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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사카에서 파이어족이 되다.

(04) 한국에서 시작한 투자 03

저는 지난번에 이야기에 언급했던 선택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였습니다.


"엔화가 오르면 환율차익을 남길 수 있다. 만약 엔화가 더 약세로 이어진다고 해도 나름 저렴한 가격대에 손에 넣은 엔화였고, 엔화는 어디까지나 현금으로서 사용이 가능하고 일본에서 사용이 가능하니까 괜찮은 투자다."

많은 엔화를 환전하고도 생애 첫 해외여행이자, 군대에서 일본어를 독학하며 학수고대했던 일본여행이었음에도 가능한 절약을 했습니다. 우선은 비행기가 아니라 부산항에서 오사카항을 왕복하는 크루즈선을 타고 갔습니다. LCC가 없던 시절이었기에 오사카여행은 비행기보다 크루즈선이 압도적으로 저렴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편도 16시간이라는 시간은 너무나 긴 시간이지만, 당시의 저는 배를 탄다는 것 자체가 즐거웠고 과정 자체가 여행의 일부였습니다.


배는 8인실이었으나 배정된 방도 운이 좋았습니다. 오사카에 거주 중인 친누나를 만나기 위해 배를 타신 60대의 아버지와 30대의 아들, 김해에서 자동차부품공장을 경영하시던 40대 사장님 부부, 저 이렇게 5명이 같은 방을 쓰게 되었습니다. 다들 좋은 분들이셨고 배에서의 2박은 술과 음식이 오고 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여행일정의 하나가 되어있었습니다. 특히 40대 사장님 부부는 일본에서의 3일 동안 이자카야를 갈 때마다 항상 저를 불러주셔서 나름 즐거운 여행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는 스마트폰 시대가 아니라 디지털카메라의 시대였기에 지금처럼 사진을 관리가 쉽지 않았던 탓에... 아쉽게도 당시의 사진파일들 아있지 않다는 것이 조금 아쉬울 때도 있습니다. 당시의 사진 일부를 올렸던 네이버 블로그를 초기화했던 것까지 후회하게 되네요... 정말 '남는 건 사진뿐이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첫 해외여행이자 여러 의미도 있는 여행이었기에 17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생애  해외여행이자 첫 일본여행을 통해 저는 유학을 준비할 필요는 없다고 느꼈습니다. 간사이지방의 사투리가 아닌 일본의 표준어는 많이 알아들을 수 있었고, 독학으로 공부한 어눌한 일본어였지만, 생각보다 저의 일본어도 통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군대에서 쉬는 시간에 티브이나 보면서 허송세월을 보내지 않고 일본어를 공부한 보람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리고 일본유학 대신에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본 취업을 도전해 보자.'


일본취업목표로 대학교에 복학을 하여 3학년을 맞이했습니다. 공대에서 일본어 학과로 전과를 할까도 고민했지만, 교양 학점등은 전부 일본어 학과의 수업으로 채우는 모험을 행했습니다. 학비도 학기당 100만 원 정도 차이가 났음에도 전과를 하지 않은 이유는 일본어학과를 나와 일본어를 잘하는 것은 다들 당연하게 보겠지만, 공학도가 일본어를 잘한다면 재미있는 이력이 되지 않을까 하여 결정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리고 복학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일본어 통역의 기회가 찾아왔었는데, 이 기회가 저의 첫 직장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 인생에 있어 진짜 기회는 2008년 10월경에 찾아오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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