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식탁 한켠에서 문장을 적는다.
저녁을 치우다 만 그릇 옆에,
아이 책 한 권이 포개져 있고
그 위에선 오늘의 생각이
식지 않은 채 기다리고 있다.
왜 이렇게까지 영어에 힘을 쏟고 있을까.
스스로에게 수없이 묻는다.
남들도 하니까, 경쟁력이니까, 시험에 필요하니까—
그런 말들은
아무리 곱씹어도
내 마음의 결을 따라오지 못했다.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영어는 단지 하나의 언어를
더 익히는 일이 아니라고.
그건 세계를 해석하는 관점을
하나 더 갖는 일이었고,
세상을 읽는 새로운 창을 여는 일이었다.
지금 이 세상을 움직이는 건
과학기술이다.
그리고 그 기술의 97%는
영어로 쓰인다.
어떤 책에서 읽었다.
앞으로 200년 동안, 영어를 대체할 언어는
없을 거라고.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영어는 지금,
이 세계가 대화하고 연결되는 방식이라 생각했다.
어떤 언어를 안다는 건,
그 언어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다는 뜻이다.
정보가 넘치고, 그만큼 편향도 많아진 시대에
아이에게 하나 더 주고 싶은 건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힘이었다.
요즘은 ChatGPT, Gemini, Perplexity로
질문만 하면 척척 번역하고 글을 써주는 세상이다.
누군가는 그게 편리하고,
또 누군가는 무섭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번역보다 더 중요한 건
AI에게 ‘명령할 줄 아는 능력’이라는 걸.
무엇을 묻고,
어떻게 연결하며,
어떤 언어로 다시 말할 수 있는가—
그건 단지 기능이 아니라
사고력과 언어력이 엮여 만들어지는 힘이다.
‘배운다’고 생기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읽고, 묻고, 연결하고,
다시 말하는 과정에서만 자라날 수 있는 힘이다.
그건 결국 ‘쓰기’의 힘이었다.
나는 영어를 공부라고 부르지 않았다.
아이가 처음 영어책을 펼쳤을 때,
나도 아이 옆에 앉아 페이지를 넘겼다.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고,
상황극처럼 웃으며 말놀이를 했던 날들.
그건 문제집이 알려주지 않는 영어였고,
정답이 정해지지 않은 문장이었다.
영어는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아낸 시간’이었다.
하루 한 문장을 적고,
그림책의 한 장면에서 감정을 읽고,
노래의 리듬에 몸을 맡기던 순간들—
그 시간은 아이만 자란 게 아니라,
나도 자란 시간이었다.
우리의 영어 루틴은
단순하다.
정답도 없고, 특별한 기술도 없다.
다만 매일
좋은 책을 고르고,
좋은 영상을 보고,
좋은 문장과 표정을 따라 읽는다.
질문이 생기고,
감정이 따라오고,
때로는 웃음이 터지는 그런 콘텐츠들.
이제 아이는 스스로 책을 고른다.
그리고 종종 나에게 말한다.
“엄마, 이 책 좋아.
엄마도 읽어봐.”
그 말 한마디에
모든 이유가 담겨 있었다.
결국 영어는 우리 집에서
함께 축적한 작은 계절들이었다.
그 시간 속에서
아이는 자랐고
나도 조금 더 깊어졌다.
수능 1등급을 위한 공부가 아니었다.
세상을 내 언어로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길.
생각을 말로 풀고,
글로 쓸 수 있는 힘.
그리고 그 힘을 길러가는
인풋 중심의 루틴.
그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오래가는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누구나 쉽게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세상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같은 것을 배우고,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며
하나의 정답을 고르던 시대는
이제 천천히,
저물고 있는 중이다.
그보다는 ‘나다움’을 찾고,
나만의 관점과 생각을 말하는 힘이
더 중요한 시대.
그런 힘은 갑자기 자라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많이 보고,
듣고,
느끼고,
표현하는 훈련이
켜켜이 쌓여야 한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문제를 맞히는 기술만으로는 부족하다.
결국 중요한 건,
내 생각을 말로 풀어내고,
글로 표현할 수 있는 힘이라고 믿는다.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창의적으로 사고하며,
결국 세상에 유용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
교육이 지향해야 할 방향도,
그쪽을 향하고 있지 않을까.
고교학점제, 논서술형 수능, 수행평가.
이 모든 변화 역시
그 흐름 속에서 등장한 길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영어교육도 이제는
듣고, 읽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말하고, 쓰는 영역까지
고르게 다뤄야
진짜 힘이 된다.
그래서 나는,
영어도 글쓰기가 중요하다고 느낀다.
수능 1등급이라는 목표보다,
영어를 하나의 도구처럼 다룰 줄 아는 사람.
다양한 관점을 품고,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는 사람.
내 아이가 그런 방향으로
자라났으면 하는 바람.
아니, 다짐에 가까운 바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