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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책으로 시작된 문해력, 영어는 그 옆에 있었다

책육아 10년, 엄마표 영어 7년의 시간들

by 겨울

책육아 10년 차, 엄마표 영어 7년 차.

이 브런치북은 아이와 책 사이에 머문

시간의 기록이다.

하루 한 권의 리듬,

한 장 한 장 넘긴 페이지마다 깃든 눈빛과 숨결,

그리고 그 속에서 자라난 마음과 말의 기억.




앞에서 이야기했듯

우리는 모국어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36개월 즈음부터 영어 노출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때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우리의 책육아 중심엔 언제나 한글책이 있었다.

영어책을 읽혔지만 영어책을 중심에 두지 않았다.

파닉스나 리더스북보다 한글 그림책 한 권을

천천히 여러 번 읽는 쪽을 더 소중히 여겼다.

아이가 모국어로 이야기를 깊이 느끼고

이해하는 시간은, 감정과 생각이 자라는

가장 자연스러운 시작이라고 믿었기에.



모국어가 먼저 자라난 공간에서 영어를 곁들이다

우리가 영어책을 접한 시기는 특별히 빠른 것도,

그렇다고 늦은 것도 아니었다.

그 시작이 영어를 '공부'로 받아들이는

접근이 아니라,

좋은 음악을 들려주듯,

익숙한 리듬으로 그림책을

함께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만 3세, 아이가 모국어로 자유롭게

말문을 트기 시작하던 무렵,

영어는 자연스럽게 우리 일상에 곁들여졌다.

노부영, 잉글리시에그, 월드패밀리잉글리시 같은

콘텐츠들을 노래하고 따라 하며

듣고 말하는 놀이처럼 반복했다.

그 시절, 아이에게 가까이 다가간 책은

영어책도 있었지만,

내가 더 자주 펼쳐주고,

더 오래 함께한 건 한글책이었다.

영어는 우리 집에서 ‘하나의 언어’였을 뿐,

중심이 되지는 않았다.

말과 생각을 한글로 온전히 표현할 수 있게 된 뒤,

영어 문장을 소리 내어 따라 읽고

그림책을 넘기는 과정은

말보다 먼저 ‘이야기의 리듬’을 몸으로 익히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한글책은 여전히 우리 집의 중심이었다

아이가 처음으로 문장을 말하기 시작한 것도,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것도,

상황을 이해하고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한 것도

전부 한글책과 함께였다.

나는 아이가 책을 읽는 시간에는

그 어떤 언어적 ‘성과’도 기대하지 않았다.

다만 그 시간을 통해

마음이 자라고, 생각이 자라고,

세상을 이해하는 눈이 조금씩 열리기를 바랐다.

그림책으로 상상력을 쌓고 이야기 구조를 익히고

지식책으로 호기심을 채우고,

개념을 접하고, 정보의 구조와 글의 무게를 배웠다.

영어책은 옆에 있었지만,

아이의 뿌리는 언제나 한글책 속에 있었다.


읽기 루틴의 시작, 그리고 자연스러운 확장

하루 한 권.

이 단순한 루틴이

우리 집 책육아의 시작이자 중심이었다.

하루 한 권의 힘은 ‘양’보다 ‘계속’에 있었다.

무리하지 않고, 아이의 리듬을 존중하면서

읽고 싶은 책을 같이 읽는 것.

한글책과 영어책을 함께 펼치되,

비율은 언제나 한글책 쪽이 많았다.

어떤 날은 전부 한글책만 읽기도 했고,

어떤 날은 영어책을 함께 번갈아가며 읽었다.

읽기의 기준은 ‘언어’가 아니라

아이의 감정이 얼마나 그 책에 반응하는가였다.

읽으며 웃고, 질문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붙이기 시작하면

그 책은 우리에게 ‘진정한 한 권’이었다.



아이의 문해력은 모국어에서 자랐다

한글책을 꾸준히 읽은 시간은

아이의 말하기, 쓰기, 요약, 추론,

비판적 사고를 전부 떠받쳤다.

한글책을 깊이 있게 읽는 경험은

그대로 영어책을 이해하는 힘으로 옮겨갔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도 확신한다.

영어 리딩이 가능한 아이는,

반드시 모국어의 힘을 바탕에 둔 아이다.

문장 구조, 어휘 이해, 상황 추론, 이야기 흐름 파악.

이 모든 건 한글책에서 반복적으로 경험한 일이다.

영어책은 단지

‘또 다른 언어의 세계’를 보여준 것뿐이다.



학원과 병행하는 지금, 중심은 여전히 집의 루틴

초등 3학년이 된 지금,

아이는 영어학원에서 리딩, 논픽션, 라이팅 수업을

병행하고 있다.

미국 교과서를 활용한 수업을 듣고,

TED-Ed나 Achieve3000을 통해

비판적 사고를 기르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토론에도 참여한다.

그러나 그 모든 학습의 이해와 말하기의 바탕엔

여전히 모국어로 쌓인 독서력이 존재한다.

나는 학원이 아이를 끌고 가지 않게 하려고 애쓴다.

학원이 놓친 것을 집에서 메우는 것이 아니라,

집에서 쌓은 힘이 학원 수업을

지지하게 하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한글책을 먼저 펼친다.

영어책은 늘 그 곁에 두고,

아이가 편안한 장소에 손 닿게 둔다.



책이 먼저 길을 만들었다

우리는 언제나 책 옆에 있었다.

책장을 덮은 뒤,

“엄마, 왜 저 아이가 울었다고 생각해?”라고

묻던 아이.

나는 그 질문 하나로,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그냥 흘러만

가지 않았음을 느꼈다.

책은 단순히 문장을 따라가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함께 걸어가는 시간이었다.

우리가 읽었던 수많은 이야기들,

모험과 친구와 갈등과 화해는

그냥 활자 속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아이의 삶 안으로 스며들었고,

아이의 언어와 생각,

그리고 감정으로 자리 잡았다.




두 언어로 넓어진 마음과 생각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책은

한글책에서도, 영어책에서도 자주 나타났다.

“이거 너무 슬퍼.” “이 사람, 왜 이렇게 말해?”

“나는 저런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할까?”

그런 말들은 종종 책을 덮은 후

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그 대상이 한글책일 때도 있었고,

영어책일 때도 있었다.

두 언어의 책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아이의 감정을 흔들고,

문장의 리듬과 이야기 구조를 익히는 데

도움을 줬다.

한글책이 아이의 안쪽을 넓히고,

영어책이 그 바깥을 보여주었다면,

그 둘은 함께 아이의 세계를 확장시켜 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둘을 비교하지 않았다.

두 언어의 책은 나란히, 함께 가야 했다.


함께 읽는 순간이 남긴 것들

예전엔 고양이와 강아지가 주인공이던

그림책이 전부였지만,

이제는 사람의 삶과 사회,

역사와 과학이 담긴 책들을 이야기한다.

아이는 여전히 책을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그 곁에서,

책을 매개로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날은 말없이, 어떤 날은 오래 머무르며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만든다.

그 중심엔 언제나,

단단하고 따뜻한 그림책이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책이 아니라,

그 책을 함께 읽는 순간이라는 걸

아이를 키우면서 매일 조금씩 배웠다.


책장을 넘기는 손끝의 따뜻함,

눈으로 따라가는 글자 속 숨결,

읽고 나서 아이 얼굴에 머무는 작은 표정들.


그림책은 단지 이야기를 전하는 게 아니었다.

감성을 깨우고,

상상력을 키우고,

공감능력을 넓히고,

무언가 말로 할 수 없는 힘을 길러주었다.


나는 그런 그림책을

아이에게 읽어줄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었고

참, 좋았다.




브런치북을 쓰는 이유

이 브런치북은 나의 성장 기록이기도 하다.

엄마가 되어 아이와 함께 책을 읽으며,

나도 함께 자랐다.

책육아란 아이에게 책만 읽어주며

키우는 일이 아니었다.

책을 읽는 아이를 곁에서 지켜보며,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이기도 했다.

책장을 넘기는 아이 옆에서,

때로는 불안했고,

때로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헤맸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읽은 책들의 일지를

써 내려갈수록 나는 다시 마음의 중심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 글을 보는 당신에게

혹시 지금 엄마표 영어든 뭐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려고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늦지 않았다.

중요한 건 ‘오늘’ 함께 책을 펼쳤다는 사실이다.

읽은 만큼 자라는 게 아니다.

느낀 만큼, 머문 만큼,

서로의 시간을 들인 만큼 아이는 자란다.

그래서 나는 그 모든 순간을,

지나간 하루의 숨결처럼,

이곳에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담아두고 싶다.

책으로 연결된 아이와 부모의 시간,

그 소중한 기록을 오늘도 차곡차곡 담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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