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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렇게, 가다 서다

Part3-그저 주어진 길을 가다 서다

by 고율리

작년 12월부터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그림들에 조심스레 글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연재가 어느덧 29회 차다. 처음엔 욕심이 앞섰다. 일주일에 세 번씩만 올리면 금방 한 권의 브런치북이 완성될 것 같았고, 그렇게 해야만 뭔가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불안과 조급함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결국 ‘주 1회라도 꾸준히 올리자’는 다짐으로 방향을 바꿨다. 욕심보다는 지속 가능함이 나를 더 멀리 데려다줄 수 있다는 걸, 매주 이 연재를 통해 조금씩 깨닫고 있다.


글을 쓴다는 건 결국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매주 그림 한 장에 어울리는 문장을 찾아내며 내 마음을 다시 살핀다. 어떤 생각으로 하루를 버텼는지, 무엇에 기대어 마음을 붙들었는지, 문장을 통해 알게 된다. 살아가는 일은 생각보다 자주 멈춘다. 기대했던 일이 어그러지기도 하고, 관계가 삐걱거리기도 하고, 계획이 수시로 틀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멈추는 삶이 실패한 삶일까? 아니라고,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삶도 충분히 괜찮다고 조용히 다독인다.


KakaoTalk_20250617_164605910.jpg 고슴도치 룰루 / 그림 고율리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다. 가는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하면서, 때로는 멈춰 서기도 하고, 걸음을 늦추기도 하면서. 느리더라도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살아가고 싶다. 그러다 우연히 마주치는 따뜻한 인연들과 웃을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그건 정말 감사한 일일 것이다. 늘 세상이 나를 어떻게 볼까 긴장하며 살았다. 혹시 우습게 보일까 움츠리고, 다치지 않으려고 마음에 가시를 세우고 방어하며 지냈다. 그게 나를 지키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런 날들을 조금씩 내려놓고 싶다. 좀 더 부드럽게,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포용하며 사는 삶이 결국은 나를 덜 외롭게 해 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며칠 전, 책을 읽다 이런 문장을 만났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불평을 늘어놓는 건가요?” 나는 그 문장을 조용히 종이에 옮겨 적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이렇게 적었다. “욕심 때문에.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서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질문은 이랬다. “그렇다면, 불평하는 것이 옳은가요?” 나는 ‘아니요. 옳지 않습니다.’라고 써 내려갔다. 그 두 문장을 마주하고 나니, 마치 빙글빙글 돌고 돌아 다시 원점에 도착한 기분이었다. 결국, 삶을 수용하고,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돌아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것만이 마음의 평화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라는 걸 또 한 번 깨닫게 된 것이다.


오늘도 그렇게 한 걸음을 내딛는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마음으로, 여전히 불안하지만 조금 더 단단한 마음으로.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때론 멈추고, 때론 돌아서며, 나만의 속도로 걷고 있다. 또 이렇게, 가다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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