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의 본질을 잃지 않기 위해 기억하고 싶은 것들
SR 테스트는 미국 르네상스라는 곳에서 만들어졌다.
지금도 전 세계 학교와 기관에서
이 테스트를 사용하고 있다.
아이들은 이 시험에서
34개의 문제를 풀게 된다.
정답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히 맞히는지에 따라
다음 문제가 달라진다.
더 쉽거나, 더 어려운 문제.
그날의 컨디션이 결과를 바꾸기도 한다.
모든 문제를 다 풀고 나면
점수는 GE, 그러니까 Grade Equivalent로 나온다.
미국식 학령 기준 점수다.
보통 우리는 이걸 그냥 SR 지수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5.0점대가 나오면
“우리 아이는 5학년 수준이구나”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렇진 않다.
그 숫자는
아이의 지문 이해력에 대한 하나의 지표일 뿐이고,
아이의 진짜 읽기 수준은
그보다 아래일 수도 있다.
그러니 점수만 믿고
너무 어려운 책을 안겨주진 않았으면 한다.
그 점수는, 아이를 가늠하기보단
책을 찾는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AR 지수도 있다.
ATOS Book Level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수치는
역시 르네상스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독서 난이도다.
책마다 1.0부터 12.0까지
어휘 난이도 기준으로 점수가 붙는다.
각 숫자는 한 학년을 의미하고,
그 안에서 다시 10단계로 나뉜다.
예를 들어 1.0은 1학년 초반,
1.9는 1학년 말 수준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책에 AR 2.0이라고 쓰여 있다면
그건 2학년 아이가 막 읽기 시작할 수 있는 책이라는 뜻이다.
르네상스 러닝 홈페이지에 가면
AR 지수 외에도 IL 지수라는 게 있다.
책이 어떤 연령대에 적합한지를
조금 더 정확하게 알려주는 기준이다.
IL 지수는
Lower Grade, Middle Grade처럼 나뉘어 있다.
그래서 초등 저학년이라면
책 표지에 LG라고 적힌 책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
수치보다 중요한 건
그 책이 지금 내 아이에게 맞는지,
그 책을 아이가 어디까지 따라갈 수 있는지다.
지표는 늘 우리를 숫자로 설명하려 하지만,
나는 그 숫자 앞에서
늘 아이의 얼굴을 먼저 떠올린다.
지수가 아니라, 그 책을 읽는 아이의 표정.
그게 독서의 출발이어야 하지 않을까.
점수는 참고용이고,
나머지는 우리 손끝의 감각으로 채워야 할 몫이다.
읽기 능력은 문해력과 다르다.
문해력은 속독의 속도가 아니라
머무는 시간의 깊이다.
진짜 문해력은
문장을 유창하게 넘기는 능력이 아니라,
그 문장을 통해
사고가 확장되는 경험이다.
생각이 자라는 읽기.
그게 문해력이어야 한다.
요즘은 문해력이라는 이름 아래
읽기 속도와 레벨 상승에 매몰되는 풍경을 자주 본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어려운 책을 읽는 아이를
‘잘하는 아이’로 착각하는 분위기.
그 경쟁의 어디쯤에서
독서는
속도전이 되었다.
책을 많이, 빨리, 틀리지 않고 푸는 능력이
독서력처럼 불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진짜 독서력이 아니다.
그건 리딩 스킬일 뿐이다.
속도에 몰입하면
책은 '경쟁의 무기'가 되고,
레벨은 '자존심의 줄자'가 된다.
그렇게 되면
아이의 인지 발달 단계를 뛰어넘는 책을
억지로 읽히게 된다.
책의 내용이 아니라
부모의 기대와 경쟁만 남는다.
나는 불안했다.
그 조급함이
아이의 삶을 고단하게 만들진 않을까,
책을 멀어지게 하진 않을까.
SR Test도, AR 북퀴즈도 그랬다.
책을 읽고 난 뒤, 아이가 정말 이해했는지를
결국 '점수'로 확인해야만
안심이 되는 마음들이 모여 만든 시스템이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관리라 불렀고,
누군가는 습관이라 불렀다.
나는...
그저 그 흐름에 조용히 휩쓸렸다.
퍼플아카데미를 하며
2년 동안 매달 아이에게 SR 테스트를 치르게 했다.
그게 정해진 거였으니까.
나는 그저, 따라갔다.
아이도, 나도 묵묵히 치렀다.
하지만 그 시험이
잘 치를수록 더 어려워지는 구조라는 걸 깨달았을 때,
작은 균열이 일었다.
욕심 많은 아이는
스스로를 채찍질했고,
나는 그 아이를 보며
이게 정말 괜찮은 건지
자꾸 마음이 서늘해졌다.
AR 북퀴즈는 정독 여부를 확인하는 용도라고 했지만
우리는 어느새 정답률에 목을 매고 있었다.
책은 '읽는' 것이 아니라
'맞히는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책의 재미보다,
점수가 먼저인 날들이 쌓였다.
SR 점수 0.5 오르고 내리는 일로
기뻐하거나, 속상해하거나,
아이도, 부모도 함께 출렁이는 걸 자주 보았다.
어느 순간,
학원은 이 점수를 홍보 문구로 사용했고
부모는 그것에 열광했다.
하지만 나는 생각했다.
“정말 이게 중요한 걸까?”
SR 점수는 입시에 쓰이지도 않고,
영어 실력을 정확하게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아이의 하루는
그 점수 앞에서 기울고 있었다.
물론 2.0점 전후까지는
대략적인 독해 수준을 가늠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SR 테스트 점수를 올리는 법도 있다.
처음 세 문제를 틀리지 않아야 점수가 안정적이고,
10번까지 운 좋게 맞히면
점수는 뛴다.
하지만 그게 실력이던가.
문제는 어휘와 독해 중심이다.
GE 7점대가 넘으면
수능보다 어려운 단어들이 등장한다.
그 단어들을 아이는 다 알지 못했다.
접두사, 접미사를 활용해
in-, ir-, il-, dis- 같은 단어의 조각들을 붙들고
그 뜻을 유추해냈다.
운이 좋으면 맞혔고,
때로는 감각으로 찍었다.
말하자면,
그건 실력이라기보다
경험과 감에 가까웠다.
그래서 점수를
마냥 신뢰할 수는 없었다.
읽기 능력은 문해력과 다르다.
문해력은 속독의 속도가 아니라
머무는 시간의 깊이다.
많이 읽는다고
잘 읽는 게 아니고,
빨리 읽는다고
느낀 게 많은 것도 아니다.
북퀴즈 정답률이라는 이름 아래
2만, 3만 워드카운트 책을
시계 재며 읽는 부모들도 봤다.
정해진 시간 안에 책을 끝내고
퀴즈를 풀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아이는,
정말로 그 책을 읽은 걸까?
나는 생각한다.
그 아이는
커서도 책을 좋아하게 될까?
책 두께를 자랑하고 싶었던 부모,
점수를 먼저 확인했던 어른들.
그 속에서
책은 여전히
좋은 친구일 수 있을까?
지금 아이가 무슨 책을 좋아하는지,
어떤 책은 끝까지 읽지 못했는지,
그 책에서 어떤 문장을 기억하는지.
그걸 아는 것이,
SR 점수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 아닐까.
책은 배움의 도구이기 전에,
느낌의 씨앗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이제 안다.
책이란,
“읽히는 것”보다
“함께 머무는 것”이어야 한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