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빛의향기 Aug 27. 2024

헤어짐에도 예의는 있는 법

엄마의 탈출기


#1


아마도 어느 해 여름의 중간쯤으로 기억한다.

전화를 받자마자 엄마의 낮고 지친 목소리가

흐느적 새어 나왔다.



OO아 , 아빠가 또 때린다




휴가를 맞아 장남네 식구들은 그 전날 캠핑을 떠났다고 하고

집 안에는 부모님들만 남아 있었다고 했다.

나는 핸드폰과 지갑만 챙겨서 그대로 택시를 잡아타고 20분쯤 걸리는 그곳으로 갔다.


아버지는 내가 도착했을 때까지도

무언가 분이 풀리지 않은 것처럼

거실 소파에 앉아 굳은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고

잠옷 차림의 엄마는 그제야 방에서 나와 내 옆에 섰다.


사실 무슨 이유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알 필요도 없고 궁금하지도 않다.

다만 이 익숙한 상황으로 내 휴식이 방해받았음에 입 맛이 쓸 뿐이었다.



"아버지 아직도 이러세요?"



오히려 차분히 내리 깐 내 말투가 화를 더 돋웠을까

아버지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지며 어깨가 들썩거리는 게 보였다.



"그래요, 차라리 날 때려. 엄마한테 그러지 말고"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버지는

돌아 선 내 등짝을 향해 두어 차례 주먹질을 날렸다.

그러나 당신의 힘 빠지고 늙은 주먹은

예전만큼 매섭지 않았다.



pexels.com  





"엄마 옷 갈아입고 나와. 우리 집으로 가"



햇살이 무심히도 눈부시게

집 안으로 새어들고 있었다.




그 일이 있고 난 이후로 집을 나가겠다는 엄마의 의지는 보다 더 확고해진 듯했다.

수시로 나를 붙잡고 하던 하소연의 간격이

갈수록 짧아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눈치를 살피던 아내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오빠. 어머니 말야, 이번 주말에 집 나오신대.

원룸 같은데 계약하셨대나 봐"



그 당시 나는 엄마의 바람을 익히 들어 알고 있으면서도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조금 더 기다려보고 상황을 개선해 보자는 투로 달래곤 했었는데

엄마는 결국 참지 못하고 실행에 나선 거였다.



하지만 부동산 계약만 확정되었을 뿐

그 밖의 어떠한 준비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로

며느리를 통해 흘리 듯 통보만 한 셈이어서

이후의 뒷일은 온전히 내 몫으로 남겨진 거나 다름없었다.



싫은 기색 없이 웬만하면 다 받아들여서일까.

언젠가부터 엄마는

장남이나 누나들에게는 일절 얘기도 없이

이런 식으로 본인의 원하는 바를 나와 내 아내에게 미루어 해결해 주길 기대하거나

요구하는 것을 매우 당연시 여기고 있었다.



어쨌거나 숟가락부터 새로 장만해야 할 만큼 대책 없는 엄마의 탈출을 앞두고

나는 우선 근처의 용달 업체를 수소문해서

이삿날 일정에 맞출 수 있도록 급하게 알아보았고

작은 트럭 한 대를 겨우 수배할 수 있었다.




#2


일요일 오전이었다.


침대를 싣고 갈 게 아니었다면

굳이 용달차를 부르지 않았어도 될 만큼

엄마의 이삿짐은 단출했다.

퀭한 얼굴로 나를 맞이한 엄마는

이른 아침부터 떠날 준비를 시작한 모양이었는지

이미 웬만한 짐들은 쇼핑백괴 가방 등에 나뉘어

방문 앞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이윽고 차량이 도착하고

현관을 오가며 본격적인 이사가 시작되었으나

거실에 앉아 티비를 보던 아버지도

안방으로 들어가 버린 장남과 조카들도

주방에서 제 할 일에만 집중하던 형수도

그러니까 집 안의 어느 누구도

엄마의 이사에 대해 아무런 말도 걸어오지 않았다


덩달아 투명인간처럼 되어버린 나는

짐 정리가 끝나는 대로 짜장면을 시켜 먹을까

아니면 밖에 나가서 다른 걸 먹을까

몇 가지 메뉴들을 떠올리며 천천히 짐을 옮겼다.


나중에 건너 건너 전해 들은 얘기로는

엄마의 돌발적인 이사에 화가 난 장남뿐 아니라

마찬가지로 서운함을 느낀 형수까지

일부로 모른 척 시선을 피했다고 했다.


"상의"없이 "통보"를 택한 엄마의 방식에

나 또한 동의할 생각은 없지만

그렇게까지 대놓고 외면해야 할 일이었는지

이 글을 쓰는 지금 돌이켜봐도 조금은 의아스럽다.

하지만 그게 다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그날을 보냈고

또 그렇게 기억할 뿐이니까.


한 가지 부언하자면

장남 네는 결혼 후 총 4명의 아이를 낳아 키웠는데

당시 살림과 미술학원 일을 병행하던 형수의 빈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는

여지없이 엄마의 손과 노동이 필요한 처지였다.


요컨대 엄마가 그 집을 나오리라 결심한 데에는

아버지와의 불화뿐이 아니라

더는 힘들어서,

장남의 아이들을 돌봐주지 못하겠다는 이유도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었던 거였다.






 

이전 01화 어떤 가계도(家系圖)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