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환자들은 병동에 적응하고 나면 퇴원을 거부하기도 하고, 실제로 퇴원했던 환자가 며칠 만에 다시 돌아온 사례를 본 터라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우리에겐 해당사항이 없었다. 아이는 뺏겼던 자유와 익숙한 자신의 공간을 다시 찾는다는 안도감과 의사와 함께 입원 내내 준비한 마음매뉴얼을 장착하고 적극적으로 짐을 쌌다.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나는 그 마음과 의지와 컨디션이 부디 지속되기를 바라면서…
입원기간 동안 스치며 동병상련의 마음을 함께 했던 사람들과도 감정이 함축된 인사말에 다시 만나지 말자고 말을 더했다. 마음도 눈가도 촉촉했다.
모두 세상이 무섭지만, 사람이, 마음이 고픈 사람들. 상처받지 않고, 상처 내지 않고 지내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퇴원 직전 외박을 통해 일상의 감각을 느껴보고 퇴원을 해서인지 아이는 집에서의 적응을 빨리 마쳤다.
퇴원초기에는 병원에서의 스케줄을 그대로 적용해서 생활을 유지했다. 물론 얼마 가지는 못했지만, 아이도 나도 적당한 긴장감의 끈은 놓지 않았다. 2주에 한 번씩 외래 진료를 보며 아이의 컨디션을 점검하고 약을 처방받아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집을 비운 한 달의 시간 동안 남편과 둘째도 다른 일상을 살았다.
우리 가족들은 서로에게 힘을 주기 위해 마음을 다했고, 걱정을 끼치기 않게 노력했던 것 같다.
남편과 필요한 물품을 전달하러 첫 주말에 병원을 방문했던 둘째는 이후엔 헤어지는 게 너무 힘들다고 병원에 오지 않겠다고 얘기했고,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통화는 가능한 자제 했다.
참고 참다가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울먹울먹 전화를 하곤 했는데, 병동에 들어오면 통화가 어렵기 때문에 그나마도 쉽지 않아 몇 번 못했다.
천상 막내였던 둘째는 입원 기간 동안 스스로 일어나고 아빠와 아침도 차리고 집안일도 도와주며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체험했다. 그것도 퇴원 후에 원상 복귀되었지만, 역시 아이는 아이다운게 더 좋은 것을 깨달았다.
남편도 중요한 타이밍의 일을 포기하고 가족을 챙겼다.
앞으로도 가족이라는 존재감을 이렇게 현실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을까…
예상치 못한 일상의 변화는 우리를 힘들게도 하지만 평소엔 알 수 없는 것, 느낄 수 없는 것들을 찾아주기도 한다.
왜 내게,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라며 한탄과 부정적인 감정을 키우던 나는 아이와 입원을 하면서 나와 아이, 그리고 많은 것들에 대해 시간을 들여 돌아볼 수 있었다.
너무 적막해서 강제로 마음을 비움 당한 병동에서 나 역시 일종의 치료를 받았음을 인정한다.
사실… 입원과 퇴원 후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
아이는 여전히 치료 중이며 걱정이 되는 순간들도 맞이하고, 나 역시 여전히 무엇이 정답인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고민한다.
아이의 아픔을 나도 가지고 있고, 많은 사람들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좋았다가 나빴다가 아무 생각도 없어지는 나의 마음도 병이라면 병일 수 있지 않을까…
결국엔 마음먹기에 따라 모든 순간이 고통스럽거나, 평범한 일상이 될 수 있다.
그건 나의 숙제이며, 내가 만들어 갈 하루하나다.
아이는 종종 눈가에 웃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아주 아주 조금씩 세상이 편안하다고도 느끼는 것 같고, 하고 싶은 것들도 말하곤 한다.
지금은 그걸로도 충분한 것 같다.
오늘도 크게 별일 없이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에 그저 감사해야 한다는 것.
오늘이 끝이 아니니까… 그럼에도 시간은 가고 있으니까…
퇴원은 치료의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본격적인 치료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보호자의 조바심으로 환자를 불안하게 하지 말고 관찰자로서 지켜보고 믿어주세요.
일상으로의 복귀는 이전의 환경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힘든 기분이 들 때 어떻게 할지, 가족들에게 어떻게 도움을 요청할지 등의 행동 매뉴얼을 미리 만들어 두고 상황이 생겼을 때 활용할 수 있도록 합니다.
약복용, 기분 일지를 작성해 두기를 권장합니다.
입원으로 환자에게 최적화된 약물을 맞춰도 퇴원 후에는 부작용을 보이거나 다른 증상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환자가 자신의 증상과 변화를 잘 챙겨 의사에게 전달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보호자가 관찰자로서 기록해 두는 방법도 길어질 치료과정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환자 스스로 자기 관리를 해 나가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온전히 저를 위해 시작한 글쓰기였습니다.
비슷한 처지의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거창한 의도를 내걸었지만, 사실은 지쳐가는 나를 위해 그간의 시간들을 되새기며 고생했다고, 잘하고 있다고 힘내라고 응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 계획했던 글의 방향이나 글의 내용들이 의도와 달라서 많이 수정되었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없어 포기를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글은 저를 엄마답게, 어른답게, 나답게 만들어 준 고마운 글쓰기였음을 고백하며, 부끄럽지만 마무리를 한 스스로를 많이 칭찬하려고 합니다. 부족한 에세이를 읽어주시고 응원을 해주신 모든 분들께도 정말 많은 힘을 얻었습니다.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