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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의향기 Nov 15. 2024

 수고했어, 오늘도

now or never

차 안에 울리는 라디오의 어느 사연.


"아이가 오늘 수능을 보는데요, 아침에 준비를 마치고 나가려다가 멈추더니 현관 앞에서 쭈뼛쭈뼛 하더라구요. 뭘 놓고 나와서 저러나 싶었는데 갑자기 제 쪽으로 돌아서서는 엄마 감사합니다.. 이러면서 꽉 안아주는 거예요. 어찌나 울컥하던지"




같은 수험생을 둔 부모라서일까.

꾸역꾸역 느리게 넘어가는 달래내 고갯길을 지나는데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진다.

어허. 이 녀석 잘 컸네, 잘 컸어.

뉘 댁 아들인지 듣는 내가 다 흐뭇하다.

우리 집 수험생은 말이지, 별다른 표현도 없이

서둘러 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졌거든.


모름지기 남의 집 자식과의 비교는 "금기사항"이지만

오늘만은 나도 어쩔 수가 없구나ㅋ









하루 전 공개된 시험장소는 아내가 근무 중인 회사와 가까운 C고등학교였다. 지리감이 익숙한 곳이었고 특별히 복잡하다거나 교통 체증을 염려할 만큼의 동네는 아니니까 일단은 안심이다.

무작위로 배정하는 방식 상, 제법 먼 학교로 가야 하는 불상사도 있다고 들었는데 다행히 그런 운 나쁜 케이스는 피했구나 싶었다.

조금 일찍 집에서 출발한다면 여러 사정을 감안해서 최대한 조신하게 밟고 간다고 해도 넉넉히 20분 정도면 도착할 거리였다.



그런데 막상 수험표를 교부받고 해당 학교를 미리 갔다 와 본 아이는 도보-전철-도보.. 의 경로로 혼자 다녀오겠다고 알려왔다. 오며가며 이미 꼼꼼하게 동선까지 확인한 모양이다. 그래도 명색이 수능인데 시험장 앞까지 동행하고 교문 너머로 들어가는 모습을 두 눈으로 봐야 마음이 놓일 것도 같았지만 아이의 의사가 그렇다면 굳이 반대할 일도 아니었다.

덕분에 며칠 전부터 오분대기조의 심정으로 수험생 수송작전에 대비해 온 나는 갑자기 할 일이 없어졌다.



차로 가는 게 편하지 않겠어?

... 전철 타도 충분할 거 같아

시간도 더 걸릴 텐데?

... 뭐 어차피 널널해

친구들이랑 같이 가게?

... 아니, 혼자


 


그리고 대망의 시험 당일.

6시에 맞춘 알람과 함께 일어나 씻고 느긋하게 핸드폰을 보며 밥을 먹는 것까진 평소와 비슷했으나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면서부터 아이의 얼굴에 긴장과 예민함이 부쩍 비치기 시작했다.

하기야 인생 첫 거사를 앞두고 내내 평상심을 유지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거였다.



시험장으로 가는 동안 방해받지 않고 자신만의 웜업을 한다던가 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한 나와는 다르게 아내는 아직 교통편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었다. 한달이 넘도록 수험생을 위한 최적의 메뉴를 고민하던 그녀는 일찌감치 완성한 도시락을 식탁 위에 놓아두기 무섭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지도 어플을 열었다 닫았다 했다.



아빠 차 타고 가. 전철로는 지금 오십몇분 걸린대.

...(손을 휘휘 내저으며) 아 됐다고.



이런 날의 헤어짐은 짧을수록 좋다.

하지만 밋밋하게 그냥 보내기도 어딘가 섭섭한 노릇이라 오늘따라 거북이 등짝처럼 보이는 까만 백팩을 메고 집을 나서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크게 한마디 외쳤다.




빠이팅 !













아이는 시험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돌아왔다.

모두 다 쏟아부은 듯 지쳐서 얼른 쉬고 싶은 생각밖에 없다고 했다.

좋아라 하는 고깃집 외식으로 꼬드겨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합류한 아내가 퇴근길에 포장해 온 치킨을 사이에 두고 세 식구가 모여 앉았다.

시험은 어땠는지, 잘 봤는지.. 같은 질문은 다음으로 미뤄두고

우선은 아이의 두툼한 등짝을 몇번 두드려줬다.



수고 많았어, 아들.

…어. 아빠랑 엄마도 수고했어. 고마워.



무뚝뚝하고 표현에 인색한 녀석의 입에서 고맙다는 말이 나오자

나는 오전에 들었던 라디오 속 사연을 생각해 냈다.

고생한 엄마를 힘껏 안아주고

시험장으로 향했다는 사연 속의 그 소년,

모쪼록 합격의 기쁨이 가득하길.


굿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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