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근거 없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샀던 엔화, 이 엔화와 관련된 뉴스가 10월 초부터여기저기서 흘러나왔고이 뉴스가 기회가 찾아왔음을 알려주게 됩니다.
이렇게 2008년 10월 초에 엔화 관련 뉴스가 나온 이유는 조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2008년 9월 15일.
사진=비즈니스인사이더
15년이 지났지만 세계경제사에 있어서는 너무나 유명한 사건인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이렇게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이 있고 한 달이 조금 안될 무렵부터 엔화가 오르기 시작했고 이와 관련된 뉴스가 연일 보도 되었습니다.
엔화는 파죽지세로 100엔당 1500원대까지 치솟았고, 저는 '조금 더 오를 거야. 1600원이 되면 팔자.'라며 욕심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1600원을 넘기지 못하고 엔화가격은 점점 떨어졌기에, 그저객기로 언제 올지도 몰랐던 다음 기회를 무작정 기다리기로했습니다.
다행히 기회가 찾아오기까지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같은 해 11월 말 즈음에 엔은 다시금 100엔당1600원을 돌파했고 저는가지고 있던 엔화를 전부 원화로 환전을 했습니다. 이때 제가 가지고 있던 엔화는 처음 원화를엔화로 환전했을 때 보다 더 늘어나 있었습니다.
이유는 바로, 통역비를 원화가 아니라 엔화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통역을 했던 시기는 100엔당 약 1000원 정도로 계산하기가 쉬웠고, 통역을 의뢰했던 일본의 병원 측에서는 한국원화를 굳이 환전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엔화로 수령하는 것은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왔었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거절을 하면 다음에는 연락이 오지 않을 것 같았기에 '어차피 돈은 돈이다.'라는 생각으로 승낙을 했던 것이 행운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이때 통역아르바이트를 했던 인연으로 일본병원으로의취업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이날 약 1년 만에 돈이 2배가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2배로 불어난 원화는 예금을 했습니다. 당시에 은행은 역대급 저금리라는 말도 나왔지만, 은행 외의 다른 투자처도 투자방법도 잘 몰랐기 때문에 당장적은 이자라도 주는 곳이라고는 은행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도졸업을 할 때까지 통역과 번역, 아르바이트로 엔화도 원화도벌며, 앞으로의 투자 계획도 세웠었습니다.
그 계획이란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다시금 엔저가 찾아온다면 가지고 있는 원화를 엔으로, 엔고가 된다면 월급으로 받은 엔은 원으로 하는 단순한 환테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