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에서 8살 사이의 계절이었다.
짧고 반복적인 문장들을 따라가며
아이는 책장을 스스로 넘길 수 있게 되었다.
그림책으로 익힌 이야기의 흐름은
이제 단락이 나뉘고, 글밥이 늘어난 책에서도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우리는 아이의 정서에 닿는 이야기들을 골랐다.
또래 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소재를 바탕으로,
영어 실력을 조금씩 건드려주는 책들을
조심스레, 그러나 열정적으로 들이부었다.
가볍게 훑어보는 다독과
한 권을 천천히 파고드는 정독을
일상의 리듬처럼 섞어가며.
어느 날은 책 속 장면을 따라 그려보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모르는 단어의 뜻을
직접 손으로 그려가며 익혔다.
영문 정의와 예문을 써보는 일도
학습이라기보다는 작은 놀이 같았다.
연필을 쥐는 손에 힘이 생기고,
무언가를 스스로 적어보고 싶어 하는 욕구가
배움보다 먼저였던 시절.
그래서 그 모든 독후활동은
놀이의 탈을 쓴, 즐거운 공부였다.
그 무렵 우리는 퍼플아카데미를 병행했다.
책을 다 읽은 뒤에는 AR 퀴즈로
‘정독했는지’ 스스로 확인하는 습관을 들였다.
AR 퀴즈는 책의 순서와 문장이 그대로 나와
충실히 읽은 아이에겐 하나의 작은 보상처럼 느껴졌다.
반면 LitPro의 퀴즈는
표현이 패러프레이징되어 사고력을 요했고
아이는 이 시기엔 아직 준비가 덜 되어 있었다.
그래서 잠시 미뤄두었다.
음독과 청독을 병행하던 시기.
아이는 목소리를 바꿔가며
등장인물 하나하나에게 생기를 불어넣었다.
시리즈 책들을 이어 읽으며
한글책의 글밥과 비슷한 정도의 난이기로
영어책과도 친구가 되어갔다.
이 모든 시간은
특별할 것 없이 조용했지만,
돌이켜보면
가장 단단하게 자라고 있던 순간들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아이는 문장을 따라가며
줄거리의 흐름을 이해했고,
그 이야기를 자기 말로 영어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시작, 중간, 끝.
이야기의 구조를 따라가면서도
때론 주인공의 눈, 혹은 친구의 마음으로
다른 방향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건 아마,
그동안 쌓아온 한글책 독서가
단단한 밑거름이 되어준 덕분이었다.
영어로 생각하고 말하는 힘은
그렇게 한 줄 한 줄 자라났다.
쓰는 것도 조금씩 시도했다.
글밥 많은 한글책을 따라 읽다 보니
영어책 속 텍스트만 있는 면들도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아이의 리딩레벨과 정서 수준을 유심히
보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같은 학년이라도
책 속의 '1학년'과 '4학년'은 전혀 달랐고,
아이들의 언어는 물론, 사고방식,
학교에서 부딪히는 경험들이
다르게 묘사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챕터북을 고를 때
단순히 글밥이나 AR지수보다
아이의 정서 수준에 더 귀를 기울였다.
아이가 좋아하는 장르도 다양했다.
일상, 어드벤처, 미스터리, 판타지.
딱히 취향이 정해져 있진 않았지만
그건 오히려 더 좋은 일이었다.
넓은 세계를 탐험하듯
다양한 책들을 골고루 경험할 수 있었으니까.
책을 고를 때는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되
추천도서나 권장도서도
곁눈질로 흘려보이게끔 했다.
어쩌면 슬쩍 끼워 넣은 전략이었는지도 모른다.
신기하게도
아이 스스로 고른 책은
리딩레벨이 조금 높아도, 글밥이 많아도
더 잘 읽어내려갔다.
좋은 책이어도 아이가 싫어하면
어쩔 수 없다는 것도 배웠다.
그럴 땐 ‘왜 싫은지’를 물어보는 게 먼저였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언어는 재능인가, 시기가 중요한가.
물론 어느 정도는 모두 맞다.
하지만 엄마표 영어를 직접 해보니
가장 중요했던 건 '꾸준함'이었다.
육아도, 교육도
결국은 긴 거리의 달리기.
중요한 건
누가 먼저 빨리 뛰느냐가 아니라
누가 끝까지 달릴 수 있느냐는 것.
영어도 마찬가지였다.
하루하루,
조금씩이라도
멈추지 않고 해내는 것.
대부분의 아이는
혼자 꾸준히 하지 않는다.
엄마의 관심, 함께 하는 시간이
여전히 필요하다.
머리가 좋아도, 언어능력이 뛰어나도
꾸준히 하지 않으면 소용없고,
머리가 둔하더라도
성실함이 뒷받침된다면
그건 결국 어떤 재능보다도 멀리 데려다준다.
가늘고 길게.
매일 꾸준히.
작심삼일이라도 괜찮다.
다시 또 시작하면 된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