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이 끝나갈 무렵,
아이는 더는 책을 읽는 게 일이 아니었다.
챕터북을 들면 끝까지 가는 데 망설임이 없었고,
읽지 않는 날엔 어딘가 마음이 허전하다며
스스로 책을 펼쳤다.
매일의 루틴이란 게 한 번 몸에 스며들고 나면,
안 하면 어딘가 마음이 불편해지는 법이다.
이제는 내가 권하지 않아도, 아이는 스스로 읽었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 모든 시간 뒤에는
하루하루 아이를 바라보며 쌓은
관찰과 수고가 있었다.
무슨 책을 좋아하는지, 어떤 감정에 오래 머무는지,
무심한 듯 흘려보내는 장면은 어떤 부분이었는지
나는 늘 조용히 기록하듯 살폈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오고,
없는 책은 그때마다 기꺼이 구입해주었다.
챕터북은 시리즈가 많아서
취향만 찾아내면 이후는 수월했다.
같은 리딩레벨이지만 1만 5천 단어가 넘는
긴 호흡의 책도 시도했고,
워드카운트는 짧지만 인물이 많고
구조가 복잡한 추리 형식의 책도 함께 읽어보았다.
플롯이 좀 더 복잡하거나,
이름과 관계가 얽힌 이야기도
아이는 하나하나 따라가며 즐거워했다.
한글책으로는 삼국지며 그리스로마 신화를
통째로 외울 정도였으니,
등장인물이 많은 책도
전혀 부담스러워하지 않았다.
어쩌면, 재미는 복잡함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슬며시, 노블의 문을 열어주었다.
너무 어렵지 않되,
아이 정서에 맞는 작품들부터 천천히.
로알드 달을 좋아했다.
마틸다와 찰리와 초콜릿 공장 같은 책은
작가 특유의 유머와 풍자,
어른들의 위선을 꼬집는 날카로운
시선이 녹아 있어
아이의 감수성과 묘하게 닿아 있었다.
3학년이 되자 뉴베리 수상작들도
조금씩 시도해보았다.
이야기의 깊이도, 문장의 결도 가볍지 않았지만
인권과 종교, 문화와 역사 같은 배경을
자신만의 속도로 조용히 따라갔다.
때로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기도 했고,
때로는 짧게, 감상을 흘리듯 말하곤 했다.
“엄마, 챕터북은 문장이 좀 유치할 때도 있어.
교과서처럼 딱딱하고 가볍게 느껴져.
근데 뉴베리는 문장이 예뻐. 뭔가 문학 같아.”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웃었다.
‘됐다’고,
그 문장 하나로 모든 과정이 설명되는 것 같았다.
내용만 읽는 것이 아니라,
문장의 온도를 느끼고 있다는 건
영어가 이제 ‘언어’가 아니라
‘감각’이 되었다는 뜻이니까.
나는 교육과 양육을 따로 떼어 생각하지 않는다.
영어교육도 그렇다.
무언가를 빠르게 끝내려는 마음보다는
지루하고 느린 과정을 버티고 지나야 하는 일.
아이는 언제나 자신의 속도로 가고 있다.
조급한 엄마의 마음이 그것을 재촉하면,
아이도 마음이 다친다.
엄마가 해야 할 일은
아이의 속도에 맞춰 함께 걷는 일.
그리고 좋은 것을 좋아할 수 있게,
더 나아가 사랑하게 만들 수 있도록
곁을 지키는 일.
남들이 추천한 책 말고,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책을 찾고
아이의 취향을 알아가며 매일 공부하는 일.
내가 생각하는 엄마표 영어는,
점수도, 레벨도 아니다.
그 이름 안에 숨은 건,
결국 사랑이었다.
아이의 영어 뇌를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이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세계를 그리는지
매일 매일 곁에서 공부하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일.
영어는 그 옆에 따라오는 것일 뿐.
결국은,
이 아이가 나를 키웠다.
오늘도 그렇게, 우리는 함께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