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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빛의향기 Aug 30. 2024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

익숙한 균열

 

 자발적 독거노인의 삶을 선택한 엄마의 원룸 생활은 우려했던 것보다 빠르게 안정을 찾아갔다.


일상에 필요한 기본적인 물품들이야 그때그때 온라인 쇼핑몰이나 다이소 같은 생활용품점을 이용해서 채워가면 될 일이었고 무엇보다 증오스러운 남편과 더는 한 집에서 얼굴 맞댈 일이 없다는 사실이 엄마의 표정을

그전보다 훨씬 더 가볍게 만들어 갔다.

더구나 아픈 손목의 통증을 참아가며 돌봐야 하는 어린 손자들도 이곳엔 없었다.


그렇지만 엄마의 만족과는 별개로

가까이 사는 내가 챙기고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예전보다 더 늘어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쩌면 당신의 안녕을 위해 내가 지불해야 하는

기회비용과도 같았다.


실제로 아내와 나는 밑반찬이나 기타 음식들을

수시로 엄마의 냉장고 안에 채워 넣는 것부터 해서

이런저런 사소한 일들까지 도맡아 해결해야 하는

경우들이 부쩍 많아졌다.


편견일 테지만, 동네 자체가 원룸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보니

오가는 사람들의 면면들이 마냥 온순해 보이지만은 않았던 것도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었다.


별 수 없이 나는 가능한 자주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적어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그 방을 찾아 엄마를 살폈다.


그렇게 이러저러한 일상들이 하나둘 쌓여 갈 무렵

동네 병원을 다녀온 엄마로부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소식이 전해졌다.





무슨 조직검사를 했다는데
병원에서 보호자를 데려오랜다




… 보호자요?


그러고 보니 엄마의 보호자는 이제 누굴까 .




병원에서 마주한 의사는 두꺼운 안경을 쓴 채 뭔가 좀 곤란한 듯 찡그리며 한동안 모니터를 주시하다가 

엄마의 위에서 떼 낸 조직 일부에서 암세포가 확인됐다고 말했다.

다행히 조기에 발견한 케이스이므로

큰 병원으로 가서 치료방법을 모색해 본다면

예후가 나쁠 것 같지는 않다고도 덧붙였다.



나는 일단 아내와 두 누나들에게 엄마의 발병 사실을 알렸고 둘째 누나가 형수에게 전화를 넣어 장남 집에도 자초지종을 전달했다.





마음의 소리까지 들리는 청진기는 없나요?            (pexels.com)





그 후로 엄마는 다행히 별도의 항암치료 없이

위의 70% 정도를 절제하는 것만으로 당장의 치료를 마쳤는데

그 수술과 회복을 위한 7일간의 입원 기간 동안

아버지는 물론이고 장남과 형수까지

아무도 엄마를 보러 병원에  찾아오지 않았다.

마치 엄마가 그들의 집에서 벗어나던 그날처럼

우리는 또 각각의 공간과 동선에 머무르며

서로를 외면하고 있었다.

그들이 함께 사는 동네에서 엄마가 입원한 분당의 서울대병원은 차로 이동해 봐야 3,40분이면 족히 닿을 거리인데도 그랬다.


물론 알고 있다. 물리적 거리나 오가는 시간 따위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수술을 마치고 하루이틀쯤 지났을 때

병상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온 형수는 난처하고도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한참 동안 경과를 물어왔고

병원에 오지 못 한 이유에 대해 대충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아버지랑 안 산다고 집을 나가서
아범이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아요


병원 진단이 나왔을 때도 자기에게 직접 연락하지 않고
저를 통해 알려서 또 화가 났나 봐요


그래서 병원에도 안 가 본다고 하고
저나 애들도 못 가게 하네요



오래전부터 익히 알고 있던 장남의 행태로 보아 그리 놀랍거나 새삼스럽게 화가 날만 한 내용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런 말같지 않은 사정을 해명처럼 변명처럼

시어머니한테 전해야 했던 형수의 처지만 딱했다.









엄마의 입원과 수술 일자가 다가오자

그 기간 동안 간병을 누가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두 누나들 사이에 우물쭈물 눈치를 주고받는 게 느껴졌다.


누구 하나 나서서 혼자 하기 어렵다면

가족들끼리 일정을 나누어 분담하거나

수술 직후에 간병인을 쓴다거나

뭐 그런 생산적인 의논이라도 해 봤으면 좋으련만

그 와중에도 각자의 이해관계에만 골몰하는 모습이 더는 보고 싶지 않아서

내가 휴가를 쓰고 입원부터 퇴원까지 엄마 옆에 계속 있는걸로 서둘러 상황을 정리했다.





……

사무실에서 우선 처리해야 할 일들을 뒤적이고 있을 때

내 휴가에 대해 대강의 사정을 전해 들은 후배가 근심 어린 조언 몇 가지를 건네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 친구는 몇 년 전, 암으로 배우자를 잃은 아픔이 있었다.


" 근데 그걸 왜 혼자 다 해?

  형제 없어? … 외아들이야? "



그래, 차라리 외아들이었음 속이라도 편하겠다.


돌아서는데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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