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 줍기 찬스
지인이 당근 추수를 했다고 한다. 이삭 줍기 해도 되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그러라고 했다. 작아도 맛있다고 했다. 상품이 안 되는 작거나 못생긴 것들은 밭에 버려둔다(채소도 외모지상주의?). 밭갈이하면 갈려서 거름이 된다. 요즘은 당근영농조합에서 이삭 줍기도 못하게 한다고 했다. 파지를 가져가게 하면 당근 살사람이 안 사게 된다는 논리다. 틀린 말은 아니나 이삭 주워 식량 삼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을 텐데(당근밭을 수없이 지나다녔으나 당근 이삭 줍는 사람을 본 적 없다.- 허락 없이 남의 밭에 들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 각박해진 인심 같아 아쉽다. 제주살이 이십 년이 넘는 동안 당근 이삭 줍기는 십여 년 전에 한 번 하고 이번이 두 번째이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눈치가 보인다. 쫌 망설여진다. 그가 허락하는데 영 편치 않은 이 느낌은 심연에 숨어 있던 알토란 같은 자존심? "그 말을 듣고도 그지가 되고 싶냐?" 가까이 맴돌던 데빌이 교활한 송곳니로 물어뜯는다. 어제까지 잠잠하던 바람이 미친 듯이 분다. 오후에는 눈 소식도 있다.
핑곗거리는 충분하다.
그래서...
그가 트랙터로 갈아 버리기 전,
후다닥 준비하고 달려갔다.
가자
밭으로!
홍당무가 기다린다.
존심? 그딴 거 버린 지 오래다(어젠가?)
덕분에 짝꿍 얼굴에 미소가 피는데 뭘 가릴까.
오해는 마시라
늘 그런 사람 아니니
아주 희귀하게 투척하는 행동이다.
웬일로,
사람 변하는 거 아니라는데
변하면 뭐가 있다는데
없다.
그런 거
당근이 버려지는 게 안타까워서
한두 시간 노동에 즐거워질 그릇에
생각 없이 몸을 쓰기로 했다.
얼굴도 홍당무가 된다.
좋아요?
당근 e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