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안에서 춤추던 나날들
네 살이 채 안 되었을 무렵이었다.
책을 펼치면 그림보다 먼저,
입에서 튀어나오는 소리에 마음이 먼저 반응했다.
우리말이랑은 조금 다른,
혀끝이 바쁘게 움직여야 나오는 낯선 발음들.
“The wheels on the bus go round and round…”
어딘가에서 흘러나온 그 노래를
입속에 넣고 굴리며 따라 했다.
자기 입에서도 그런 말이 나오는 게
신기하다고 웃었다.
단어가 아니라, 리듬을 따라 읽는 노래 같았다.
책보다 소리가 먼저 마음에 들어왔다.
말을 따라 읽던 입은 어느 날부터
노래를 흥얼거렸고,
노래는 곧 춤으로 이어졌다.
책 속 리듬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고,
팔을 흔들며 방 안을 뱅글뱅글 돌았다.
춤이라고 하기엔 서툴고,
그냥 몸짓이라고 하기엔 넘치던 동작들.
아기 고양이처럼 기어다니다가,
곰처럼 벌떡 일어나 팔을 휘젓고,
책 속 인물처럼 흉내 내며 집안을 누볐다.
나는 웃었고, 박수를 쳤고,
가끔은 같이 따라 읽다가 목이 쉬었다.
그 시절,
그러니까 네 살에서 여섯 살까지 이어졌던
그 시간.
책은 그냥 책이 아니었다.
읽는다는 건 노래를 부르는 일이었고,
그림을 넘긴다는 건
몸으로 이야기를 표현하는 일이었다.
책장은 무대가 되었고,
거실은 극장이 되었고,
엄마와 아이는 함께 주인공이 되었다.
나는 그때, 그림책에 마음을 더 기울이려 애썼다.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라는 걸
어쩐지 본능처럼 알고 있었으니까.
혼자 읽을 줄 아는 아이가 되기 전,
‘같이’ 읽고, ‘같이’ 웃을 수 있는 시간은
너무도 짧고 아름다웠다.
밤이면 도서관 홈페이지를 들여다보고,
낮이면 서점의 신간 목록을 뒤졌다.
추천글을 읽다가도 결국 묻게 되는 건
이것뿐이었다.
“이 책, 같이 소리 내어 읽기 좋을까?”
“이 이야기, 웃으면서 들려줄 수 있을까?”
별점보단 내 감각을 믿었다.
줄거리보다 웃음이 먼저였고,
어휘력보다 표정이 더 중요했다.
나는 아이의 ‘읽기’를 가르치고 싶지 않았다.
그보다 먼저,
읽는 게 기쁨이었으면 했다.
말이 입에서 춤을 추고,
소리가 귀에 남아 노래가 되며,
책장을 넘기다 “엄마, 여기 또 읽자”
말하던 그 순간.
지금 생각해도,
그 모든 순간들이
읽기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삶의 가장 반짝이던 일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