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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사카에서 파이어족이 되다.

(05) 한국에서 시작한 투자 04

초심자의 행운(beginner's luck)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아무런 근거 없이 싸다는 이유만으로 샀던 엔화, 이 엔화와 관련된 뉴스가 10월 초부터 여기저기서 흘러나왔고 이 뉴스가 기회가 찾아왔음을 알려주게 됩니다.


이렇게 2008년 10월 초에 엔화 관련 뉴스가 나온 이유는 조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2008년 9월 15일.

사진=비즈니스인사이더

15년이 지났지만 세계경제사에 있어서는 너무나 유명한 사건인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이렇게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이 있고 한 달이 조금 안될 무렵부터 엔화가 오르기 시작했고 이와 관련된 뉴스가 연일 보도 되었습니다.


엔화는 파죽지세로 100엔당 1500원대까지 치솟았고, 저는 '조금 더 오를 거야. 1600원이 되면 팔자.'라며 욕심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1600원을 넘기지 못하고 엔화가격은 점점 떨어졌기에, 그저 기로  언제 올지도 몰랐던 다음 기회를 무작정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다행히 기회가 찾아오기까지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같은 해 11월 말 즈음에 엔은 다시금 100엔당 1600원을 돌파했고 저는 가지고 있던 엔화를 전부 원화로 환전을 했습니다. 이때 제가 가지고 있던 엔화는 처음 원화를 엔화로 환전했을 때 보다 더 늘어나 있었습니다.


이유는 바로, 통역비를 원화가 아니라 엔화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통역을 했던 시기는 100엔당 약 1000원 정도로 계산하기가 쉬웠고, 통역을 의뢰했던 일본의 병원 측에서는 한국원화를 굳이 환전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엔화로 수령하는 것은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왔었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거절을 하면 다음에는 연락이 오지 않을 것 같았기에 '어차피 돈은 돈이다.'라는 생각으로 승낙을 했던 것이 행운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이때 통역아르바이트를 했던 인연으로 일본 병원으로의 취업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이날 약 1년 만에 돈이 2배가 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2배로 불어난 원화는 예금을 했습니다. 당시에 은행은 역대급 저금리라는 말도 나왔지만, 은행 외의 다른 투자처도 투자방법도 잘 몰랐기 때문에 당장 적은 이자라도 주는 곳이라고는 은행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도 졸업을 할 때까지 통역과 번역, 아르바이트로 엔화도 원화도 벌며, 앞으로의 투자 계획도 세웠었습니다.


그 계획이란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다시금 엔저가 찾아온다면 가지고 있는 원화를 엔으로, 엔고가 된다면 월급으로 받은 엔은 원으로 하는 단순한 환테크였습니다.


그런데 행복회로를 돌리던 환테크 꿈나무에게 뜻밖의 복병이 숨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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