제는 어렸을 때처럼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인정받기 위해 피아노를 할 필요가 없다. 그저 즐기면 된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난 후 마음 맞는 이들과 피아노 학원을 올 수 있다는 게 행운이니까.


그랬더니 손놀림이 부드러워졌다. 자연스럽진 않아도 피아노 건반에 몸을 맡길 수 있었다. 시골에 살면서 피아노 학원에 다니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다시 만난 하농, 그리고 모차르트


일주일에 세 번 정도 피아노 학원에 나가서 레슨을 받고 연습을 한다. 일정한 루틴이 있어야 안심이 되는 내게 이보다 더 환상적인 스케줄이 있으랴. 둥당 둥당 피아노 건반을 칠 때 스트레스가 풀리는 나라서 참 다행이다. 피아노 교재 '하농'으로 손가락 연습을 하고, 다시 쳐보고 싶었던 모차르트의 소나타를 연습하겠다. 이곳 엄마들과 함께 피아노 연주를 선보일 그날을 꿈꿔본다. 아이들은 시골 학교에 다니고, 엄마들은 함께 피아노를 연주하는 풍경. 생각만 해도 가슴 뛰고 드라마틱하다.


이렇게 하루하루 나의 시골생활은 다채로워진다. 이제 또 무엇에 도전해 볼까. 어린아이처럼 눈이 반짝거리는 나와 만날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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