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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헤어지며 가다

Part3-그저 주어진 길을 가다 서다

by 고율리

나는 사람을 오래 품는 편이다. 한 번 인연을 맺으면 쉽게 잊지 못한다. 좋은 기억이든, 상처였든, 마음 한켠에 고이 접어두고 오래 바라본다. 그래서일까. 헤어짐이 유난히 오래 아프다. 누군가와 가까워진다는 건 내 마음의 문을 여는 일이고, 그만큼의 믿음을 건네는 일이기에. 속도를 맞추고, 말투를 조율하고, 감정을 나누다가도 어긋나는 순간이 오면, 조심스레 쌓아 올린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그러나 삶은 그런 인연들로 이루어져 있다. 스쳐가는 사람, 옆자리에 오래 앉아주는 사람, 아무 말 없이 떠나는 사람, 시간이 흘러 다시 돌아오는 사람.

KakaoTalk_20250610_153519697.jpg 고슴도치 룰루 / 그림 고율리

길을 잃은 듯한 어느 날이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격증 과정을 시작했고, 그곳에서 기린을 만났다. 나는 고슴도치를 닮았고, 친구는 기린을 닮았다.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싶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가시를 세우곤 했다. 그런 나에게 친구는 조용히 다가와, 고개를 기꺼이 숙이고 내 눈높이에 맞춰 바라봐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십 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함께하며, 기대도 그만큼 자라났고, 기대가 채워지지 않는 자리에 서운함이 들어왔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거리를 조율했다. 너무 가까워 아프지 않게, 너무 멀어 낯설지 않게. 서로를 덜 상하게 하기 위해 묵묵히 물러서면서도, 마음을 완전히 거두지는 않았다.


모든 인연을 끝까지 끌어안을 수는 없다. 어떤 인연은 그냥 지나가게 두어야 하고, 어떤 인연은 멀리서 조용히 그리워하는 것으로도 충분할 때가 있다는 걸, 이제는 알게 되었다. 중요한 건 언제나 내 중심이 단단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야 스쳐가는 인연에게도 따뜻함을 건넬 수 있고, 오래 곁에 머문 인연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며, 때로는 다치고, 때로는 웃는다. 그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를 지나며, 인생이라는 길을 나는 오늘도 천천히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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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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