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은
무언가를 새로 시작한다기보다
익숙한 것을 이어가는 일이었다.
입학 전부터 매일 책을 읽어오던 아이는
학교에 들어가서도 그 습관을 놓지 않았다.
하루에 두 권, 빠지지 않고 읽었다.
워드카운트는 처음엔 4천에서 시작해 7천을 지나,
1만까지 올랐고 짧은 책들은
하루 두 권씩 소화해 냈다.
아이의 취향과 수준을 곱씹으며, 책을 골랐다.
잠수네. 미국 초등 교사 추천 리스트.
서점보다 도서관에 더 자주 들렀다.
책장을 넘기며,
이 책이 우리 아이에게 웃음을 줄 수 있을까,
아니면 내일 아침 눈을 더 반짝이게 할까.
그런 마음으로.
책장을 고르는 일은 아이의 마음을
읽는 일이기도 했다.
눈빛을 살피고, 한 번 더 펼쳐보며,
이 책이라면 읽힐까,
아니, 읽히기를 기다려줄 수 있을까.
어떤 날은 원서를 읽고,
화상 영어 선생님과 마주 앉았다.
줄거리를 말하고, 인물의 마음을 짚어보았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다음엔 어떤 일이 생길 것 같은지.
쓰기도 했다. 말을 정리하고,
마음을 문장으로 꺼내는 법을 조금씩 익혔다.
단어 하나가 생각이 되고, 문장이 되고,
자신의 말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아이보다도 내게 더 감동이었다.
영상물도 꾸준히 틀었다.
『아서』, 『호리드 헨리』, 『제로니모 스틸턴』.
어떤 건 DVD가 닳도록 보기도 했고,
어떤 건 한 번만 봤다.
듣기 따로, 집중 듣기 따로.
그런 건 우리 집에 없었다.
우린 그냥 재미있게 보았다.
들리게 하기보다 좋아하게 하자는 게
내 방식이었다.
모국어처럼, 눈을 감고 있어도
익숙한 말들이 마음에 남을 수 있도록.
학원은 피아노, 수영, 줄넘기 정도였다.
예체능은 몸을 위한 시간.
마음과 언어는 책에서 길렀다.
연산도 매일 했지만,
하루의 80퍼센트는 독서였다.
영어 실력은 요령으로 쌓이지 않는다.
매일 두 시간씩 읽었다.
그렇게 읽고 또 읽다 보니,
1년이 지나고 나니,
700권이 넘는 책이 남았다.
종이 냄새, 책장 넘기는 소리,
무릎 위에 쌓인 이야기들.
그게 우리 집의 공부였다.
책을 놓치고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이는 아직 책을 좋아했다.
유튜브를 몰랐고, 스마트폰은 관심 밖이었다.
엄마 아빠와 전화할 때 쓰는 거라고,
자기 번호도 모른 채 쥐어졌던
그 폰은 지금도 별자리 앱이나 단어사전,
셀카 꾸미기 외엔 쓰이지 않는다.
다른 게 더 재밌는 줄 알기에.
아이 어릴 때는 엄마표 영어를 하며
관심사가 비슷한 엄마들과 모임도 있었다.
처음엔 다 함께 으쌰으쌰 하며
서로의 노하우를 나누었다.
아이 연령도 비슷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를 비교하거나,
우리 아이에 대해 시기와
질투가 생기는 일이 반복되었고,
관계는 점차 멀어졌다.
조바심과 비교는 엄마표 영어에서 가장 큰 적이다.
경쟁심과 화가 많은 엄마는,
차라리 학원을 보내는 게 낫다.
나처럼 혼자여도 괜찮다. 내 아이만 보면 된다.
같이 가는 것처럼 보여도,
아이와 엄마는 각자의 길을 걷는다.
서로의 속도를 이해하는 게 엄마표의 첫걸음이다.
초등 2학년이 되자, 아이가 말했다.
"친구랑 선생님이랑 영어로 말하고 싶어."
그래서 TED 디베이트 수업,
원서를 읽고 토론하고 쓰기까지
함께하는 학원을 찾았다.
아이의 영어는 이미 내 수준을 넘어 있었고,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하지만 학원을 보낸다고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아이가 흔들리지 않도록 습관을 점검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일은 여전히 내 몫이었다.
또래의 영향력이 커지는 시기.
영어로 즐겁게 말할 수 있는 친구들을 만나며,
스피킹과 라이팅 실력은 눈에 띄게 성장했다.
엄마표 영어는 학원의 반대말이 아니다.
아이가 영어에 자연스럽게 노출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는 일.
그것이 엄마표다.
사교육은 양날의 검이지만,
잘 다루면 훌륭한 도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